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패권 거부감 서로 통해김한길 당권 잡으면 본격 연대10월 재보선 합당 가능성친노 독자노선 배제 못해

김한길 민주통합당 의원이 3월 24일국회 정론관에서 '계파 패권주의 청산과 독한 혁신, 안철수 지지세력까지 끌어안는 더 큰 민주당'을 내걸고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뒤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층 더 가까워진 듯하다. 심리적으로든 거리상으로든. 내달 재보선과 5월4일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두 차례 선거 결과에 따라 양측이 연대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아직은 좀 이른 얘기지만 경우에 따라 하나로 뭉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한길 민주통합당 당대표 예비후보와 지난해 대선후보였던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 이야기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민주당이 내달 24일 치러지는 재보선 때 서울 노원병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지도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찬성 입장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안 전 교수는 "새 정치의 길에서 여러 사람들이 뜻을 모으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5일 비대위 회의에서 노원병 무공천 방침을 확정한 뒤 "(무공천 여부에 대해) 격론이 있었지만 결국 만장일치가 됐다"고 밝혔다.

문 위원장은 "안 전 교수와 진보정의당 양쪽에 진 신세도 갚고, 야권 연대를 통해 박근혜 정부 초기의 실정도 바로잡겠다는 것"이라고 무공천 배경을 설명했다.

4·24 재보궐선거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3월 25일 서울 노원구 불암산종합스타디움에서 열린 지역배드민턴대회에 참석해 참가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문 위원장의 말처럼 민주당이 일찌감치 안 전 교수의 출전이 확정된 노원병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것은 외형상 '빚'을 갚는다는 차원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안 전 교수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경쟁했으나 선거 한 달 전 뜻을 접고 문 전 후보를 지원했다.

민주당의 무공천은 한편으로는 안 전 교수를 계속해서 야권의 울타리로 묶어둔다는 명분도 가질 수 있다. 안 전 교수 측도 범야권이라는 '명찰'은 부인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명분은 그럴 듯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민주당이 설령 노원병에 후보를 낸다 하더라도 승산이 적은 게 현실이다.

내달 치러지는 선거구 3곳(부산 영도, 충남 부여ㆍ청양, 서울 노원병) 가운데 단 한 곳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하기 어렵다는 게 냉정한 분석이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고도 전패할 경우 새 정권 초반 실정 심판론은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안 전 교수가 당선되고, 5월4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비주류의 대표선수인 김한길 의원이 승리한다면 야권의 정치 지형은 묘하게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적의 적은 아군

김한길 의원은 1995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고 김철 사회당 당수의 아들이기도 한 김 의원은 15~17대에 이어 19대 때 당선되며 4선 고지에 올랐다.

김 의원은 친노계의 대부 격인 이해찬 전 대표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지난해 6월9일 전당대회 때 김 의원은 이 전 대표에 이어 2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김 의원은 오프라인투표에서는 이 전 대표를 앞섰으나 모바일투표에서 밀리는 바람에 석패했다.

김 의원은 두말할 필요 없는 비노(비 노무현) 인사다. 안철수 전 교수 역시 친노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다. '적의 적은 아군'인 셈이다.

김 의원은 지난 24일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당권을 패권화했던 지도부는 기득권을 당원에게 내려놓아야 한다"며 친노계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김 의원은 이어 진보개혁세력과 중도세력까지 아우르는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민주당이 중심에 서서 야권의 재구성을 주도하겠지만 민주당만으로는 어렵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안 전 교수 측에 대해서 김 의원은 "안 전 교수의 등장에 환호하고 기대하는 유권자 대부분이 한때 민주당을 지지했던 분들로, 크게 보면 우리 편"이라고 했다. 자신이 당권을 잡으면 안 전 교수 측과 본격적으로 연대해나갈 방침임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처럼 김 의원과 안 전 교수는 현재로서는 이심전심일 수밖에 없지 않겠냐"면서 "안 전 교수가 당선된 데 이어 김 의원이 당권을 잡게 되면 양측의 연대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합당한다면, 시기는…

안 전 교수가 노원병 재보선을 통해 화려하게 재기하면 10일 뒤 치러지는 민주당 전당대회에도 적잖은 '여진(餘震)'을 남길 것 같다. 안 전 교수가 여의도 입성을 통해 야권의 한 축으로 우뚝 선다면 친노는 어느 정도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또 안 전 교수와 김 의원이 잇달아 승리하면 야권의 무게중심은 반노 연대로 급격히 쏠릴 공산이 크다. 그럴 경우 양측은 자연스럽게 10월 재보선을 어떻게 치를지 고민하게 될 듯하다.

4월 재보선은 단 3곳에서만 열리지만 10월은 '판'이 다르다.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성급한 얘기일 수 있지만 전국적으로 최대 10곳 이상에서 재보선이 치러질 수도 있다.

국회의원을 뽑는 재보선 지역구가 10곳이 넘는다면 말 그대로 '미니 총선'이다. 여야는 사활을 걸 수밖에 없고, 따라서 패하는 쪽은 치명상을 입는 게 자명하다.

안 전 교수가 4월 재보선 승리 후 신당 깃발을 세운다 해도 10월 재보선 때 민주당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가기는 어려울 수 있다. 양측이 독자 후보를 내는 등 끝내 치킨게임을 벌인다면 수도권 등 박빙승부가 펼쳐지는 곳에서는 필패(必敗)를 면치 못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각에서는 안 전 교수가 당선되고 김 의원이 당권을 잡는다면 10월 재보선 즈음해서 양측이 하나로 합치는, 즉 합당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양측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는 있으나 합당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있다. 이와 관련해 안 전 교수 측 내부적으로도 찬반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저희 나름대로 가야 할 길은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윤태곤 안 전 교수 측 공보팀장의 말처럼 안 전 교수 측은 공식적으로는 '마이 웨이(My Way)'를 부르고 있다.

민주당 소식통은 "비노 진영에서 당권을 잡으면 자연스레 안 전 교수 측과 거리를 좁히게 될 것"이라면서도 "합당이라면 결국 민주당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을 텐데 안 전 교수 측이 반대급부 없이 과연 그 길을 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글부글 친노, 최악에는…

비주류의 집중적인 공세 그리고 안 전 교수 진영의 꿋꿋한 독자행보를 지켜보는 친노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보다 솔직히 표현하면 부글부글 끓는다고 하는 게 옳을 듯하다.

친노 입장에서는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 경쟁보다 안 전 교수가 더 부담스럽다. 당권이야 설령 놓친다 하더라도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만 안 전 교수의 바람이 지난해처럼 다시 태풍으로 커진다면 친노뿐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촛불'이 될지도 모른다.

친노는 최근 들어 안 전 교수에게 맹폭을 가하고 있다. 몇몇 인사는 "안 전 교수가 지난해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미래 대통령'이라는 문구를 넣어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친노가 안 전 교수와 일전도 불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 전 교수의 몸집이 커질수록 친노는 설 자리를 잃어갈 수밖에 없다. 특히 안 전 교수와 지난해 대권 경쟁을 벌였던 문재인 의원의 존재감은 더 희미해질 공산이 크다.

문 의원은 비록 초선이지만 이해찬 전 대표와 더불어 친노의 양대 축이자 간판이다. 일부 친노계 인사들이 문 의원이 내달 재보선 때 부산 영도에서 지원 유세에 나서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것도 위기감의 발로 때문으로 해석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악'의 경우 친노가 독자적으로 뭉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민주당 안팎에서 '반노 연합군'이 구축된 상황에서 친노로서도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정치권 관계자는 "만일 민주당 비주류와 안철수 전 교수 측이 손잡고 하나로 뭉친다면 결국 친노만 남게 된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친노 역시 자신들만의 당을 세우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