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태열 비서실장을 통해 본 역대 청와대 2인자들전윤철 '최단명' 김정렴 '최장수' 대통령 1명당 평균 3.7명 재임청와대 직원중 유일하게 관사 생활국민의 정부시절 김중권 정치력·조직 장악력 조화 '평가'

연합뉴스
장고(長考) 끝에 내린 결정은 결국 복심(腹心)이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을 보필해야 할 자리이기에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이 자리에만은 측근 중의 측근을 앉혔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이 새 정부 출범 1주일 남겨둔 지난 18일 허태열(68) 전 새누리당 의원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허 비서실장 내정자는 정통 내무 관료를 거친 3선 경력의 친박계 전직 의원이다.

지난해 4ㆍ11 총선 때 물갈이 바람에 밀려 배지를 달지 못했던 허 내정자이기에 '가급적이면 현역 의원을 청와대로 부르지 않겠다'는 박 당선인의 의중에도 부합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관료 출신의 정치인이지만 허 내정자는 청와대와도 인연이 깊다. 허 내정자는 1974년부터 11년간 청와대 비서실에서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허 내정자는 퍼스트레이디 대행 시절 박 당선인을 '모셨던' 경험을 갖고 있다.

허 내정자는 "박 당선인의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국정철학을 성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보좌해 나가겠다"면서도 "귀는 있는데 입은 없는 게 비서 아니냐"며 말을 아꼈다.

경북 울진 출신인 김중권(오른쪽) 전 실장은 사상 첫 호남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 밑에서 비서실장을 지내며 직언과 고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로 평가된다.
허 내정자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면 역대 34번째로 비서실장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1987년 5년 단임제로 대통령을 선출한 이후로 살펴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3명, 김영삼 전 대통령은 4명, 김대중 전 대통령은 5명, 노무현 전 대통령은 4명, 이명박 대통령은 4명의 비서실장을 뒀다.

3개월부터 9년까지

1960년 윤보선 전 대통령이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한 이후 비서실장에 오른 인물은 허 내정자를 포함해 총 34명이다. 최초의 비서실장이었던 이재형 전 실장은 1960년 10월부터 1962년 4월까지 청와대에 근무하며 윤 전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동원 전 실장을 시작으로 이후락 김정렴 김계원 최광수 등 5명의 비서실장을 뒀다. 김정렴 전 실장은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만 9년2개월 동안이나 박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재임기간이 8개월에 불과했던 최규하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최광수 전 실장을 유임시켰다. 최 전 대통령에 이어 권좌에 오른 전두환 전 대통령은 김경원부터 김윤환까지 모두 7명의 비서실장을 뒀다. 1년에 1명씩 갈아치운 셈이다.

왼쪽부터 전윤철, 류우익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 5년 동안 홍성철 노재봉 정해창 등 3명의 비서실장과 일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관용 한승수 김광일 김용태 비서실장 4명과 호흡을 맞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중권 한광옥 이상주 전윤철 박지원 등 5명의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감사원장도 지냈던 전윤철 전 실장은 김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이던 2002년 1월29일에 임명됐다가 같은 해 4월15일 청와대에서 나왔다. 재임기간이 채 석 달도 안 됐다.

이상주 전 실장은 2001년 9월10일부터 이듬해 1월28일까지 약 100일간만 대통령을 보좌해 역대 최단명 2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전윤철 이상주 전 실장이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것은 아니다. 전 전 실장은 진념 당시 경제부총리가 경기지사에 출마하자 부총리로 자리를 옮겼고, 이 전 실장은 비서실장에서 교육부총리로 이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희상 김우식 이병완 문재인 4명의 비서실장과 손발을 맞췄다. 국회부의장을 거쳐 현재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희상 전 실장은 1년간 청와대에서 재직했고, '노무현의 친구'인 문재인 전 대선후보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류우익 정정길 임태희 하금열 등 4명의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류우익 전 실장은 미국산 소고기 파동에 따른 촛불시위 여파로 4개월 만에 낙마했으나 MB 정부에서 주중대사, 통일부 장관 등 승승장구했다.

김정렴(오른쪽) 전 실장은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만 9년2개월 동안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대통령비서실장론'을 쓴 함성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류 전 실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실세였지만 정치를 잘 몰라 야당과의 관계뿐 아니라 정부 여당과도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김중권 그리고 임태희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필하지만 대통령과 따로 움직일 때도 있다. 특히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갈 때면 비서실장은 대통령 대신 청와대를 지켜야 한다. 이런 기간에는 어지간하면 서울을 벗어나지 않는다.

비서실장은 수석비서관회의는 물론이고 각종 긴급회의에도 참석한다. 비서실장이 청와대 직원 가운데 유일하게 청와대 인근의 관사에서 지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도 그랬듯이 역대 대통령들이 비서실장 인선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비서실장이란 자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비서실장이 흔히 '대통령의 분신', '대통령의 순장(殉葬)조' 등으로 불리는 것도 괜한 말이 아니다.

이처럼 중요한 자리가 대통령 비서실장이지만, '죽을 각오'를 하고 대통령에게 고언을 했던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임태희 전 실장마저도 "대북 정책의 중요성 같은 것은 좀더 강하게 말했어야 했다"고 회고할 정도다.

역할에 따른 고충이 크다 보니 장수하기 어려운 자리가 비서실장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 김정렴 전 실장이야 9년이 넘게 자리를 지켰지만 1년도 못 채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윤보선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대통령 한 명이 재임기간에 평균 3.7명의 비서실장을 뒀다.

역대 비서실장 중 대외 정치력과 청와대 내부 조직 장악력이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인사로는 국민의 정부 초대 실장이었던 김중권 전 실장과 현 정부의 임태희 전 실장 등이 꼽힌다.

경북 울진 출신인 김중권 전 실장은 사상 첫 호남 출신 대통령 밑에서 비서실장을 지내며 직언과 고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로 평가된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은 김 전 실장은 1년9개월 간이나 재임하며 국민의 정부가 연착륙하는 데 적잖은 힘을 보탰다.

2010년 7월 고용노동부 장관에서 청와대로 발탁된 임 전 실장은 임기 동안 여야 정치인들과 접촉하며 보폭을 넓혀갔다. 학자 출신인 전임 류 실장과 정정길 전 실장과 비교하면 임 전 실장의 정치력은 한층 더 돋보였다.

청와대 소식통은 "새 정부 초대 비서실장으로 허태열 전 의원이 발탁됐다는 것은 그만큼 박 당선인이 정권 초 순항을 위해 허 내정자의 경륜과 경험을 높이 샀다는 증거"라며 "박 당선인에 앞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하나같이 초대 실장으로는 정치인을 기용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 대통령 비서실장 역할·덕목
악역·군기반장 자처해야… 당·정·청 가교역할도 필수



전문가,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관계자 등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비서실장의 역할과 덕목은 크게 4,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대통령을 대신해서 악역을 맡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청와대를 '대표하는' 악역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실시됐던 공직자 재산 공개 때 수많은 정치인과 공직자가 하루아침에 옷을 벗어야 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강한 반발 기류가 형성됐다. 이때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에 나섰던 이가 박관용 전 비서실장이다.

둘째, 군기반장이다. 청와대 내부에는 출신지역, 출신학교, 출신성분에 따라 여러 형태의 파벌이 조성될 수 있다. 조직을 장악하기는커녕 비서실장이 되레 끌려 다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비서실장에게는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더구나 새 정부의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인사를 돕는 인사위원장 자리를 겸하도록 돼 있어 역대 어느 비서실장보다 역할과 권한이 커졌다.

셋째, 당정과 청와대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무감각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박근혜 청와대의 초대 실장은 반드시 정치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정치 행위만으로는 부족하고 정치력과 정무감각을 겸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넷째, 파트너 역할이다. 대통령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영부인과 비서실장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근혜 당선인은 화려한 정치경력을 자랑하지만 여성인 데다 독신이기 때문에 비서실장이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진 셈이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인사는 "비서실장은 단순히 청와대 비서관들의 수장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특히 박 당선인은 조용히 일을 하는 스타일이어서 비서실장은 적극적인 고언과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