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도해놓고 패배하자 사과 없이 입지 넓히기 행보민주당내 비판론 거세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는 '486'이 꽤 많다.

넓게 보면 40대의 나이로 80년대 학번이며 6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은 다 486세대에 해당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말하는 좁은 의미의 486은 과거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던 세력들이다.

486의 '전신'은 386이다. 386은 1990년대에 등장한 386 컴퓨터에서 빌려온 말이다. 386은 30대의 나이,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을 의미한다. 90년대에 30대였던 사람들이 2000년대 들어 40대가 되면서 386도 486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범주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과거 학생운동이나 민주화 투쟁과 연관이 깊은 사람으로 국한시킨다면 제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20명쯤을 486이라 할 수 있다. 486 의원 가운데 하태경(46) 의원 정도만 새누리당에 당적을 두고 있을 뿐, 나머지는 민주통합당 소속이다.

민주당의 경우 486은 친노(친 노무현)계 다음가는 세력을 자랑한다. 물론 486은 정치적, 개인적 성향에 따라 고(故) 김근태 의원이 이끌었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 정세균계, 친노계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들은 지난해 주요 정치 이벤트 때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고, 대선에도 깊이 관여했다. 특히 이인영(49) 우상호(51) 의원 등은 문재인 캠프에서 요직을 맡아 선거를 지휘했다.

민주당 내 비주류 진영의 한 관계자는 "노이사(친 노무현, 이화여대, 486) 공천으로 불렸던 지난해 총선은 물론이고 대선 때도 486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어찌된 일인지 486은 책임론에서 자유롭다. 486은 '이제 우리가 주연으로 나설 때'라고 외치지만 그들은 '영원한' 주류"라고 일갈했다.

DJ의 수혈로 제도권에 진입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젊은 피 수혈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이끌었던 이인영 우상호 (46) 의원과 임종석 전 의원, 송영길(50) 인천시장 등이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이 의원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 겸 전대협 초대 의장을 맡았다.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 의원은 전대협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또 오 의원은 1988년, 임 전 의원은 1989년에 전대협 의장직을 이어받았다.

박홍근
임 전 의원은 신삼길 전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에게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됐으나,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는 무죄를 받았다.

임 전 의원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당 사무총장을 맡은 데 이어 공천까지 받았으나 문재인 의원 등 일부 친노계의 압박이 거세지자 당직과 함께 총선 후보직도 사퇴했다.

송 시장은 3선 의원을 지낸 뒤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300만 시민을 자랑하는 인천시의 수장이 됐다. 송 시장은 차기 대권 후보 중 한 명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486의 '원조 간판'은 김민석(49) 전 의원이었다. 김 전 의원은 15, 16대 때 내리 서울 영등포에서 당선되며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다. 김 전 의원은 2002년 대선 때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며 탈당하는 바람에 '철새'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김 전 의원은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는 후보단일화를 향한 공감대가 있었다"며 "누군가 총대를 메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후보단일화를 이루면 적극적으로 민주당으로 돌아가겠다고 얘기했었고 결국 당으로 돌아갔다"고 반박했다.

오영식
19대에서 화려하게 재기

2008년 18대 총선은 '진보의 몰락'으로 요약된다. 김근태 한명숙 유인태 장영달 신계륜 등 486세대들에 앞서 민주화를 주도했던 야권 거물들이 죄다 나가 떨어졌다.

전대협 1~3기 의장 출신의 이인영 임종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 모두 지역구에서 여당 후보에게 간발의 차로 밀렸다. 야권에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진보세력의 20년에 대한 혹독한 평가"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더불어 차제에 486도 변해야 한다는 혁신론도 제기됐다.

18대 총선에서 낙선 이후 4년간 절치부심했던 486은 지난해 4ㆍ11 총선을 통해 화려하게 재기했다. 특히 전대협 초기를 이끌었던 이인영 우상호(이상 재선) (3선) 의원 등은 재선 고지 이상에 오르며 당내 입지가 더욱 공고해졌다.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19대 국회에 입성한 486 민주당 의원들로는 (44ㆍ초선ㆍ서울 중랑을) (3선ㆍ서울 강북갑) 우상호(재선ㆍ서울 서대문갑) (48ㆍ재선ㆍ서울 마포을) 이인영(재선ㆍ서울 구로갑) 윤관석(53ㆍ초선ㆍ인천 남동을) (49ㆍ3선ㆍ광주 북구갑) 김태년(48ㆍ재선ㆍ성남 수정) 유은혜(51ㆍ초선ㆍ고양 일산동구) 김현미(51ㆍ재선ㆍ고양 일산서구) 최재성(48ㆍ3선ㆍ남양주갑) (50ㆍ3선ㆍ시흥을) 김민기(48ㆍ초선ㆍ용인을) 박완주(47ㆍ초선ㆍ천안을) 김승남(48ㆍ초선ㆍ고흥 보성) 김기식(47) 김현(45) 진성준(46) 임수경(이상 초선ㆍ비례대표) 의원 등이 있다.

정청래
대선 패배에도 여전한 입지

당내에서 486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진 것은 대선 패배 후 이들의 행보 때문이다. 486들 중 핵심 인사들이 대선 때 문재인 선거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진솔한 반성 없이 '다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실제로 이들은 박영선 의원을 혁신형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가 비주류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 과정에서 일부 486은 "경선까지도 불사하겠다"고 오만하게 굴었다가 비난을 뒤집어썼다.

일부 486이 비판과 비난을 무릅쓰고 선거캠프의 핵심이었던 박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밀었던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3월 하순쯤으로 예정돼 있는 차기 전당대회에서 486이 당권을 잡기 위해 '경쟁자'를 일찌감치 '교통정리' 하려 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이 당권에 도전할 경우 486으로서는 표 분산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비주류와 486 내 또 다른 진영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오만하기 짝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비주류 측 한 의원은 "자기들이 선거를 주도해놓고 이제 와서 공동책임이라니 도대체 양심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최재성/연합뉴스
핵심이었던 이인영 우상호 의원뿐 아니라 청년위원장, 유은혜 홍보본부장, 김기식 단일화 협상당원 등은 문재인 캠프의 주축들이었다. "486은 스스로를 조연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주류"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 패배 후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친노는 물론이고 심지어 TV 토론회에서 막말 논란을 빚었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에게마저도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유독 486만은 무풍지대에 있다"면서 "당권을 노리기에 앞서 진솔한 반성이 선행돼야 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라고 지적했다.

이인영·우상호 "내가 486 선두주자"


전대협 1기의장·부의장 출신… 김근태·범 친노계
때론 협력 때론 경쟁하며 민주당 간판으로 성장


과거 486의 얼굴 격이었던 김민석 임종석 전 의원이 정치적 휴지기를 맞으면서 이인영 우상호 의원이 그룹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의원과 우 의원은 가깝게는 차기 당권, 멀게는 차기 대권에도 어떤 형태로든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총선을 통해 여의도로 돌아온 두 사람은 두 차례 전당대회에서 나란히 최고위원에 오르며 몸집을 불렸다. 이 의원은 1ㆍ15 전당대회, 우 의원은 6ㆍ9 전당대회 때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둘은 한 사람이 출마할 때, 다른 한 사람은 양보하는 형태로 간접지원을 했다.

같은 486이지만 두 사람의 성향까지 판박이는 아니다. 둘은 닮은 듯 다른 듯하다. 486이자 전대협 1기 의장과 부의장이었다는 점 그리고 17, 19대 재선의원이라는 점에서는 닮은꼴이지만 정치 행보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강기정
이 의원은 '리틀 김근태'로 불린다. 김 전 의원이 이끌었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의 회장은 3선의 최규성 의원이 맡고 있지만 이 의원의 역할도 작지 않다.

우 의원은 성향상 범친노에 가깝다. 우 의원은 지난해 한명숙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 총선을 지휘했을 때 전략홍보본부장을 맡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우 의원은 지난 대선 때는 공보단장을 맡아 문재인의 '입'으로 활약했다.

우 의원은 대변인만 7번 지냈을 만큼 다정다감한 성격에 화려하면서도 재치 있는 언변을 자랑한다. 언젠가부터 '우상호=민주당 얼굴'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런가 하면 486과 가까운 우원식 의원은 지난해 민평련의 대선주자 지지 결정 회의 때 확고한 소신과 뚝심으로 화제를 모았다. 회원들의 투표 결과 손학규 전 대표가 1위에 오르자 우 의원은 "그래도 1위인데 가서 도와야 하지 않겠냐"며 손 전 대표 진영에 합류했다.

민평련은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왔을 때만 공식 지지를 표명하기로 했다. 손 전 대표는 1위에 오르긴 했으나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조정식
민주당 관계자는 "대중성, 정치적 역량 등을 고려했을 때 486 의원들 가운데 이인영 우상호 의원이 가장 도드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오랜 인연의 두 사람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는 일이 많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우상호(왼쪽) 의원과 이인영 의원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