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정부때 몸집 두배 이상 불려… 사정기관 '재벌 개혁' 앞세워 정조준?국세청 30명 이상 투입… 호텔롯데 고강도 세무조사제2롯데월드 인허가 관련… 검찰 조사 착수한 듯공정위·감사원도 압박 예상
마찬가지로 범롯데가는 을 필두로 하는 신씨 일가가 지배하고 있다. 바로 '매울 신(辛)'자를 쓰는 신씨다. 범롯데가에서는 성씨로 쓰는 '辛'자로 인해 발생한 해프닝도 있었다. 바로 범롯데가인 농심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신(辛)라면의 탄생이었다. 신라면의 이름이 처음 공개됐을 때 신씨 문중에서는 "라면 때문에 성씨까지 팔아먹는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나 라면의 '매운맛'을 한눈에 각인시킬 수 있다는 의 뚝심 어린 주장으로 농심은 결국 신라면 봉지에 '辛'자를 새길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새 정부 들어 범롯데가를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재벌개혁 기치를 내건 박근혜 정부의 첫 타깃으로 범롯데가가 선정된 듯한 정황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사정기관의 칼날이 롯데, 푸르밀, 농심 등을 겨누고 있는 터라 재계에서는 "신씨 일가가 머지않아 그 뜻대로 '매운맛'을 보지 않겠냐"고 전망하고 있다.
계열사 46개에서 79개로
, , 등 범롯데가를 구성하고 있는 신씨 형제들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형제들 간에 서로 왕래가 끊긴 지 오래인 것은 물론이고 롯데와 농심, 롯데와 푸르밀 간 겹치는 사업영역에서는 다른 회사들보다도 더 치열하게 경쟁하곤 한다.
범롯데가 중 가장 부담을 느낄 만한 곳은 큰형인 신 총괄회장이 이끌고 있는 롯데다. 신세계와 함께 유통업계의 양대 축으로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바람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는 데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수혜기업으로 지목되고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롯데는 2008년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내세우며 등장한 이명박 정부 때 질적ㆍ양적으로 가장 많이 성장했다. 2007년 말 46개사에 불과했던 계열사 수는 지난해 말 79개사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자산총액과 매출액 또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밖에 제2롯데월드 건축허가, 맥주사업 진출, 면세점 AK글로벌 인수 승인, 제2고속도로 연결 민자 고속도로 허가 등 굵직한 사업 현안들도 착착 승인됐다.
그러나 이러한 '꿈같은 시간'은 이명박 흔적 지우기에 나선 박근혜정부의 서릿발 같은 사정기관들 때문에 '악몽'으로 변하고 있다. 재계는 현재 직접적인 압박에 나선 국세청을 시작으로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검찰 등이 앞다퉈 롯데 압박에 나서리라 예상하고 있다.
국세청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월 말부터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에 대한 전방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호텔롯데 조사에는 보통 대기업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조사1, 2국 요원 10여 명이 아닌 국제거래조사국 소속 요원 30여 명이 투입돼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지난해부터 이미 예정됐던 정기조사일 뿐"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대응책 마련 부심 중인 롯데
새 정부의 압박에 대해 롯데도 적극적인 코드 맞추기에 나선 상태다. 대표적인 사례로 총수일가가 독식해오던 롯데시네마 매점운영을 포기한 것이 꼽힌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일인 지난 2월 25일 롯데쇼핑 롯데시네마본부는 영화관 52개 매점의 운영권을 가진 유원실업,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등 총수일가 관련 3개 계열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영화관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알짜사업으로 알려져 있는 매점 사업은 그동안 총수일가에 대한 특혜성 일감 몰아주기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유원실업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씨와 딸 신유미 호텔롯데 고문이 지분 100%를 지니고 있는 사실상 개인 회사다. 또한,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의 경우 신 총괄회장 장녀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 각각 28%, 3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롯데쇼핑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것도 정부의 압박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으로 읽힌다. 신 회장은 2006년 대표이사를 맡은 지 7년 만에 롯데쇼핑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재계는 신 회장의 퇴진을 대형 유통업체들을 손보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의중을 미리 읽고 나선 행동으로 해석하는 모양새다. 그밖에 그룹 내 대표적인 유통 계열사로 분류되는 롯데마트도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공약에 발맞춰 신선식품 매장에서 근무해온 도급인력 1,000여 명을 상반기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새 정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롯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아 큰 폭풍이 몰아치리라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당시 롯데가 받은 최대의 특혜로 꼽히는 제2롯데월드 문제가 폭탄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제2롯데월드는 지하 6층, 지상 123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다. 신 총괄회장이 1994년 서울시에 초고층 건축물 건립 가능성을 질의하면서 시작된 제2롯데월드 사업은 16년 만인 2010년 최종 건축허가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롯데그룹의 잇따른 사업타진에도 성남공군기지의 비행안전성 미확보로 인한 국방부 반대, 고도제한에 다른 성남시와의 형평성 문제, 용적률과 건폐율 상향 조정 문제 등에 밀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내내 허가를 받지 못했던 제2롯데월드 문제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며 단번에 해결됐다는 점이다.
재계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롯데 간의 중재 역할을 장경작 전 롯데 호텔부문 총괄사장이 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롯데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무렵 장 전 총괄사장을 영입했다. 이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로 사적으로도 친한 관계로 알려진 장 전 총괄사장은 이후 대북사업 재개를 원하는 현대아산에 전략적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국세청 칼날 앞의 푸르밀
범롯데가 10남매 중 아홉째인 은 최근 국세청의 매서운 칼날 앞에 서 있다. 특히, 신 회장의 경우 국세청 조사로 지난 2011년 이미 거액의 증여세를 물었음에도 최근 감사원의 개입으로 추가세금을 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어 더욱 억울하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는 주가조작 등을 통해 거액을 챙긴 큰손들을 조사ㆍ적발ㆍ처벌할 수 있는 종합적 대책을 금융 및 세무당국에 주문했다. 국세청도 이에 발맞춰 대기업 총수일가 등의 '대규모 주식거래 과정에서의 탈세' 및 '주식매매를 통한 편법 상속'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최근 10년의 자료 전부를 재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로 사안이 심각하다. 국세청 조사의 일차 대상으로는 일가가 지목되고 있다.
신 회장의 아들과 딸, 며느리, 손자 등은 2005년 유상증자한 대선주조 주식 31%를 매입했다. 이는 당시 시가로 120억원에 이르는 분량으로 구매대금에는 신 회장으로부터 빌린 50억원이 포함돼있었다. 부산 최대 주류업체인 대선주조는 당시 신 회장의 주식의 50.79%를 보유, 최대주주로 있었다. 신 회장 일가는 2007년 대선주조 주식을 전량 매각해 3,0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렸다. 신 회장을 제외한 가족들이 얻은 시세차익도 1,1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신 회장 가족들은 주식 양도 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만 내고 증여세는 내지 않았다.
문제는 최근 국세청이 신 회장 일가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감사원은 국세청이 신 회장 가족에게 부과한 증여세 규모가 너무 적다고 판단, 국세청에 재조사를 요청했다. 새 정부 들어 증세 없는 복지재원 정책의 첨병으로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국세청이 재조사에 나설 경우 푸르밀로서는 막대한 추가 세금을 내야만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 측은 "특정 업체에 대한 개별 조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을 아꼈다.
농심 일감 몰아주기
신격호 총괄회장의 다섯째 동생인 은 사실 지난 정부 때부터 고초를 겪어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신라면, 짜파게티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다가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적 받기도 하고 2011년에는 신라면 블랙을 출시하며 편법 가격인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라면업계 가격담합으로 1,000억원의 과징금을 맞은 데다 라면수프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까지 검출되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농심이 '農心(농민들의 마음)'이 아니라 癑心(고달픈 마음)이 아니냐는 농담이 우습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더욱 큰 문제는 농심의 고달픈 사정이 새 정부 들어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신 회장의 차남인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에 대한 농심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국세청이 조사에 나선 까닭이다.
1973년에 설립된 율촌화학은 라면, 스낵 포장재 및 골판지 상자의 제조와 판매를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다. 농심홀딩스가 40.3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신 회장, 신 부회장 부자도 각각 13.50%, 6.08%의 지분을 갖고 있다. 농심의 포장재 대부분을 납품하고 있는 율촌화학은 자사 매출의 절반가량을 농심을 통해 올리고 있다. 지난해 신라면 봉지와 상자 납품 올린 매출만 각각 478억원, 120억원에 이를 정도다.
포장재나 골판지 상자 제조업은 2011년 말부터 정부에 의해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에 율촌화학 일감 몰아주기도 그동안 업계 내 다른 사업자나 시민단체들로부터 꾸준히 손가락질 받았지만 농심은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여타 대기업들이 물류, SI(시스템통합) 사업 등에서 여전히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이를 부추겨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박근혜정부가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근절을 내세우면서부터다. 박 대통령은 아예 취임사에서부터 "중소기업을 좌절하게 하는 각종 불공정행위를 근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3일부터 시행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도 부담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총수 친족이 3%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계열사 간 거래에서 내부거래 비율이 30% 이상일 경우,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이 된다. 현재 국세청의 조사가 진행 중인 농심으로서는 본보기로 호되게 당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에 대해 농심 측은 "국세청의 조사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며 "증여세 과세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통보가 올 경우 그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는 등 정부시책에 적극 부응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