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원 전 원장, 대북 첩보 업무 외면 "국가안보 팔았다" 비난작년 7월 북한서 우리 정보원 대학살극해외 휴민트라인 완전 붕괴… 재복구 사실상 불가능

과거 국정원에서 대북첩보수집활동을 담당했던 인사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임기 내내 대북첩보업무를 외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다. 사진은 국정원 청사. 주간한국 자료사진
국정원 개혁이 임박한 가운데 과거 대북첩보수집활동을 한 인사가 최근 북핵 관련 국가안보 위기상황이 초래된 데 따른 충격적인 내용을 증언했다.

이 인사는 구정권 때 해외에서 대북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또 국내 대선을 앞두고 대북문제와 관련해 파장이 일었을 때 해당 사건의 핵심에서 숨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이 인사의 근무 시기와 근무지 등은 신원 노출을 고려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음)

이 인사는 자신을 A씨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신임 국정원장이 "휴민트를 부활해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그동안 국민이 몰랐던 국가 안보 위기에 대해서도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A씨의 말이다.

보수진영에서는 좌파 진보진영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정원의 대북정보 수집력에 관한 문제는 MB정부 때 가장 심각했다.

A씨는 이에 대해 "국가 안보는 정치적으로도 위협받을 수 있지만 권력자들의 탐욕에 의해서도 위협받을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위험하냐고 묻는다면 후자쪽"이라며 "국정원은 지금 후자의 케이스 때문에 본래의 기능을 상당히 상실한 상태"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A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가의 안보를 팔았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A씨에 따르면 이들은 정치권력 유지를 위해 국정원을 활용했으며, 또 국정원을 사조직처럼 활용하기 위해 대북첩보업무를 외면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MB시절 대북정보 파악 못해

MB정부 시절 북한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정치권은 국정원의 대북정보력을 문제 삼으며 "대북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냐"고 질타했다. 이 때 원세훈 전 원장은 항상 "보안상 밝힐 수 없다"고 말하며 피해나갔다. 이를 두고 실제로 보안상의 이유로 원 전 원장이 밝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몰랐기 때문에 못 밝힌 것인지 추측이 분분했다.

예컨대 2009년 12월 경 북한의 화폐개혁을 국정원이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때도 국정원 측은 "정보기관이 북한의 화폐개혁 사실을 알고 있었느니, 몰랐느니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북한이 공식적으로 화폐개혁을 발표하고 있진 않지만 국정원에서 관련 사실을 체크하고 있다"고 밝히며 화살을 피해나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원세훈 전 원장은 대북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만약 잘 파악하고 있었다면 북한 로켓 발사와 핵실험 등의 사건에 어떤 식이든 사전 대응조치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의 성명발표 방송을 보고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원전 원장을 두고 비난이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A씨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북정보부서를 축소하고 국내 정보수집 영역을 강화했다. 국내파트는 국정원이 밝힌 것처럼 국내 대공 업무를 주력으로 한 게 아니다. 정치권의 진보 좌파인사를 밀착 감시하는데 주력했다"며 "만약 대공 업무를 제대로 했다면 MB정부 기간 동안 간첩 고첩들이 줄줄이 소탕됐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정치권력 유지를 위해 진보 좌파인사 뒷조사나 하는 게 전부였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대북정보라인 붕괴가 시작된 것은 DJ정부 때 부터였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DJ정부가 들어서기 이전까지 국정원의 대북업무는 정권이 거의 간섭하지 않고 보고를 주로 받는 식이었다. 신임 통수권자가 국정원의 업무 영역과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A씨는 "하지만 DJ정부 때부터 모든 게 흔들렸다. 북한을 예민하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거나 개편대상이었다"며 "가장 결정적인 것 두 가지를 꼽자면 북한이 파악하고 있는 국정원 핵심인사들의 숙청과 국정원 대북인적정보라인 즉, 휴민트의 해체였다"고 말했다. A씨의 증언에 따르면 국정원 내에 이른바 북한통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대부분 물갈이 됐고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휴민트 관리도 정지됐다는 것이다.

'동까모' 몰살 남한선 침묵

MB정권 때 북한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해 7월 이른바 '동까모 사건'이 그것이다. 동까모는 '김일성 동상을 까부수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탈북자 전영철씨에 따르면 이 모임은 한국 내 탈북자들로 구성됐다.

북한은 같은 달 16일 "동상과 대기념비를 파괴하려던 자들이 적발·체포됐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이 주장과 관련, 북한은 사흘 뒤인 19일 탈북자 출신이라는 전영철씨를 '범인'으로 지목,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60대 남성의 기자회견 내용을 공개했다. 특히 이 남성은 자신의 배후에는 남한과 미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측 정보당국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A씨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북한 당국에 붙잡힌 이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A씨는 "이 사건과 그리 멀리 않은 과거에 이미 김일성 동상 폭파 공작이 있었다. 하지만 공작 전에 남측 정치권 인사들이 공작에 연관된 이들의 신원을 북한에 알려줬다"며 "이 때문에 휴민트를 포함함 활동요원들이 총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까지 침투한 정보원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우리 정보 업무에 매우 치명적인 손실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희생된 인물과 우리 정보 업무의 보안을 위해 장소는 밝히지 않음)

또 A씨는 휴민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최근 동상 폭파 논란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비슷한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는'비슷한 문제'라고 말한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물음에 침묵했다.

이어 A씨는 "신임 국정원장이 휴민트를 활용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것 역시 이해불가"라고 말했다. 휴민트를 활용할 것이라는 말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방향이 알려지는 것은 보안활동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밝힌 이상 북한이 민간 또는 외부 인사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지금 신임 원장도 대북정보업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게 A씨의 시선이다.

그에 따르면 해외에서 휴민트 라인이 철저하게 붕괴된 지금 이를 다시 복구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A씨는 "휴민트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20여년 이상 꾸준히 관리를 해야 한다. 휴민트는 만들기가 매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붕괴되는 것은 한순간"이라며 "우리는 업무와 관련된 신뢰도가 떨어지고 능력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때문에 지금 휴민트를 포섭해 활용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A씨는 휴민트 관리 자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국정원의 예산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안보상의 이유로 비공개처리 되는 부분이 많아서다.

이에 대해 A씨는 "국정원은 그동안 해외 그리고 대북 관련 정보 수집을 위해 상당한 자금을 운용해 왔다"며 "이런 업무를 줄이고 국내 업무 위주로 조직을 운영하면서 기존에 운영되던 해외 대북 정보 예산자금을 지난 정권이 어떻게 관리했는지 현 정부가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