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라이 자금'이 몰려온다저축은행서 모기지론까지 국내 금융시장 눈독국내기업과 합작사 세우고 투자패턴도 더 과감해져 고수익 따른 국부유출 우려

연합뉴스
'아베 트레이드'라 불리는 일본 정부의 통화 완화정책이 우리 금융시장에까지 파장을 미치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이 잇달아 양적완화정책에 나서면서 일본 내 유동자금이 넘쳐나고 엔저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내 경기침체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들 중 일부는 한국 시장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시장에서 풍부한 자금력을 앞세워 사무라이 자금들이 한국 시장 내 입지를 확대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사무라이, 적극적 러브콜

과거 일본계 자금들의 투자 성향은 극히 보수적이었다. 국내 금융시장에 투자를 해도 일부 재무적투자자로 참여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만큼 안정성을 최우선에 두고 제한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국내 금융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거나 국내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하는 등 투자 패턴이 한층 과감해졌다.

여기에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달라진 위상이 반영돼 있다. 현대캐피탈과 합작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SBI모기지가 대표적이다. SBI모기지는 국내 시장에서 장기고정금리 모기지론 상품 취급을 위해 지난해 4월 코스피에 상장까지 마친 기업이다.

합작사 설립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때문에 아직까지 합작사 설립 가능성을 확신할 수는 없는 단계. 다만 SBI모기지 측은 현대캐피탈이 한국 시장 내에서 보유한 브랜드 파워 및 전국적인 영업 채널 등을 높게 평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금융그룹인 SBI그룹도 최근 현대스위스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최대 주주가 됐다. SBI그룹은 자회사인 SBI파이낸스코리아를 통해 현대스위스저축은행 지분 20.9%를 보유하며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은 단순한 재무적투자자 역할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유상증자로 SBI그룹은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의 지분을 최대 80% 이상 보유하게 된다. 현대스위스를 비롯해 산하의 현대스위스2ㆍ현대스위스3ㆍ현대스위스4저축은행에 대해 경영권 역시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SBI그룹 측은 이번 유상증자에 필요한 자금을 100% 일본에서 조달할 계획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의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고 엔저 현상 등으로 일본 내 자금들이 한국 금융시장 진출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일본 대부업체인 제이트러스트가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하고 현재 친애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꿔 영업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일본 금융그룹인 오릭스도 2010년 푸른저축은행의 계열사인 푸른2저축은행을 인수하며 국내 저축은행업에 진출했다.

대부업계에서도 큰손

일본계 자금이 국내시장에 들어온 것은 비단 저축은행만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대부업계를 중심으로 입지를 넓혀왔다.

지난해 10월 현재 국내 대부업시장에서 일본계 대부업체의 수는 18곳으로 전체의 2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대출잔액 상위 20개 대부업체(등록대부업체 대부잔액의 71.5%)를 조사한 결과 일본계 업체가 전체 대출채권의 47.6%를 차지했다. 즉 일본계 사금융회사들이 국내 대부업시장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계 자금이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등 서민금융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금융계의 한 전문가는 "대출 심사와 추심 노하우가 발달한 일본계 회사들이 저축은행에 계속 진출한다면 대부업처럼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일본계 금융사들이 거둔 막대한 수익을 일본으로 가져갈 경우 국부 유출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오릭스저축은행 둥지 튼 옛 제일은행 임직원
샤켓 전 부행장은 CEO·장찬 상무는 COO 선임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전신인 제일은행 직원들이 무더기로 오릭스저축은행에 둥지를 틀고 있다.

킷스 샤켓 전 제일은행 소매리스크관리본부장 겸 부행장은 최근 오릭스저축은행의 최고경영자(CEO)에 임명됐다. 장찬 전 제일은행 소매리스크 관리부문 상무는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선임됐다.

2000년대 초반 제일은행을 이끌던 '역전의 용사'들이 오릭스에 모여 다시 한 번 경영 전면에 나선 셈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박홍태 전 제일은행 부행장과 조두희 전 제일은행 재무담당 상무 등 최근 오릭스에 자리를 잡은 제일은행 출신 임직원들이 약 2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옛 제일은행 임직원들이 오릭스저축은행 인수 작업에 착수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초 오릭스는 보유 지분 99.91%를 버팔로KC펀드(PEF)에 전량 매각, 이중 51%의 지분을 LP(유한책임)투자자로 다시 보유할 계획이었다. 나머지 49% 지분은 미국계 올림푸스캐피탈과 옛 제일은행 임원진 등이 투자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특히 버팔로KC펀드는 샤켓 CEO와 장 COO가 무책임투자자(GP)로, 로버트 코헨 전 제일은행장이 펀드의 자문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금융 당국이 "기존 대주주인 오릭스가 지분을 전량 매각한 뒤 LP투자자로 참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매각 작업이 무산됐다.

이에 오릭스는 매각 방식을 변경, 올해 초 지분 일부를 처분했다. 올림푸스캐피탈홀딩스 아시아와 버팔로KC펀드, 모닝스타 사모펀드(PEF) 등 투자자 3곳이 오릭스 지분 23%를 매입, 공동 경영하는 방식이다.

샤켓 CEO 등이 주축이 된 버팔로KC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오릭스 지분은 현재 10% 미만. 하지만 점차 보유 지분을 확대해 오릭스의 최대주주로 오를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샤켓 CEO와 장 COO는 지난 2006년 스탠다드차타드가 옛 제일은행을 인수한 뒤 은행을 나와 함께 모기지대출 전문 대부업체인 페닌슐라캐피탈을 설립해 영업을 해왔다. 이들은 지난 2011년 4월에도 올림푸스캐피탈과 컴소시엄을 구성, 솔로몬저축은행의 자회사인 경기솔로몬저축은행 인수전에 참여했을 정도로 저축은행 인수에 큰 관심을 보여왔던 것도 사실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오릭스가 저축은행 사업 철수를 추진하면서 제일은행 출신 임원들에게 경영권을 넘길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며 "제일은행 출신 임원들이 페닌슐라캐피탈에서 성공을 바탕으로 오릭스를 모기지대출 전문은행으로 차별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유미기자 yiu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