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년 숙성된 '간장 외길인생'경남 마산 산전장유공장 전신 해방 이후 몽고장유공업사 재탄생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납품 간장으로 전국 유명세소스류시장 성장·상표권 분쟁 패소 최근 기업생존 위기 부담

몽고식품 창원공장 전경
사람들은 만으로 예순살이 되는 해에 환갑잔치를 치른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요즘에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됐지만 여전히 인생의 한 주기를 잘 마친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환갑잔치를 벌이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한다.

기업들의 평균수명은 사람들보다도 짧다. 30년 이상 무사히 생존하면 장수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특히 자본주의 도입이 늦은 데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었던 우리나라에서는 무사히 환갑잔치를 하는 기업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만큼 1953년 이전에 창립, 지금까지도 위세가 당당한 기업들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환갑을 넘긴 진정한 '장수기업'들은 어떻게 생존의 위기를 극복하며 지금까지 왔을까? 도전과 혁신(두산), 효자상품(동화약품), 안정적 재무구조(한국도자기), 끊임없는 연구개발(한국타이어), 윤리경영(유한양행) 등 장수비결은 제각각이지만 저마다 자신만의 '기업철학'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108년 동안 발효식품 외길 걸어

1905년에 태어나 올해로 108세가 되는 몽고식품은 두산, 동화약품과 더불어 국내에 세 개뿐인 100세 이상의 최장수기업이다. 간장을 필두로 '발효식품' 외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두산보다는 제약업 만을 해오고 있는 동화약품 쪽에 가깝다.

김만식 몽고식품 회장
몽고식품의 전신은 일본인 야마다 노부스케가 마산시 자산동에 1905년 세운 산전장유공장(이하 산전장유)이다. 근처 식료품 가게 점원이었던 김홍구 창업주는 가게에 간장을 대주던 산전장유에 1931년 스카우트되며 장유업계에 첫 발을 디뎠다.

사장의 신임을 받아 공장 지배인에까지 오른 김 창업주는 1945년 해방 이후 적산으로 분류된 산전장유를 매입, 몽고장유공업사(이하 몽고장유)로 재탄생시켰다. 해방 직후 20여 개의 장유업체가 자금난으로 도산했지만 기술력을 갖춘 몽고장유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1971년 세상을 떠난 김 창업주의 뒤를 이어 장남 김만식 회장이 몽고장유를 이끌었다. 1987년 사명을 몽고식품으로 바꾸고 이듬해에 창원 차룡단지에 대지 6,000평, 건물 2,200평에 달하는 창원공장을 지었다. 생산과 유통을 분리하기 위해 1999년 몽고유통을 설립하고 2001년에는 부설장류기술연구소를 만들며 끊임없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왔다. 몽고식품은 이후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유통망 확대로 미국, 중국, 유럽, 호주, 동남아 등지에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현재 몽고식품은 김 회장의 장남인 김현승 사장이 맡고 있다.

몽골식품? 고려식품?

몽고식품의 '몽고'는 고려시대 몽고군이 일본 정벌을 위한 편성한 여몽 연합군이 마산에 주둔하면서 식수 조달을 위해 판 우물 '몽고정(蒙古井)'에서 따온 이름이다. 몽고정은 가뭄과 홍수에도 물이 줄거나 불어나지 않았으며 특히 칼슘양이 풍부하여 양조공업에는 최우량의 수질이었다고 전해진다. 1988년 창원으로 공장을 옮긴 뒤부터는 공장 부지 내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지만 회사의 근간이 되는 '몽고'라는 명칭은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몽고정'의 원래 이름이 '고려정'이었다는 점이다. 우물 앞에 몽고정이라 쓰인 비석은 1932년 일본인 단체인 고적보존회가 세운 것으로 당시 몽고를 도와 일본을 치려 했던 우리나라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담겨있다. '몽고'라는 이름 또한 중국이 몽골을 깎아내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고 실제로 한몽간 공식 외교협정이 이뤄지고 나서 몽골 측에서 "앞으로 몽고라는 이름을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몽고식품은 몽골식품 또는 고려식품으로 불러야 한다는 일각의 지적이 가볍게만 들리지 않는다.

박정희 시절 청와대 납품

다양한 발효식품을 내놓고 있지만 몽고식품의 주요 품목은 역시 간장이다. 그 중에서도 몽고순간장과 몽고송표간장은 사람들의 입맛을 꾸준히 매료시키고 있는 소위 스테디셀러다.

경상도에서만 알려져 있던 몽고식품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로 납품되면서다. 박 대통령과 결혼해 대구에 살면서 몽고간장을 이용하던 고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 납품 간장을 몽고송표간장으로 바꾼 것이다.

이후 몽고식품은 신세대 소비자 기호에 맞춰 몽고복분자로만든간장, 몽고대추로만든간장 등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아왔다. 2005년 창원대 식품영양학과와 2년 연구 끝에 공동으로 개발에 성공한 콩알메주간장은 특허를 획득했다고 전해진다.

불황 딛고 일어날까

100년간 그 자리를 지켜온 몽고식품은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소스류시장의 성장, 외식 증가 등으로 인해 간장시장 자체가 질적, 양적인 측면 쇠퇴하고 있는 상황에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해석된다. 수요는 한정돼있고 수많은 업체가 경쟁 중인 간장시장의 특성상 소비자들의 수요패턴 다양화에 따라 세분화된 전략을 짜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적응력이 부족하다는 평도 듣고 있다.

김남식 회장이 동생 김복식 몽고장유와의 상표권 분쟁에서 패배한 것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력상품인 몽고순간장의 상표를 함께 쓰게 되면서 향후 발생할 매출의 상당 부분을 놓칠 수 있게 되는 까닭이다. 3대에 걸친 몽고식품의 간장 외길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