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입당보다 창당에 무게민주 전당대회서 친노 당권 잡을 땐 속도10월 재보선 출마 가능성

안철수
'전직 잠룡(潛龍)'이었던 전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제18대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 12월19일 홀연 미국으로 날아간 안 전 원장은 언제 돌아올까. 돌아오면 어떤 행보를 이어갈까. 신당을 만들까, 아니면 민주통합당에 입당할까. 요즘 정가의 최대 관심사는 의 행보다.

지난해 대선 때 안 전 원장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았던 금태섭 변호사는 지난 4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지난 선거에서 안 전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정당의 중요성을 실감했다"면서 "어떤 형식으로든 조직을 만들긴 하겠지만 방침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해 신당 창당에 무게를 실었다.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안 전 원장을 만났다는 금 변호사는 안 전 원장의 입당과 관련해 "민주당이 집권하면 '이런 것을 잘할 것 같다'는 포지티브(긍정적인)한 모습을 보여줬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으면서도 "구체적인 향후 계획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안 전 원장의 민주당 입당 가능성에 대해 더 크게 손사래를 쳤다. 안 전 원장이 민주당에 들어가면 중도보수 성향의 지지층은 잃은 채 계파 싸움에 휘말려 생채기만 생길 수도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안 전 원장이 측근 몇 사람을 데리고 흡수되는 형태로 민주당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훗날 신당이 민주당과 합당한다 하더라도 양측이 대등한 입장에서 테이블을 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공동선대본부장을 지낸 송호창(무소속) 의원은 지난달 8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 "안 전 후보와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손학규 고문과 연대할 듯

민주당 한 관계자는 " 전 원장이 지금 뭐가 아쉬워서 민주당에 입당하겠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 입당 불가' 이유로 ▲대선 패배 후 계속되는 지리멸렬한 책임 공방 ▲친노(친 노무현)계에 대한 안 전 원장의 거부감과 당내 계파 간 알력 ▲새 판 짜기에 대한 안 전 원장의 강한 욕구 등을 꼽았다.

실제로 대선 패배 후 두 달이 다 돼가지만 민주당 내 책임론 공방과 계파간 알력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중립 성향의 중진인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고민 끝에 총대를 메고 당 쇄신에 나섰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민주당에 대한 불신과 새 정치에 대한 갈망도 안 전 원장의 민주당 입당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금태섭 변호사는 지난 4일 인터뷰에서 "민주당에 계신 분들이 스스로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고 꼬집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국민 여론 역시 안 전 원장의 민주당 입당에 부정적이다. 최근 문화일보 여론조사 결과, 안 전 원장의 정계복귀 방식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2.4%가 새로운 신당 창당이 적절하다고 답한 반면, 민주당으로 입당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19.2%에 불과했다. 특히 민주당의 전통적 기반인 광주ㆍ전라 지역에서도 안 전 원장이 신당 창당을 통해 복귀해야 한다(48.8%)는 응답자가 민주당에 입당해야 한다(29.0%)는 응답자보다 많았다.

지난달 15일 독일로 출국한 손학규 상임고문과 안 전 원장 간의 내적인 교감도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26일 배석자 없이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안 전 원장은 손 고문과 만나기 3일 전 대선후보에서 전격 사퇴했다.

회동 후 양측은 "손 고문이 안 전 원장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고 설명했지만 정가에서는 향후 어떤 형태로든 두 사람이 손을 잡게 될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두 사람은 비노라는 정치적 성향과 중도 노선 등 여러 면에서 공유할 부분이 많다. 또 안 전 원장이 낙마하자 정치권에서는 "손 고문에 이어 안 전 원장도 친노에 당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동병상련이라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손 고문이 독일에서 6개월 정도, 안 전 원장이 미국에서 3개월 정도 머물 예정이었던 만큼 두 사람이 자유롭게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당대회와 상관관계

민주당은 당대표 등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개최 시기, 룰 등 구체적인 방안은 결정되지 않았으나 설 연휴(9~11일) 직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친노 등 주류에서는 새 지도부가 한명숙 전 대표의 잔여임기(2014년 1월)만 채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비주류에서는 2년 임기를 제대로 보장하자고 맞불을 놓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선후보 경선 때 김두관 전 경남지사 캠프에 몸담았던 민병두 홍보전략본부장은 지난 2일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안 전 후보가 10월 재보선 때 후보를 내세울 텐데 단일화를 안 해서 둘 다 지면 당 지도부 교체 주장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 본부장은 이어 "새 지도부를 전당대회가 아닌 중앙위원회에서 선출하되 이전 지도부의 잔여임기만 맡기자"고 역설했다. 신당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목표로 삼을 게 확실시되는 만큼, 새 지도부가 임기를 마치는 내년 1월 신당과 통합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논리다.

이처럼 안 전 원장의 행보가 민주당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반대로 전대가 안 전 원장의 발걸음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전대에서 어느 쪽이 당권을 잡느냐에 따라 신당의 몸집이나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친노 등 주류에서 당권을 잡는다면 안 전 원장 측은 민주당과 더욱더 거리를 둔 채 '새집' 짓기에 열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반면 비주류 측에서 차기 당권을 잡는다면 입당론이 재점화될 수 있다. 안 전 원장 측 인사들과 비주류 측은 비노(비 노무현)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따라서 비주류가 전대를 통해 주류로 나서게 된다면 안 전 원장에 대한 구애는 한 층 더 뜨거워질 수 있다.

민주당 전대 결과와는 상관없이 안 전 원장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신당은 물론,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전체의 변화를 불러 올 수 있다.

안 전 원장의 귀국 후 행보와 관련해선 10월 재보선 출마설, 내년 지방선거 출마설, 그리고 출마 대신 선거에 나서는 ' 사람들'을 지원해 신당의 틀을 갖추는데 전력할 것이라는 등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안 전 원장, 또는 측근들이 10월 재보선 때 수도권과 호남에 출격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완성도'를 떠나 신당의 창당 시점을 재보선 전으로 볼 수 있다.

재보선에서 ' 사람들'이 어느 정도 성적을 낸다면 내년 지방선거 때는 신당이 좀더 모양새를 갖춰 지방권력 획득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련의 선거를 통해 안 전 원장과 그의 측근들이 재보선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린다면 민주당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만약 안 전 후보가 호남에 직접 출마해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안방을 내주는 거나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해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후보와 경쟁할 때도 호남은 안 전 원장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내지 않았냐"면서 "현실적으로 대표성을 띨 만한 거물이 없는 상태에서 안 전 원장이 호남을 얻는다면 신당 창당 작업에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남 민주-신당 2강

신당이 태어나면 야권은 세 가지 형태로 나뉠 수 있다. 중도진보의 민주당, 중도보수의 신당, 진보정당인 진보정의당 등 세 그룹이 경쟁과 협력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신당이 민주당과 합당을 거부하고 끝내 독자노선을 걷는다면 의원들의 셈법은 복잡해진다. 특히 '호남의 사위'인 안 전 후보가 10월 재보선 때 호남지역에 출마해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다면 의원들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의원들 중 일부는 사실상 내년 지방선거 출마 준비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3선 연임 제한에 걸린 박준영 지사가 '무조건' 떠나게 될 전남지사 자리를 놓고는 벌써부터 '예비후보'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과거 같으면 호남지역에서는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재보선을 통해 안 전 원장이 호남에서 새롭게 대표성을 인정받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 호남에서는 민주당과 신당의 2강 체제로 선거구도가 전개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출마를 염두에 둔 몇몇 의원들이 민주당을 나와 신당에 몸을 맡길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안 전 원장 중심으로 야권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는 정반대의 전망도 있다. 안 전 원장이 신당을 만든다 하더라도 새누리당이나 민주당만큼 지역기반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금세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의원들로서는 신당에 잠시 흔들릴 수는 있지만 탈당이라는 모험까지는 감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여기서 비롯된다. 또 신당이 굳건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의원들로서는 섣불리 몸을 옮겼다 되레 낭패만 볼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의 신당 참여 여부와 별개로 안 전 원장 측은 '선별적' 수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안 전 원장 측은 지난 대선 때도 이 같은 방침을 표방했었다. '아무나'와는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 신당의 궁극적인 목표는 3년 뒤 제20대 총선"이라며 "그 전에 치러질 재보선이나 지방선거에서는 주요 지역에 후보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조직만 갖춘 뒤 2016년 총선에 맞춰 정식으로 깃발을 올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아직은 이른 얘기지만 추후 민주당 내에는 친노 직계 정도만 남고 안 전 원장 측과 손학규 고문 그리고 비주류 측이 한데 모여 완전히 새로운 둥지를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