소비자보호기구 설립, 가계부채 해결방안 등 견해차 극명하게 드러내지난 9월 금융위 태평로행 독립 위상 강화 모색금융권 "이전비용 낭비 대선 이후 대대적 손질 불가피할 것" 전망

김석동 금융위원장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사이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이들 기관은 금융경제를 관리하는 두 축인 만큼 단순한 힘겨루기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사안이 작지 않아 보인다.

금융위원회가 신설된 2008년 당시만 해도 양측에 별다른 갈등 조짐은 비치지 않았다. 양측 간에 갈등이 처음 가시화된 건 2009년 초 금융위가 서울 서초동에서 여의도 금감원 건물로 이전을 하면서다. 정책기관(금융위)과 산하의 감독기관(금감원)이 '한집살림'을 하다 보니 미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양측은 이런저런 문제로 숱한 잡음을 냈다. 수장끼리의 신경전도 만만찮았다. 양측의 동상이몽, 엇박자 행보에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이에 금융권에선 두 기구의 통폐합과 인적쇄신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대선을 앞두고 두 기구의 조직개편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위를 해체하고 금감원으로 통합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자 금융위는 지난 9월 사무실을 여의도 금감원 건물 내에서 중구 태평로1가 프레스센터 빌딩으로 전격 이전했다. 금감원과 일정한 거리를 둠과 동시에 독립된 부처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겠다는 의지라는 게 금융권 전반의 시각이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MB 정부 이원화 체계 구축

금융감독원은 1999년 은행감독원ㆍ증권감독원ㆍ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이 통합되면서 민간기구로 설립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0년 정부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로 전환됐다.

여기에 2008년 이명박(MB) 정부 들어 금융위원회를 신설하면서 지금의 이원화된 금융감독체계가 형성됐다. 정책기능은 금융위가, 감독기능은 금감원이 맡고 있다.

출범 당시 금융위가 처음 둥지를 튼 곳은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조달청 건물이었다. 그러나 금융위와 금감원의 거리가 멀어 업무협조, 민원처리 등에 불편함이 클 수밖에 없었다. 금융위 사무실이 협소하다는 점도 애로사항이었다.

이에 금융위는 사무실을 여의도 금감원 건물로 옮겼다. 금융위에 사무실을 내주는 바람에 100명 이상의 금감원 직원들이 인근의 하나대투증권 건물로 이동해야 했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러나 정책기관과 그 산하 감독기관이 한 건물에서 생활하면서 양측엔 미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졸지에 상관을 '모시게' 된 금감원과 산하 기관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금융위 사이엔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권에서는 양측을 만화 속 '톰과 제리' 같은 앙숙으로 빗댈 정도였다.

기관과 수장 첨예한 대립

양측의 갈등이 크게 표출된 건 지난해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립 논의를 두고서다. 당시 양측은 금융소비자보호기구를 누구 산하에 둘지, 인사권과 예산 권한 등을 누가 가질지 등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러다 급기야 금감원 노조가 금융위를 대상으로 '관치금융 규탄집회'를 벌이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일과 관련해 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불화는 기관 사이에서 그치지 않았다. 양측의 수장인 김 위원장과 권혁세 금감원장의 신경전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엔 가계부채 해결 방안을 두고 두 기관이 큰 견해차를 보였는데, 여기에 두 수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대리전 양상마저 보였다.

당연히 금융감독체계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 '저축은행 사태'가 이원화된 체계에서 금융정책과 감독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다. 저축은행은 규제완화정책으로 몸집을 키웠지만 감독ㆍ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부실덩어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금융위 금감원 피해 이사

이처럼 잡음과 문제가 끊이지 않자 금융권에서는 통폐합과 인적쇄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리고 최근 대통령선거가 임박하면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중에서도 금융위의 해체, 통합에 대한 목소리가 많다.

이는 금감원 입장에서는 크게 손해 될 게 없다. 현정부 들어 두 기관이 확실히 분리되면서 상전으로 모시게 된 금융위와 다시 대등한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금융위의 입장에선 통합이 꺼려질 수밖에 없다. 자칫 위상이 하락할 수 있어서다.

따라서 금융위는 그동안 정치권 등에서 통합 논의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 예민한 모습을 보여 왔다. 급기야 금융위는 지난 9월 청사를 금감원 건물에서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빌딩으로 이전하기도 했다.

비용과 장소 물색은 물론 금융권의 비판 등 난관이 적지 않았다. 먼저 주변의 비판이 만만찮다. 금융권에선 경기불황과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대선까지 앞둔 시점에서 사무실을 이전하는 게 과연 적절한 지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비용도 문제다. 금융위의 이사비용으로 8억4,900만원, 임차보증금으로 매년 12억1,000만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금융위가 이전을 강행한 건 금감원과 물리적 '거리'를 두고 독립된 부처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겠다는 의지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시각이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진 만큼 불편함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최근 들어 금감원에서 열리는 회의가 잦아지면서 김 위원장이 매번 여의도로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고 한다. 이에 김 위원장은 여의도 정책금융공사 건물에 별도의 사무실을 얻으려다 외부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현재 금융위 해체론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며 현행체제 유지의 당위성을 피력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금융전문가들은 금융위가 조직개편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정권에서 현행 금융감독체제에 대한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정권이 바뀌면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