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각한 방만… '주인없는 회사' 표본인사 규정 안지켜지고 예산 집행·비용 사용 등 절차 무시 '비일비재'공정방송 원칙도 실종… 김재철 전 사장 '파행운영'정치개입 정황도 드러나

김재철 전 MBC 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방송문화진흥회와 MBC의 비리 의혹 수사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해임 결정 이후 방송문화진흥회를 나서는 김재철 MBC 사장.
김재철 MBC 사장이 해임된 이후 MBC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 전 사장 해임 약 한달 전인 지난 2월 감사원은 MBC에 대한 감사결과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를 살펴보면 그동안 MBC는 '주인 없는 회사'의 전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인사에 대한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예산집행이나 각종 비용사용에 대한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방송 원칙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김 전 사장의 지시에 따라 방송국 운영이 파행으로 치달았던 것이다.

감사원 조사에서 MBC의 감춰졌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김 전 사장을 수사 중인 검찰의 수사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와 MBC의 여러 비리 의혹 수사로 번질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김 전 사장의 해임과 남은 상처

MBC 대주주인 방문진은 지난달 26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김 사장 해임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다. 무기명 투표 결과 여당 측 6명, 야당 측 3명의 이사 중 5명이 찬성하고 4명이 반대해 해임안이 통과됐다.

김 전 사장의 해임사유는 ▲절차를 위반해 임원을 내정함으로써 방문진의 선임권 중대 침해 ▲이사회 운영 및 운영제도와 관련한 공적 절차 무시와 그에 따른 공적 책임 방기 ▲관리ㆍ감독 기관인 방문진에 대한 거듭된 불성실한 태도로 관련지침 전면 위배 ▲대표이사 지위를 이용해 공적 지배제도를 훼손한 점 등이다.

김 전 사장 임기 동안 MBC에는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첫 선임 때부터 노조는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였다. 지난해 초에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법인카드 유용과 여성무용가 특혜 의혹 등 각종 소문이 나돌았다. 뉴스데스크를 비롯한 시사ㆍ교양 프로그램의 객관성, 공정성 논란도 불거졌다. 작년 11월에는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이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지분 매각을 논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선을 앞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MBC의 최대주주이자 경영상 관리 감독기관인 방문진은 MBC 경영을 관리 감독하면서 결산의 중요 변동사항 등에 대한 사전 확인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고 MBC에서 작성, 제출한 결산 보고안을 이사회에 그대로 상정하는 등 결산을 형식적으로 승인하고 있었다.

또 사무처를 총괄하는 사무처장을 채용하면서 공개채용 등의 합리적인 절차 없이 MBC출신 인사를 특별채용하거나 전 MBC 감사를 자회사 대표이사로 선임하는데도 법률위반 여부 등을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인정했다.

무엇보다 김 전 사장은 감사원의 자료 제출을 여러 차례 거부해 MBC의 운영상 문제를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MBC의 결산 심의문제다. 이는 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방문진은 MBC의 기본 운영계획을 받아 검토하도록 돼 있으나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기본운영계획에 포함된 추정 매출액 및 영업비용 내역이 결산서상의 계정과목 명칭과 일치 하지 않았다. 또 구체적인 산출근거 및 세부내역 등도 명시되지 않아 이를 통해 결산의 적정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방문진은 MBC에서 예산과 다르게 자금을 집행해도 이를 확인할 수 없다. 결산상 특이사항에 대해 제대로 된 심의과정 없이 결산을 승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추락하는 MBC 구원투수

감사원에 따르면 방문진은 회계전표 작성만 했을뿐 업무추진비 집행지침 등의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채 업무추진비를 집행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말하자면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마음대로 돈을 갖다 쓸 수 있었던 것이다. MBC에 대한 관리도 이와 비슷한 형대로 이뤄졌다.

김재철 전 사장이 2010년 3월 취임한 뒤 MBC는 파행을 거듭했다. 김 전 사장은 취임 3개월 만인 2010년 6월 이근행 당시 노조위원장을 해고하고 41명을 징계했다. 이들이 '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치며 39일 동안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에서다. MBC의 추락 속도는 지난해 1월 노조가 170일 동안의 장기 파업에 돌입하면서 더 빨라졌다. 파업을 전후로 해고 8명, 정직 82명, 감봉ㆍ감급 43명, 근신 30명, 대기발령 54명 등 200여명(노조 추산 연인원)의 징계자가 나왔다. 한국 언론 사상 최대 징계 규모다.

파업에 참여했거나 경영진을 비판하는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100여명에게 교육명령을 내려 업무 일선에서 배제시켰다. 사측은 파업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19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추가해 노조를 압박했다.

한편 검찰은 김 전 사장 비리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 전 사장이 재일교포 무용가 J씨에게 일감을 몰아줬다며 문화방송 노조가 고발한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남부지검은 최근 J씨의 공연을 주최한 안동ㆍ전주ㆍ청주 문화방송에 관련 자료를 요구해 일부를 확보한 것으로 지난달 26일 확인됐다. 앞서 경찰은 이 사안을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전주MBC 등에 따르면 MBC의 지역방송사들은 김 전 사장이 무용가 J씨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과 관련해 김 전 사장이 사표를 낸 지난달 27일 서울남부지검에 관련자료를 제출했다.

전주MBC는 지난달 말 "'전주 대사습놀이 한마당' 행사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검찰로부터 받고 자료를 넘겼다. 전주MBC가 검찰에 제출한 자료는 J씨와 체결한 계약서, 금원지급 일자, 협찬계약서, 협찬사의 협찬금 입금 일지, MBC 본사 지원금과 전주MBC 자체 분담금 내역 등이다. 안동MBC와 청주MBC도 J씨가 참여했던 관련행사 예산, 입출금 내역 등을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사장은 J씨가 이끄는 무용단을 전주 대사습놀이 한마당 부대행사에 출연시킬 것을 지시하고 J씨 등이 이례적으로 높은 출연료를 받도록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지난해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MBC노조)는 J씨에게 억대의 일감을 몰아준 혐의(업무상 배임)로 김 전 사장을 고발했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