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절친 '박경철' 권력 집착 안돼… 통 큰 행보 해달라' 주문'DJ맨' 박지원, 이희호 문 지지 공개 호남 지지율 상승 견인

안철수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며 좀처럼 '철수하지' 않을 것 같던 전 무소속 대선후보. 안 전 후보는 그러나 야권 단일화 룰 협상 난맥이 정점에 이른 지난 23일 밤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공식석상에서 수 차례 완주를 시사했던 안 전 후보가 돌연 '칼'을 집어넣은 이유는 뭘까. 이와 관련해 정가에서는 "양 박(朴)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양 박이란 안 전 후보의 절친한 친구인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과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다.

박 원장은 지난 23일 안 전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 직후 트위터에 "劍山刀海(검산도해ㆍ칼로 만든 산과 바다)를 알몸으로 건넌 존경하는 친구의 아름다운 도전을 잊지 않겠다. 당신은 늘 진심이었다"는 글을 올렸다.

현역 가운데 유일한 '정치 9단'이라는 평을 듣는 박 원내대표는 안 전 후보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기 석 달 전부터 "정치판은 시베리아 벌판인데 (안 전 후보가) 팬티 한 장 입고 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춥다고 집에 들어가버리면 안 되니까"라며 완주 가능성에 의문부호를 달았다.

'철수절친'

박경철
안 전 후보는 단일화 룰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던 지난 22일 오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장고에 들어갔다. 이때 안 전 후보가 고비마다 자신에게 가감 없는 조언을 해주던 박 원장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 박 원장은 '앞으로도 정치를 계속할 거면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안 전 후보에게 조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원장은 이어 안 전 후보에게 최근 지지율 하락이나 단일화 승패 등에 크게 연연하지 말고 대선 후를 고려해서 '통 큰' 행보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원장은 법륜 스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과 함께 의 멘토 그룹으로 유명하다. 윤 전 장관은 문재인 캠프, 김 전 수석은 박근혜 캠프로 이동했지만 박 원장만은 변함없이 안 전 후보 곁을 지켰다.

박 원장에게 충언을 들은 안 전 후보는 이날 밤 사퇴 결심을 어느 정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안 전 후보 측은 이날 밤 박선숙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이 이른바 최후통첩을 통해 '여론조사+공론조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측에서는 이 안을 수용하지 않았고, 23일 오후 협상마저도 결렬됐다.

박지원
이에 앞서 22일 오전 10시30분부터 1시간30분 동안 안 전 후보와 문 후보는 다시 한 번 테이블을 차렸다. 하지만 끝내 양측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고, 안 원장은 이튿날 오후 자신의 선거캠프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 후보에 대한 깊은 실망감도 안 전 후보의 사퇴 원인 중 하나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문 후보는 룰 협상에 앞서 "안 후보 측의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테이블이 차려지자 양측은 한 치의 양보 없이 대치했다.

안 전 후보가 향후 본격적인 대선정국에서 문 후보를 진심으로 돕긴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일화 룰 협상 과정에서 양측간에 생긴 감정의 골은 결코 작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원'

원내대표는 오래 전부터 안 전 후보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면서도 박 원내대표는 안 전 후보가 당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없는 현실에서 과연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다.

안 전 후보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지 2일 뒤인 지난 9월21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 일행은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찾아 봉사활동을 펼쳤다. 91세 생일을 맞아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는 게 이 여사의 의지였다.

이 여사의 2박3일 일정에는 박 원내대표의 부인인 이선자씨가 동행했다. 이씨는 이 기간 이 여사를 가까이에서 보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문 후보와 안 전 후보뿐 아니라 손학규 정세균 전 당대표,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 야권의 유력 주자들은 대선 출마 선언을 즈음해서 이 여사를 방문해 지지를 호소했다. 이 여사는 그럴 때마다 덕담을 건네며 선전을 기원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 8일 광주시 서구 치평동 광주시청 3층에서 열린 '2012 광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는 이 여사를 비롯해 문 후보 부부, 안 전 후보의 부인인 김미경 교수 등이 참석했다. 네 사람은 오른쪽부터 이 여사 문 후보, 김정숙씨, 김미경 교수 순으로 앉았다.

이 여사는 문 후보 부부에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랐는데 그대로 됐다. 우리도 미국처럼 민주당 후보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 여사는 그러나 함께 있었던 김 교수에게는 특별한 인사말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박 원내대표는 이튿날 기자들과 만나 "안 후보의 부인인 김미경 교수의 동교동 방문 하루 전인 화요일(11월6일)에 이 여사가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했는데 이 자리에서 이 여사는 '그래도 민주당 후보가 돼야지'라는 말을 했다"고 공개했다.

공교롭게도 이런 일련의 일들이 있고 난 뒤 호남지역을 비롯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와 안 전 후보의 격차가 급속도로 좁혀졌다. 일부 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안 전 후보를 역전하기도 했다. 문 후보가 호남지역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박 원내대표의 힘이 작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안 전 후보가 자신의 멘토 역할을 했던 원장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들은 뒤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안다"면서 "일부 알려진 것과 달리 원내대표는 처음부터 문 후보 지원에 충실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난 18일 이해찬 대표가 사퇴할 때도 박 원내대표는 정기국회 기간인 점 등이 참작돼 연말까지 유임하기로 했다" "하지만 원내대표가 없다고 정기국회가 진행 안 되겠냐. 이는 박 원내대표가 대선 정국에서 문 후보를 위한 결정적 역할이 있다는 방증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