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망신시키는 재벌가 '말썽쟁이 따님들'전 남편 내연녀 추적 의뢰 성과 없자 대금 지급 안해법정 출석도 '차일피일'자녀 외국인 학교 보내려 브로커에 돈 주다 덜미

풀무원 사옥
과거 재벌가(家) 딸들은 늘 뒷전에 머물러야 했다. 가문은 아들이 이끌어야 한다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딸들의 경영 참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불과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재계에서의 '우먼파워'는 미약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양상은 최근 들어 180도 달라지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가 활발해 지면서 재벌가 딸들도 기업 경영에 속속 뛰어들었다. 이들이 경영 전면에서 보여준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들보다 딸이 낫다"는 말도 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꼭 '좋은 예'만 있는 건 아니다. 갖은 말썽으로 구설에 오르면서 가문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딸도 적지 않다. 특히 최근 들어서 이런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다.

풀무원, 채무 피하려 파산 신청?

재벌가 '말썽쟁이 따님'의 대표적인 사례는 남승우 풀무원 총괄대표의 장녀다. 남씨는 지난 5월 법원에 파산을 신청해 구설에 올랐다. 재벌가의 딸이 파산 신청을 했다는 것 자체가 관심거리다. 그러나 그 배경이 "채무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남 대표는 체면을 구겨야 했다.

넥센타이어 사옥
화근은 남씨가 전 남편인 박모씨와 2010년 지인 소개로 만난 정모씨에게 40억원을 빌린 데 있다. 당시 남씨가 빌린 돈은 박씨가 운영하는 상장사의 유상증자에 투입됐다. 하지만 그해 8월 해당 회사에서 대표이사의 횡령 및 배임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상장 폐지되면서 남씨와 박씨는 투자한 40억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이후 두 사람은 돈을 갚지 않았다. 이에 정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이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자 남씨는 지난 5월 국내 대형로펌인 태평양을 선임해 파산 및 면책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이를 두고 정씨는 "남씨가 채무를 회피할 목적으로 법을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돈을 빌리기 전인 2010년 1월 이미 서류상으로 이혼한 상태였음에도 차용 당시 자신들이 부부라고 속인 점 등을 들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정씨는 남씨가 청구한 파산 및 면책신청에 대해 법원에 채권자 이의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파산관재인을 통해 남씨의 은닉재산이 있는지 조사하는 등 채권자가 이의 제기한 내용을 살펴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넥센타이어 용역 대금 구설

금호그룹 사옥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의 차녀 강모씨는 용역비를 떼먹은 사실이 드러나 얼굴을 붉혔다. 2010년말, 강씨는 경호업체 직원 송모씨에게 특정인물의 주거지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했다.

'특정인물'은 강씨 전 남편의 내연녀로 의심되는 여성이었다. 자신의 이혼이 남편의 외도 때문으로 여긴 강씨가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일을 맡긴 것이었다. 송씨는 문제의 인물을 찾기 위해 두 달을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그러나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었다.

송씨는 이 과정에서 대금 지급 요청을 했다. 그러나 강씨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급 지급이 번번이 거절되자 송씨는 결국 일을 그만뒀다. 지난해 3월 "대금을 지급해달라"는 내용증명까지 보냈지만 이마저도 무시당했다.

결국 송씨가 같은 달 법원에 소장을 접수하면서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강씨는 갖은 핑계를 대며 법정 출석을 피했다. 당연히 그 때마다 일정은 연기됐다. 이 때문에 1심 결과는 10개월여가 지난 올해 초에야 나왔다.

당시 재판부는 "강씨는 송씨에게 1,472만5,000원과 2011년 7월1일부터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강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시 항소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항소심에도 강씨가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서 소송은 장기전으로 접어든 상황이다.

금호가 '엇나간 교육열'

고(故) 박정구 금호그룹 전 회장의 셋째 딸 박모씨는 '엇나간 교육열'로 망신살이 뻗쳤다. 허위국적을 취득해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하게 입학시킨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박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둘째 며느리이자, 김황식 국무총리의 조카며느리이기도 하다.

국내 체류 외국인 자녀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외국인학교는 원칙적으로 부모 중 1명이 외국인이어야 입학 가능하다. 부모가 모두 내국인일 경우 외국 거주기간이 3년 이상일 때 정원의 30% 내에서 입학이 허용된다. 그러나 박씨는 부정입학 알선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편법으로 자녀를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켰다.

박씨가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려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외국인 학교가 '미국식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명문대 진학의 지름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인 학교는 2000년도 초부터 명문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조기유학의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박씨의 이런 계획은 지난 8월 인천 지금 외사부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무산됐다. 그리고 11월에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박씨는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 재벌가 딸들은 현재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가문은 물론 회사 이미지에도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재벌가 자녀들의 신중한 처신이 요구되는 이유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