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3분의 1 지분범야권 결집으로 국면 전환대선 승리후 거국내각 구성진정성 보여야 시너지 효과

문재인 / 연합뉴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다. 지난달 26일 대선후보 등록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체로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문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 후보 캠프에서조차 "초반 싸움에서는 완패를 당했다"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단일화 룰 협상이 정점에 이르렀던 지난달 23일 갑자기 후보에서 사퇴한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지원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인 전략 대결에서 박 후보에게 크게 밀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 후보 측이 분석한 열세 이유로는 ▦프레임 대결에서 완패 ▦문 후보의 부인 김정숙씨와 관련된 명품의자와 다운계약서(실제 거래가격이 아닌 허위가격으로 계약한 계약서) 논란 ▦미지근한 TV 토론 등이 있다.

문 후보는 안 전 후보의 사퇴로 사실상 여야 간 1대1 대결로 대선구도가 재편되자 '미래세력' 대 '과거세력'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돌아온 참여정부가 어떻게 미래세력이 될 수 있냐"며 되레 역공을 가했다.

그러자 문 후보는 박 후보를 '가짜 민생세력' '이명박 정권의 연장' 등으로 규정하고 거센 공세를 이어갔으나 '참여정부 실패론'이라는 상대의 일관된 공격에 맥을 못 췄다. 선거는 프레임 대결인데 이 싸움에서 패한 셈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6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위한 국민연대 출범식에서 승리를 다짐하며 손을 맞잡고 있다. 손용석기자
사정이 이쯤 되자 캠프 안팎에서는 '단일화를 이뤘으니 무조건 이긴다'는 낙관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론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똘똘 뭉친 보수진영에 비해 진보진영은 결속력이 떨어져 보인다. 남은 기간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문 후보 측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데 그게 바로 공동정부론(論)일 것"이라며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그것은 민주당만의 승리가 아닌 야권 전체의 승리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결과물도 나눠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 5일 야권 입장에서 보면 의미 있는 일련의 행보가 이어졌다. 문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범야권 대선 공조체인 '정권교체-새정치 국민연대'가 범야권의 대대적인 결집을 촉구했고, 안 전 후보 측도 문 후보 지원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국민연대의 촉구

소설가 황석영씨, 조국 안경환 서울대 교수, 진중권 동양대 교수 명진 스님 등 16명은 지난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바라는 모든 민주, 진보, 개혁 진영이 하나로 힘을 합치고, 건강한 중도와 합리적 보수 진영까지 하나가 돼야 한다"며 범야권의 연대와 대대적인 결집을 촉구했다.

국민연대가 제안한 방안은 첫째, 이번 선거가 민주당만의 선거가 돼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 재집권을 반대하는 건강한 중도와 합리적 보수진영까지 하나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이길 수 있다.

둘째, 국민연대에 민주당은 물론 다양한 시민사회, 안철수 전 후보 지지세력, (심상정 의원 등이 주축이 된) 진보정의당, 건강하고 합리적인 중도 부소 인사들이 모두 참여해서 선거를 주도해야 한다.

셋째, 대선 승리는 물론 대선 이후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비전까지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정권교체만이 목적이어선 안 된다. 향후 새로운 정치질서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께 희망을 드리는 역할을 감당하자는 제안을 한다. 넷째, 이 모든 것을 위해, 민주당이 더 반성하고 쇄신하고 헌신해야 한다. 민주당이 모든 것을 잘못한 게 아니라 해도, 쇄신과 변화와 처절한 자기반성은, 제1야당인 민주당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국민연대의 주장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민주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공동정부론과 맥을 같이 한다. 집권하기 전부터 자리를 논한다면 '자리 나눠먹기' 구태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급만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행간을 읽어보면 민주당, 안철수 지지세력, 시민사회노동계 등이 다 함께 힘을 모아서 정권을 이끌어나가는 공동정부 구성 제안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구체적인 수치를 말하는 것은 무리지만 민주당, 안철수 측, 시민사회노동계 등 기타 진보ㆍ중도 세력 등이 3분의 1 정도씩 지분을 갖고 정권에 참여하는 방안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공동정부는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던 'DJT(DJ+JP+TJㆍ김대중 김종필 박태준)' 연립정권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DJT 연합'은 김대중 후보를 단일후보로 내세운 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정권을 잡았으며 이후 내각 등을 나누는 연립정권을 출범시켰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만으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민주당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안철수 지지세력, 진보정의당, 시민사회노동계 등에 '함께 하자'며 진정성 있게 손을 내밀어야 진보진영도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원 그리고 독자행보

국민연대가 5일 사실상 공동정부론의 내용을 담은 주장을 편 비슷한 시간 안 전 후보는 측근들과 함께 문 후보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안 전 후보 측이 국민연대의 동참 촉구에 응한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문 후보로서는 국민연대가 강조하는 범야권 결집이 반갑기 그지없다. 문 후보는 지난 6일 "집권하면 민주당을 넘어서는 거국내각을 구성할 것"이라며 국민연대의 제안에 화답했다.

이런 맥락에서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적극 돕기로 한 것은 함의가 크다. 이제 막 정계에 발을 담근 안 전 후보는 대선 승패를 떠나 미래 설계를 더 미룰 수 없게 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결국 안 전 후보가 명분과 실리를 함께 챙기는 길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안 전 후보는 지난 5일 측근들과 문 후보 선거운동 지원 방식을 논의한 직후인 이날 오후부터 사실상 문 후보 지원 사격에 들어갔다. 안 전 후보 측은 지원 수준에 대해 '전폭적'이 될 거라고 했다.

안 전 후보의 결심에 발맞춰서 그의 정책그룹인 '한국비전2050포럼'과 '철수정책개발연구원'은 같은 날 오전 영등포 민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 후보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비로소 정치쇄신을 이룩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여론조사기관들과 정치 전문가들은 안 전 후보가 적극적이고 전폭적으로 나설 경우 전체 지지율의 3~5% 정도가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3~5%라면 박 후보와 문 후보간 격차가 오차범위 이내일 경우 1, 2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한편 안 전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는 문 후보 지원에 나서겠지만 대선 후에는 '제3의 길'을 걸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어느 한 쪽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은 채 독자행보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는 '박근혜 스타일'이다. 박 후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한 뒤 당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정권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독자세력을 구축했다.

박 후보는 현정권에서 어떠한 임명직도 맡지 않고 줄곧 변방에 머물다가 지난해 12월 비상대책위원장에 선임되며 당의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경선을 통해 마침내 대선후보로 선정됐다.

민주당이 새누리당 간판으로 출마한 박 후보를 '이명박근혜(이명박+박근혜)' 'MB정권 연장' 등으로 거세게 비판하는데도 표심을 크게 자극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체로 유권자들은 박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인 것은 맞지만 이명박 대통령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안 전 후보에게도 이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민주당이 대선을 통해 여당이 되든, 야당으로 남든, 안 전 후보로서는 기본적인 틀만 같이 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유지한다면 5년 뒤 전망이 밝을 거라는 얘기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집권한다 해도 안 전 후보 자신은 정권과는 거리를 둔 채 독자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하지만 대선 전에는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나중에 불거질지도 모르는 책임론 같은 데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