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재보선후 전당대회땐 대선 패배 책임론 희석원내대표 경선서 건재 과시문재인, 광주·김해 잇단 방문… 향후 정치 재개 의지 표명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달 30일 광주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30일 광주 운정동에 있는 국립 5ㆍ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지난달 19일 대선 패배 후 문 전 후보의 첫 공식일정이 광주에서 시작된 터라 비상한 관심이 집중됐다.

문 전 후보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 민주당이 거듭나고 국민의 정당으로 커나가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의원직 사퇴 요구를 우회적으로 반박함과 동시에 향후 정치 행보 재개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문 전 후보는 이틀 뒤인 지난 1일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했다. 노무현 재단 주최로 열린 이날 신년 참배식에는 이병완 재단 이사장,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참여정부 핵심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대선 패배 직후만 해도 문 전 후보는 꽤 오랫동안 정동중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였다. 문 전 후보는 대선 다음날이었던 지난달 20일 "개인적인 꿈을 접는다"며 사실상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연말과 연초 문 전 후보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와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를 잇달아 방문한 것을 두고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 아니겠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온다.

비주류 중진인 김영환 의원(4선ㆍ경기 안산 상록을)은 블로그에 문 전 후보와 친노(친 노무현) 진영을 겨냥해"우선은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지난달 28일에는 CBS 라디오에 나와 "친노 진영을 대표하는 분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될 경우 마치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는 격"이라며 친노 주류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일각에서는 최근 문 전 후보의 동선이 차기 당권을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관계자는 "아직은 좀 앞서가는 이야기일지 몰라도 문 전 후보가 차기 전당대회에서 친노 주류 세력을 대표해서 출사표를 밝히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친노의 건재 확인

대선 패배 후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사퇴로 지도부 공백 사태를 맞은 민주당은 지난달 28일 박기춘 의원(3선ㆍ경기 남양주을)을 새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는 재적의원 127명 중 124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문재인 이해찬 우상호 의원은 1차 투표에는 참여했으나 2차 투표에는 불참했다. 또 민홍철 의원은 1차에는 불참했지만 2차에는 참여했다.

경선에는 박기춘 의원을 비롯해 김동철(3선ㆍ광주 광산갑) 신계륜(4선ㆍ서울 성북을) 의원 3명이 출마했다. 비주류인 박 의원과 김 의원은 각각 박지원 전 원내대표, 손학규 전 대표와 가까운 인물이고 신 의원은 범친노로 분류된다.

1차 투표 결과 박 의원과 신 의원이 47표로 공동 1위, 김 의원이 29표로 3위를 차지했다. 박 의원은 2차 투표에서 63표를 얻어 58표에 그친 신 의원을 5표차로 제치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투표 결과를 두고 "대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친노 계파에 대한 평가였다"는 평도 나왔지만 정반대의 해석도 있었다. 대선 패배로 잔뜩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음에도 범친노 진영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공동 1위에 오른 데 이어 2차 투표에서도 박빙승부를 펼쳤다는 것은 친노의 건재를 과시하고도 남았다는 주장이다.

원내대표 투표 이틀 전이었던 지난달 26일 친노 측은 작심한 듯 반격에 나섰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전해철 의원(초선ㆍ경기 안산 상록갑)은 한 라디오에서 "일부의 책임을 운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맞지 않다"며 "친노가 누구냐는 것도 불분명하고, 분명한 친노라고 해도 도대체 어떤 책임이 있느냐.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전 후보 선거캠프에서 공동 대변인을 맡았던 도종환 의원(초선ㆍ비례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그런 주장(문재인 전 후보의 의원직 사퇴)이 감정적으로 문 의원을 흔들거나 흠집을 내고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며 "문재인을 내팽개치고자 하면 저도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하겠다"고 문 전 후보의 방패를 자처하고 나섰다.

민주당 관계자는 "친노 진영이 원내대표 투표에서 반드시 이기려 했다면 이해찬 전 대표가 2차 투표에서 기권했겠냐"고 반문한 뒤 "친노 진영은 1차 투표에서 건재를 확인한 것만으로 내심 만족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주류 "5월" vs 비주류 "3월"

박기춘 신임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소속 의원 전원에게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의견을 묻는 질문을 보낸 뒤 결과를 취합했다.

그 결과 친노 주류 측은 대체로 외부인사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주류 측은 당내 인물 가운데 한 명을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친노는 당의 쇄신을 이끌 혁신형 비대위를, 비주류 측은 공정한 전당대회 준비를 위한 관리형 비대위를 요구한다.

전당대회 시기를 두고도 친노 측은 5월, 비주류는 3월을 선호하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한다. 친노 측은 비대위가 범야권 통합의 기반을 다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5월 전당대회가 마땅하다고 말한다. 반면 비주류 측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묻는다는 차원에서도 3월 전당대회가 순리라는 입장이다.

친노 주류가 5월 전당대회를 주장하는 이면에는 4월 재보선을 염두엔 둔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새 정권 초기에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야권의 승리가 불확실한 데다 재보선을 치르고 나면 친노의 대선 패배 책임론도 희석될 거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당헌ㆍ당규대로라면 오는 18일까지 전당대회를 개최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일이 촉박하기 때문에 5월18일까지로 개최 시한을 4개월 연장했다. 따라서 전당대회 개최는 아무리 늦어도 5월을 넘길 수는 없다.

이런 가운데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할 유력 후보로는 문재인 전 대선후보, 정세균 의원(5선ㆍ서울 종로), 김한길 의원(4선ㆍ서울 광진갑), 김두관 전 경남지사, 이인영(재선ㆍ서울 구로갑) 박영선(3선ㆍ서울 구로을) 의원, 김부겸 전 의원(3선) 등이 거론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누가 비대위원장이 되느냐에 따라 차기 당권 후보 지형도 달라질 것"이라면서도 "친노 진영의 대표로 문재인 전 대선후보가 나선다면 차기 전당대회 역시 친노와 비노의 대결구도가 명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