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4월 재보선 노원병 출마"미적거릴수록 득보단 실"… 여야 정쟁도 복귀 명분 제공… 향후 정국의 중심축 부상민주 친노·진보정당 거부감… '1여다야' 구도 가능성도여당, 허준영·이준석 등 거론… 신인 대항마로 '김빼기'

안철수
가 달라졌다. 전 서울대 교수는 대선주자였던 지난해만 해도 지나치게 신중하다 못해 애매모호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세간에는 "안 전 교수는 자진해서 출마한 게 아니라 호출된 케이스"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그랬던 안 전 교수이기에 내달 24일 재보선 전격 출전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안 전 교수의 측근인 송호창 무소속 의원은 지난 3일 "안 전 교수가 4월 재보선 때 서울 노원병에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안 전 교수는 4월 재보선 때는 측근들을 내세운 뒤 지원에만 충실하고 10월 재보선 때 직접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지금까지 안 전 교수가 보여준 '스타일'을 감안하면 이 같은 관측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안 전 교수의 등판이 기정사실화됐고 이에 따라 정치권의 주판알 튕기기도 분주해졌다. 새누리당은 공식적인 대응은 자제한 채 일단은 조심스레 관망하고 있다. 민주통합당과 진보정의당 등 야권은 "왜 하필 노원병이냐"며 불만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른바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지난달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지난 4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노원병은 안 전 교수가 오지 않더라도 야권이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이라며 "가난한 집 가장이 밖에 나가서 돈을 벌 생각을 해야지 집 안에 있는 식구들 음식을 나눠먹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표는 지난해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안 전 교수가 동지 또는 연대의 대상이라는 전제하에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안 전 교수의 측근인 송 의원은 지난 5일 "지금까지 야권은 대안과 비전이 아닌 반여(反與) 후보 단일화에 모든 것을 건 '반대의 연합'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요구했다"며 "이런 방식으로는 새로운 정치도, 거대 여당을 뛰어넘는 대안세력의 성장도 가능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송 의원의 발언은 야권 단일화라는 명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안 전 교수의 4월 출마 선언과 송 의원의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안 전 교수 측이 사실상 민주당과의 결별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당장 4월 재보선만 해도 민주당의 공천 여부와 무관하게 안 전 교수 측이 독자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에도 안 전 교수가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면 더 이상 ' 현상'은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의 고조가 출마 결정으로 이어진 것 같다"며 "일련의 행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안 전 교수가 민주당에 굿바이 인사를 한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 정계에 등장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안 전 교수가 여권도 야권도 아닌 제3지대에서 재기를 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4월 복귀 왜

예상과 달리 안 전 교수가 4월 등판을 결정한 것은 현재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아닌 제3세력의 결집을 위해 더는 미적거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으로 해석된다.

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안 전 교수가 발걸음을 재촉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안 전 교수 진영 내부적으로도 "미적거릴수록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의 친구들'이 제대로 힘을 쓰기 위해서는 당장 내달 재보선 때부터 조직이 가동돼야 하고, 그러려면 안 전 교수 본인이 직접 뛰어드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지난달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여야 모두 혁신이나 새 정치와는 거리가 먼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안 전 교수의 복귀에 명분을 제공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민주당 내부적으로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계파 간 정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안 전 교수에게 길을 터준 셈이 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이 끝난 지 석 달이 다 돼가지만 당은 여전히 이전투구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나중에 민주당이 에게 흡수되지 말란 법도 없다"고 일갈했다.

안 전 교수가 고심 끝에 복귀를 선언했지만 현재까지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큰 것 같다. 이는 안 전 교수가 자신의 고향인 부산이 아닌 비교적 당선 가능성이 큰 노원을 택했다는 점 때문으로 분석된다.

허준영
특히 노 전 의원이 공동대표로 있는 진보정의당은 "일방적인 출마 선언은 유감"이라며 즉각 반발했고, 이동섭 민주당 노원병 지역위원장도 "안 전 교수의 어떤 결정에도 굴하지 말고 속히 후보를 선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지난 5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 전 교수의 '노원병 출마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46.0%로 찬성(34.1%)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았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야권후보 단일화는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민주당만 하더라도 친노 등 주류에서는 안 전 교수의 등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여기에 진보정의당, 통합진보당까지 안 전 교수를 끝내 백안시한다면 선거는 '1여 다야(多野)' 구도 속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치권 관계자는 "안 전 교수가 여러 난관을 뚫고 노원병에서 당선된다면 향후 정국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5월 민주당 전당대회, 10월 재보선 등을 거치고 난 뒤 신당이 탄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제2의 손수조 등판?

이준석
이철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안 전 교수의 출마 소식이 전해진 지난 3일 오후 "(안 전 교수는) 대선에 나왔던 분이고, 새 정치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치가 새롭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지지도 꽤 많았다. 본인으로 봐서는 정치판에 와서 한 번 일을 해보고 싶은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 대변인은 이어 "하지만 지난 대선 때 보니까 본인이 직접 나서서 끝까지 가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꼼수 비슷하게 단일화를 했다. 이번에도 또 단일화를 들고 나와서 국민들에게 혼란을 줄까 우려된다. 이왕 출마한다면 자기 소신껏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야권의 단일화 논의를 경계했다.

안 전 교수의 등판이 공식화되기 전, 새누리당에서는 지난 총선 때 노원병에서 고배를 들었던 전 경찰청장의 출격 가능성이 거론됐다. 허 전 청장은 노원병 당협위원장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키드(Kid)'로 불렸던 전 비상대책위원의 출마를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황우여 대표조차 "어디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 전 교수의 출마가 가시화되면서 여권 일각에서는 에 걸맞은 상대를 차출해서 정면대결을 벌이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선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안대희 전 대법관 차출론(論)도 나온다.

정동영
이와는 정반대의 주장도 있다. 지난해 4ㆍ11 총선 때 사용했던 '김 빼기 작전'을 한 번 더 쓰자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후보가 출마했던 부산 사상구에 20대 정치 신인 손수조 후보를 내세웠다.

'예상대로' 문 후보가 낙승을 거뒀지만 아무래도 빛은 바랠 수밖에 없었다. 문 후보는 대선주자로까지 거론되는 인물이었기에 20대 정치 신인과의 싸움은 싱겁기만 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손 전 후보와 비슷한 '체급'의 선수를 출전시켜 안 전 교수의 김을 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야권 성향이 강한 노원병 재보선의 판을 키워야 할 이유가 없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안 전 교수가 출전해서 승리하더라도 재보선 여러 지역구 중 한 곳에서 당선된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게 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승리하면…

임종석
지난달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이재균 김근태 전 의원을 비롯해 김동완(충남 당진) 박덕흠(충북 보은ㆍ옥천ㆍ영동) 성완종(충남 서산ㆍ태안) 심학봉(경북 구미갑) 윤영석(경남 양산) 이재영(경기 평택을) 조현용(경남 함안ㆍ의령ㆍ합천) 정두언(서울 서대문을) 새누리당 의원, 민주당의 배기운(전남 화순) 신장용(경기 수원을) 이상직(전북 완산을) 의원, 무소속 김형태(경북 포항남ㆍ울릉), 통합진보당 김미희(경기 성남 중원) 의원 등 최대 16명이 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했다.

4월 재보선 지역은 서울 노원병, 부산 영도, 충남 부여ㆍ청양 3곳으로 확정됐고 나머지 13곳은 대법원 판결을 지켜봐야 한다. 만일 이들 13곳에서 모두 10월에 재보선이 열린다면 그야말로 '미니총선'이나 다름없게 된다.

안 전 교수는 4월 재보선을 통해 자신이 먼저 국회에 입성하고 측근들은 10월 재보선을 기회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10월 재보선 가능성이 있는 곳들 중 상당수는 수도권과 호남 등 야권 강세지역이라는 점도 안 전 교수 측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안 전 교수가 4월과 10월 잇따라 승전가를 부른다면 내년 6월 지방선거의 전망도 한층 밝아진다.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는 많은 예비후보들이 일찌감치 안 전 교수 진영에 몸을 맡길 수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안 전 교수 측의 행보를 보면 향후 목표가 단계적으로 확고하게 세워진 듯하다. 1차로 안 전 교수가 4월 재보선에서 승리하고 10월에 측근들이 나가 의석을 차지한다면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확고한 동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 전에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겠지만 내년 6월 지방선거는 박근혜 정부 초반에 대한 정치적 평가 내지는 심판 성격이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따라서 안 전 교수 측에는 그만큼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더 커지는 셈"이라고 내다봤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