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새정부 눈치보기' 점입가경한화·신세계·현대차 등 일제히 정규직 전환SPC 빵값 인상 철회… 농협은 대놓고 용비어천가진정성 결여된 땜질식 처방 평가 엇갈려

국내 대기업들이 새정부 출범에 맞춰 정규직 전환이나 가격 인하 등'눈치보기식'처방을 일제히 내놓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연합뉴스
국내 대기업들의 '새정부 눈치보기'가 점입가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가격 인상 문제부터 그간 사회적 문제로 지적받았던 부분을 시정하는 등 '코드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기업마다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행여 새정부에 밉보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만은 닮은꼴이다.

한화 가장 먼저 정규직전환

먼저 일부 대기업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며 박근혜정부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박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보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취임식에서 "임기 내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도록 최대한 힘쓰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가장 먼저 정규직 전환 결정을 내린 건 한화그룹이다. 한화 그룹은 지난 1월 국내 10대 그룹 중 처음으로 비정규직 직원 2,043명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1일 정규직 전환을 일사천리로 마무리 지었다.

박근혜 대통령. 주간한국 자료사진 /연합뉴스
신세계그룹도 지난 4일 이마트의 하도급 업체 직원 1만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인력은 정년을 보장받게 될 뿐만 아니라 상여금ㆍ성과급 등이 정규직과 동일해지면서 연간소득이 27%가량 늘어나게 된다.

현대자동차 역시 올해 말까지 사내 하도급 근로자 1,75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다는 방침이다. 최근 1차 신규 채용을 통해 600명을 합격시켰다. 현대차는 올해 목표 인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제일제당 설탕 출고가 인하

가격 인상을 보류하거나 인하하는 방식으로 새정부와 '코드 맞추기'에 나선 기업들도 있다. 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물가 안정 의지를 단호하게 피력한 데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취임 후 첫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서민경제에 부담을 주는 부당한 가격 인상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SPC그룹이 대표적인 예다. 계열사인 삼립식품은 지난달 21일 자사 제품 12종의 가격을 평균 7.7~12.5% 인상했다. 그러나 인상 보름여 만인 지난 5일 이들 가격을 종전 가격으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CJ제일제당도 지난 5일부터 설탕 출고가를 인하했다. 이번 가격 조정으로 하얀 설탕 1㎏은 출고가 1,363원에서 1,308원으로 4% 내렸고, 15㎏은 1만7,656원에서 1만6,597원으로 6% 인하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사실상 가격을 내렸다. '자정백삼젤'의 경우 용량은 80ml로 같지만 가격은 기존 6만5,000원에서 5만5,000원으로 1만원 인하됐다. '자정수'는 6만5,000원으로 가격이 동일하지만 용량을 100ml에서 125ml로 늘렸다. 약 20% 인하효과를 내게 된 셈이다.

롯데시네마 매점 직영 전환

그밖에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지적된 문제를 시정한 기업들도 있다. SK그룹은 지난 11일 시스템통합(SI)와 광고 등에 대한 내부거래 비율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업계는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내부거래 비중은 22.09%로 국내 대기업 중 최고를 기록한 점을 의식한 결과로 보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 1일부터 일감 몰아주기로 비판을 받아온 롯데시네마의 매점사업을 직영 전환했다. 그 동안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을 맡아온 시네마통상과 유원실업은 롯데가 딸들이 주식 대부분을 소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다. 따라서 일감을 몰아줘 오너 일가의 호주머니를 불린다는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돼 온 바 있다.

코오롱그룹도 골목상권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는 빵집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보유한 외식프랜차이즈 계열사 '스위트밀'의 지분 19.97%(139만8,000주)를 그룹이 운영하는 비영리 장학재단인 '꽃과어린왕자재단'에 기부한 것이다.

스위트밀은 베이커리 브랜드인 '비어드파파'와 커피전문점 '스위트카페', 치즈케이크 전문점 '티오글라톤' 등을 운영하는 회사다. 매출 규모가 작은 데다 백화점 내 소규모 점포로 운영돼 작년 '재벌 빵집' 논란을 비켜갔다.

그러나 업계는 논란이 된 대기업들이 일제히 사업을 정리한 상황에 새정부 출범이 맞물리면서 코오롱그룹이 크게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고 있다.

아예 대놓고 '용비어천가'를 부른 기업도 있었다. 농협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농협은 지난달 25일 12개 일간지와 10개 경제지 1면에 '참 좋은 날'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농협이 현재 진행중인 '신ㆍ경 분리' 작업에 대한 새정부의 지원을 기대한 행보라는 관측이 있다. 또 'MB맨'으로 분류되는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거취문제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최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동지상고 동문이다.

대기업들의 이런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먼저 부적절한 대기업 문화가 바뀌리란 기대가 있다. 그러나 '눈치보기'의 결과가 얼마나 효과를 보겠느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그동안 문제로 지적돼 온 부분을 시정을 하는 건 분명히 반길만한 일"이라면서도 "진정성이 결여된 '땜질식 처방'이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