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당선인 국정원 개혁 칼 대나

여직원 불법선거 계기 국정원 개혁 목소리 높아
정보부장 김재규 총탄에 아버지 박정희도 숨져

직원 충성심 낮아지고 적성 고려한 인사배치 실패
각종 허술한 처신 도마위… 조직 축소·환골탈태 불가피

이명박 정부 임기 말 국가정보원 소속 여직원의 불법 대선 개입 의혹으로 야당의 정치 공세가 치열한 가운데 박근혜 당선인이 국정원을 대대적으로 개혁ㆍ개편할 것이라는 전망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이명박 정권에서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국정원의 핵심 업무인 북한 관련 주요 정보의 수집은 기대에 못 미쳤고,국정원 여직원의 불법 대선 개입 의혹에서 보듯 조직원들의 허술한 처신과 공작 활동이 여러번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럴 때마다 국정원은 "비밀유지원칙 때문에 아무것도 밝힐 수 없다"는 식으로 '비밀유지원칙'을 방패 삼아 정치권이나 언론의 비판에 침묵으로 대응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권력 이양기를 맞아 국정원에 대한 문제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박 당선인의 트라우마

불법 대선개입 의혹사건과 관련, 민주통합당은 지난 13일 시민단체와 함께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 근절을 위한 개혁방안 긴급토론회'를 갖고 국정원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국정원 직원의 불법선거운동 사건을 통해 볼 때 국정원의 조직적인 국내 정치 관여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며 "이는 국가정보원법 9조 '국정원의 국내정치 관여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국정원이 정권이 아닌 국가를 보위하는 기관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실체적 진실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국정원 직원이 선거에 관여하는 그 자체는 엄청난 일을 한 것으로 만약 사실이라면 최악의 국기문란 사건"이라며 "그렇다면 불법선거운동의 결과 정도로 응징돼서는 안 되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있어야 한다"며 국정원 개혁을 촉구했다.

불법선거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연합뉴스
장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은 국가정보원을 '통일해외정보원'으로 이름까지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소장은 "선진국가들처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국내정보 수집 기능을 떼어 내는 것이 타당하다"며 "국가정보원은 해외 활동을 중심으로 북한과 관련이 있는 국내정보만 제한적으로 수집하도록 해 '전문적인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게 하자"고 강조했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원회측의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진다. 인수위는 국정원 조직 개편의 필요성은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당선인이 취임 후 사정기관 중 국정원이 가장 먼저 개혁의 수술대 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박 당선인이 정보기관에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시절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언제나 양날이 칼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재임 동안 정보부의 덕을 많이 봤지만, 정보부 때문에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결국에는 정보부 수장의 손에 의해 운명을 달리했다.

박 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정치적 치명상을 입힌 인물은 김형욱 4대 중앙정보부장이고, 암살한 인물은 김재규 8대 정보부장이다.

김형욱 전 부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말년에 박동선사건ㆍ김대중 납치사건의 증언자로 미 의회의 증언대에 섰고, 박 전 대통령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회고록까지 계획했다가 출판을 앞두고 해외에서 의문사했다.

김재규 전 부장 역시 박 전 대통령을 받들다 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 만찬회 석상에서 박 전 대통령을 사살하는 '10ㆍ26사태'를 일으켰다.

이런 사건 등으로 국정원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박 당선인은 취임과 함께 국정원의 힘을 뺄 것이라는 관측이 인수위 안팎에서 끊임없이 나온다. 심지어 국정원의 역할과 규모를 절반 정도 규모로 줄인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대신 청와대가 정보라인을 강화해 정보업무를 대통령이 직접 관리함으로써 국정원이 지금처럼 권력화하는 것을 방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수위, 국정원 개혁 급선무

민주당은 박 당선인 취임 이후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국정조사 또는 특검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하나씩 드러나는 선거 개입 관련 내용을 경찰이 대선 전에 밝혔다면 지난 대선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에 따라 인수위측도 국정원 개혁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에는 국정원 개혁과 관련된 자료가 올라가고 있으며 그중에는 심리전국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국정원 소식통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국은 과거 한직으로 분류되는 부서였으나 최근에는 국정원의 국내역할 강화로 주요 부서로 위치가 상승됐다.

또 조직에 대한 국정원 직원들의 충성심이 낮은 요인을 분석한 보고서가 인수위에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과거에 비해 조직원의 충성심이 낮아진 요인으로 인사및 교육 부실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성향과 특기, 적성을 고려치 않은 인사배치 ▲명문대 졸업자 중심의 직원 선발 및 우대 ▲보직 및 국가관 교육 부실 ▲업무 미숙자 혹은 조직 미적응자에 대한 대비책 부족 등이다.

최근에 퇴직한 한 국정원 직원은 "소위 SKY대학 중심으로 직원을 선발하다 보니 정보 업무와 맞지 않는 인력이 많아진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간부 출신의 한 소식통은 "예전에 여성 인력을 많이 늘였다는 말을 듣는 순간 '부작용이 있겠구나' 생각했다"며 "여성은 남성보다 적성에 대한 고려를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정보기관의 업무는 특히 그렇다"고 말했다.

또한 "명문대 중심의 직원 선발은 소위 '도요타ㆍ미쓰비시 현상'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도요타ㆍ미쓰비시 현상'이란 일본을 대표하는 두 회사의 성공과 실패 원인을 분석한 것으로 경영학에서 조직관리의 한 사례로 거론된다. 동경대, 와세다대 등 명문대학 출신자들 위주로 직원을 선발한 미쓰비시와 전국에서 재능을 가진 우수한 인재를 널리 모은 도요타가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 문화에서 뚜렷하게 차이를 보인 것이다.

미쓰비시는 선후배로 연결된 직원들이 인맥을 중요시하다 보니 개인의 능력 개발이나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되려 떨어졌고, 도요타는 회사 내에서 명문대와 비 명문대 출신간의 경쟁이 유발되면서 회사의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SKY 중심으로 직원을 선발하다 보면 미쓰비시의 길로 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대해 국정원은 "과거에 비해 SKY 출신의 비율이 줄고 있어 타 국가기관과의 관계상 오히려 더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지방대 출신들의 입사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수위측은 국정원 인사의 문제점에 대한 보고와 함께 국정원 측의 입장도 반영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인사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박근혜정부에서 국정원의 조직을 축소하고 종래 국정원이 담당하던 역할상당 부분을 청와대 국가안보실로 이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원이 환골탈태의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윤지환기자 j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