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전 대선후보가 20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손용석기자
거센 책임 공방… 최악의 경우 분당
친노 책임론으로 코너 몰려… 당장 와해되지는 않을 듯
대리인 내세워 당권 도전

안, 당분간 미국서 정치 구상 4월 보궐 앞두고 창당할 듯
비노측과 활발한 교류 예상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접전 끝에 석패한 민주통합당이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끝이 없을 듯한 험로(險路)만이 대선에서 패한 민주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1년 전이었던 지난해 이맘때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의 결집을 통해 총선과 대선 승리를 낙관했다. 그러나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패하면서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두 선거 모두 결과적으로는 석패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용상으로는 완패에 가까웠다.

대선에서 패한 정당들이 늘 그래왔듯이 민주당 역시 ▦책임론 공방 ▦향후 진로 놓고 계파 간 갑론을박 ▦전당대회 룰 다툼 ▦전당대회 개최 수순을 밟을 것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다.

안철수 무소속 전 대선후보가 19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2007년에 이어 대선에서 사실상 2연패를 떠안은 친노(친 노무현) 진영은 세가 크게 위축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당장 당 안팎의 비노(비 노무현) 진영에서는 "당의 정권 교체가 먼저였는지, 친노의 계파 보존이 먼저였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대선후보 문재인을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라 할 이해찬 전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은 이번 패배로 다시는 전면에 나서기 어려울 전망이다. 반면 대선 정국에서 잔뜩 움츠려 있었던 비노 진영은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분당(分黨)까지 갈 수도 있다. 더구나 민주당 밖에는 유력 대선주자였던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까지 있기 때문에 한동안 민주당의 극심한 몸살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노의 반격

민주당의 주류는 친노이지만 그렇다고 당에 친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통합당이라는 간판처럼 민주당 내에는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켜온 구 민주계, 손학규계, 정세균계 등과 함께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재야그룹 등이 포진해 있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친노가 사실상 당을 장악하면서 비노 진영의 불만은 적지 않았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부터 비노는 친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특히 모바일투표로 대변되는 경선의 불공정 논란이 거세지면서 양측 간에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이런 가운데 비노 진영에서는 김부겸(3선) 전 의원, 이인영(재선) 박영선(3선) 의원 등의 당권 도전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들은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일하긴 했으나 근본적으로는 친노와 거리가 있다.

지난 6ㆍ9 전당대회 때 이해찬 전 대표에 이어 2위로 최고위원에 올랐던 김한길(4선) 의원의 당권 도전 가능성도 예상된다. 김 의원 역시 비노 진영이라는 점에서는 김 전 의원 등과 비슷한 성향이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친노와 대립각을 세웠던 손학규 전 대표의 행보도 주목 대상이다. 당대표를 두 차례나 지낸 데다 대선 예비주자로까지 나섰던 손 전 대표가 당장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손 전 대표는 내년 1월 초ㆍ중순쯤 부인 이윤영씨와 함께 독일로 떠나 6개월쯤 머물며 향후 진로를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대표는 얼마 전 자신과 친한 인사들과 식사자리에서 "새로운 정치를 위해 더 공부하겠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 전 대표는 해외 체류 기간 동안 안 전 후보와 만나 야권의 진로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 전 후보는 선거일이었던 지난 19일 투표 직후 미국으로 날아갔다.

정세균 전 대표도 당분간 차분하게 관망할 듯하다. 정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문 후보와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대선캠프에서는 상임고문을 맡는 등 문 후보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비노 주자들 중 누가 나선다 하더라도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모바일투표 폐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개연성이 크다. 모바일투표라고 하지만 오프라인 투표 못지않게 비용이 드는 데다 불공정 시비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친노의 생존 전략은

친노는 한동안 수세를 면키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친노 진영은 지난 4월 총선에 이어 대선에서도 전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선거를 지휘했음에도 박근혜 당선자가 이끈 새누리당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책임론이나 한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친노의 좌장 격인 이해찬 전 대표는 대선후보를 만드는 데까지만 성공했을 뿐 정작 본선에서는 완패를 당했다. 또 이 전 대표와 손을 잡았던 구 민주계의 박지원 원내대표도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이 전 대표와 박 원내대표는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전격 손을 잡았고, 이 과정에 문 후보가 동참하면서 이른바 '이-박-문 연대'가 형성됐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공정성 시비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너에 몰렸다고 해서 친노 진영이 당장 와해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전 대표뿐 아니라 문재인 후보도 여전히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문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면서도 지역구(부산 사상)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은 것을 두고 비노 진영에서는 "대선 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표와 문 후보는 당분간 친노 진영의 후견인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는 지난달 이 전 대표가 사퇴함에 따라 당대표 권한대행까지 맡고 있는 터라 내달 전당대회 준비까지 실질적인 대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노 진영에서도 당권에 도전할 후보를 물색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 등이 거세질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 친노 색채가 강한 인사가 직접 나서기보다 '대리인' 성격을 지닌 범친노 인사가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

비노 진영과는 반대로 친노 진영에서는 모바일투표 존속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1ㆍ15 전당대회, 6ㆍ9 전당대회, 대선후보 경선 등 세 차례 주요 이벤트에서 친노 진영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모바일투표에 있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총선에 이어 대선마저 패한 친노 진영이 한계를 느낀 만큼 한동안 몸을 낮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권을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일단은 친노 색채가 옅은 인사가 대리인 자격으로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치인' 안철수는

안철수 전 대선후보는 지난달 23일 전격 후보직에서 사퇴했지만 본격적인 정치 행보는 지금부터다. 안 전 후보는 사퇴 후에도 "이게 끝은 아니다. 내년에 재ㆍ보궐선거도 있지 않느냐"라며 '정치인' 안철수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문재인 후보를 도왔던 안 전 후보는 대선 투표를 마친 직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안 전 후보는 민주당 후보의 패배 소식을 미국에 도착한 직후 접했다.

언제 돌아온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점을 못박긴 어렵지만, 국내 여러 정치 일정을 감안해보면 안 전 후보는 앞으로 1, 2개월쯤 미국에 머물다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당장 4월에는 전국적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지고, 안 전 후보는 약점으로 지적됐던 조직력과 정치경륜 보강 그리고 원내의석 확보 차원에서 선거에 뛰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안 전 후보가 직접 선거에 출마할지, 아니면 자신의 측근들만 내세울지 그도 아니라면 정식으로 당을 만들어서 자신과 측근들이 함께 나설지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

그렇지만 안 전 후보가 창당 작업에 나설 거라는 것은 단순한 예측이 아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안 전 후보가 미국에서 돌아오면 전국 16개 포럼을 중심으로 민생 탐방에 나설 뜻을 비친 것도 창당설(說)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안 전 후보가 신당 깃발을 세운다면 여기에는 민주당 내의 비노 진영 인사들, 특히 재기를 노리는 전직 의원들 상당수가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또 새누리당 인사들 가운데에도 지난 총선 과정에서 박근혜 당선자 측과 등졌던 사람들이 '안철수 신당'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안 전 후보가 순수 신당 창당이 아닌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통한 통합신당 창당 과정에서 주축을 맡을 거라는 전망도 있다. 안 전 후보가 당장 신당을 만든다 해도 원내 소수 야당의 한계를 벗기 어려운 만큼 민주당과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안 전 후보가 강조하는 '새 정치'라는 구호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주창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손 전 대표가 최근 측근들과 식사자리에서 건배사로 외쳤던 문구도 '새로운 정치를 위하여'였다고 전해진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안 전 후보가 자신은 야권인사임을 분명히 한 만큼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민주당과의 끈은 이어가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안 전 후보는 친노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노 진영 인사들과 교류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