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재별개혁 등과 맞물린 상황서 예상 깨고 전격 승진삼성 "승계 가속화 아니다" 경개련 등 '시기장조' 지적도

지난 달 30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취임 25주년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이 식을 마치고 행사장을 나오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이재용 시대'가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온 것만은 분명하다."

삼성이 지난 5일 발표한 '2013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본 재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이번 인사를 통해 부회장 직급을 달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앞으로 경영 전반에서 더욱 활발한 행보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1위 삼성의 유력한 후계자로 주목을 받아왔지만 정의선 현대기아자동차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경쟁 중인 동년배들에 비해 직급이 낮았던 아쉬움도 완전히 해소됐다. 남은 것은 마지막 한 걸음을 어떻게 잘 마무리하느냐 뿐이다.

이재용 부회장 승진은 성과 덕분

삼성은 5일 부회장 승진 2명, 사장 승진 7명, 전보 8명 등 총 17명 규모의 '2013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사장 승진자가 1명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지난해에 비해 인사폭의 변화가 크지 않은 셈이다.

삼성의 인사가 발표된 이후 재계의 이목은 한 사람에게 집중됐다. 입사 21년 만이자 사장에 오른지 불과 2년 만에 부회장 직함을 달게 된 이재용 부회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당초 재계에서는 대선정국과 맞물려 재벌개혁 및 경제민주화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거세진만큼 이 부회장의 승진이 어렵다고 전망했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승진배경에 대해 "글로벌 경영 감각과 네트워크를 갖춘 경영자로서 경쟁사와의 경쟁과 협력 관계 조정, 고객사와의 유대 관계 강화 등을 통해 스마트폰·TV·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이 글로벌 1위를 공고히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철저히 이 부회장의 성과에 바탕한 인사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사상 최고 실적을 낸 삼성전자는 1명의 부회장 승진자와 3명의 승진자를 내며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측근들 전진배치로 힘 받아

"이건희 회장께서 주 2회 정기적으로 출근을 계속하고 있고 연 100일 이상을 해외출장 다닐 정도로 일선에서 의욕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 '승계가속화'라고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의 승진을 알리는 자리에서 삼성 측이 강하게 못 박은 부분이다. 부회장 승진으로 이 부회장에게 그룹의 무게추가 넘어간 것처럼 해석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다. 그러나 삼성 측의 적극적인 설명에도 불구, 재계는 이 부회장의 이후 행보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지금까지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최고경영자(CEO)를 보좌해왔다면 앞으로는 최고경영진으로서 삼성전자 및 그룹 전체의 경영을 깊고 폭넓게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의 시대가 온 것은 아니지만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날 전진배치된 인사들 상당수가 이 부회장의 핵심 측근이라는 점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상훈 삼성미래전략실 전략1팀장 사장이 삼성전자 DMC부문 경영지원실장으로 이동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 사장이 삼성전자의 재무최고관리자(CFO)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이 부회장의 경영행보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룹의 홍보를 맡아온 이인용 삼성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비자금 사건' 이후 추락한 그룹 이미지 제고를 성공적으로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이 사장도 이 부회장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MBC 공채 기자 출신인 이 사장이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다가 지난 2005년에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길 때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문인 이 부회장이 끌어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삼성의 대내외 소통창구인 이 사장이 권한이 확대되며 이 부회장이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장과 마찬가지로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줄곧 홍보와 광고만을 담당해온 임대기 삼성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이 제일기획 사장으로 승진해 자리를 옮긴 것도 비슷한 이유다. 오랫동안 제일기획에서 일한바 있는 임 사장 입장에서는 이번 승진이동이 친정으로 영전해 복귀하는 측면도 있다.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장 사장으로 이동하는 윤주화 사장은 삼성의 전형적인 관리ㆍ재무통으로 불린다. '비자금' 사건 이후 경영지원총괄본부가 해체되면서 사장급인 감사팀장으로 재직한 바 있는데 그 당시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고강도의 내부 감사를 벌였다고 전해진다. 삼성 내부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이 부회장이 향후 그룹을 맡게 될 때 가장 먼저 찾을 인물로 꼽힌다.

일부에선 '검증' 거론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진을 놓고 '시기상조'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경재개혁연대(이하 경개련)는 이 부회장의 승진이 발표된 5일 오후 '이재용 사장의 부회장 승진보다 경영능력 검증이 먼저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논평에서 경개련은 "삼성전자의 최대 실적은 이재용 사장의 기여라기보다는 이미 공고하게 조직화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룹 자체의 조직적 강점에 따른 것"이라며 "시장의 어느 누가 지금 삼성전자의 실적을 이재용 사장의 업적으로 평가하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재용 부회장은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은 주주총회를 요식 절차로 생각하고 지분율 확보에만 신경쓰지 말고 경영능력 검증을 먼저 하라"고 주장했다.

우연일까… 대상 임세령도 승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진 소식이 있기 만 하루 전, 대상의 장녀인 임세령씨도 상무로 승진하며 재계의 이목을 끌었다.

대상은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의 장녀인 임 상무를 식품사업총괄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상무)로 임명했다고 지난 4일 발표했다. 이번 인사로 임 상무는 향후 대상의 식품 브랜드관리와 마케팅, 디자인 등의 업무를 총괄할 계획이다. 2010년부터 외식사업을 담당하는 대항HS 대표로 일해왔던 임 상무는 이번 인사로 그룹 상무를 겸직하게 됐다.

임 상무는 이 부회장과 1998년 결혼했지만 11년 만인 지난 2009년 이혼을 결정하며 재계의 화제가 됐던바 있다. 둘 사이에는 1남 1녀의 자녀가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