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닦달… 新라이벌도 등장朴정부 석유시장 경쟁 촉진전자상거래제도 참여 압박업계 "사실상 실패정책" 반발"기름값 20% 낮추겠다"… 국민석유주식회사도 창립

정유업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기름값 인하 문제를 놓고 정부, 시민단체 등이 연합해 전방위적인 압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석유전자상거래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계속될 것이라는 엄포를 놓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민석유주식회사라는 잠재적 경쟁자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기름값 조절 실패한 MB

정유업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밝힌 2011년 1월부터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발언 직후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TF팀을 구성해 가격을 재구성하겠다"고 나섰고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또한 "회계사 자격증이 있는 내가 직접 기름값 원가 계산을 해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정부의 압박은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는 실제로 석유가격 TF팀을 구성했고 공정위도 그 해 3월 정유4사의 주유소 원적지 관리를 담합행위로 규정, 각 사에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이에 궁지에 몰린 정유업계는 손해를 감수하고 2011년 4월부터 석 달간 휘발유ㆍ경유 가격을 리터당 100원씩 내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기름값 잡기는 임기 말인 지난해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인근 주유소보다 100원 저렴한 알뜰주유소(2011년 12월 29일) ▦유통가격의 투명성을 높이는 석유전자상거래제도(2012년 3월 30일) ▦폴 주유소에서 타사 석유제품이나 수입품을 섞어서 판매할 수 있는 석유혼합판매제도(2012년 9월 6일) 등 석유유통구조개선 정책들을 잇달아 선보인 것이다.

그러나 해당 정책들은 "대체로 효과가 있었다"는 지식경제부의 자평과 달리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해왔다. 알뜰 주유소의 경우 가짜 석유를 판매하다 적발되는 등 일부 주유소가 품질부적합으로 경고 또는 기타 행정처분을 받았고, 가격 또한 자가폴 주유소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석유혼합판매제도 역시 공급자와 유통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품질 부적합 제품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정유업계의 독과점을 깨고 석유 유통구조 자체를 혁신하겠다며 야심 차게 도입한 석유전자상거래제도는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고 있을 정도다. 전자상거래용 수입석유제품에 대해 할당관세 면제, 리터당 16원 환급 등 각종 혜택을 주는 석유전자상거래제도의 경우 전문가들로부터 소비자가 아닌 일본경유 수입업체들만 이득을 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석유전자상거래제도 도입으로 일본경유 수입업체들은 리터당 40원이 넘는 특혜를 받게 됐다. 정유4사가 해당 제도에 협조하지 않은 배경이 있었지만 정부 또한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 대일무역 적자만 키웠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압박 가중

정유업계는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는 '무리한 기름값 인하'에 기반한 그간의 정책기조가 바뀌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박근혜 정부가 '석유시장의 경쟁촉진'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며 산산이 깨졌다. 이전 정부와 비교해 그 수위 또한 높아져 정유업계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식경제부가 확대 재편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정유4사에 한 통의 문건을 보냈다. 해당 문건에는 정유업계가 계속 석유전자상거래제도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수입 경유에 대한 관세 혜택을 6개월간 더 연장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정유4사가 각자 참여 방식, 규모 등에 대해 4월까지는 알려와야 할 것이라는 엄포까지 놨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사실상 실패한 석유전자상거래제도를 계속 밀어붙이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정유업계에서는 이미 국내에서 이익을 내는 것을 포기한 상태"라고 항변했다.

그 밖에도 정부는 알뜰주유소, 석유혼합판매제도 등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보완 대책을 준비 중이다. 직수입입찰을 통해 알뜰주유소에 값싼 물량을 공급하고 혼합판매 주유소를 위해 파격적인 지원이 예상된다. 역차별로 이미 수입업체보다 불리한 환경에 처해있었던 정유업계로서는 이번 조치들로 부담이 더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 정유사 창립으로 부담 ↑

정유업계를 향한 압박은 위에서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과포화 상태인 국내정유시장에 경쟁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정유사가 창립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아직 '가능성'에 불과한 움직임이지만 정부의 정책과 결부되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기름값을 20%까지 낮추겠다는 목표를 내건 국민석유주식회사는 지난달 21일 발기인 대회를 열고 창립을 선언했다. 지난해 6월 설립준비위원회가 출범한 지 9개월 만이다. 발기인으로는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이윤구 전 적십자총재, 이우재 전 마사회 회장, 추미애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참여했다.

국민석유주식회사는 석유 수입부터 시작, 2~3년 후 정유 공장을 지어 값싼 휘발유와 경유를 공급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석유주식회사는 올 6월부터 전국 주유소 50개소를 통해 리터당 200원 싼 가격에 휘발유ㆍ경유를 판매하고 그 후에는 반제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을 거쳐 가격을 더 낮출 계획이다.

정유공장을 지어 현재보다 20%가량 저렴한 1,600원 선에서 휘발유를 공급할 계획도 있다. 정유공장을 돌릴 때는 캐나다ㆍ시베리아산 원유를 도입, 단가와 운송비를 줄일 것으로 구상하고 있다.

기존업계 "더이상 무리"

국민석유주식회사의 계획에 대해 정유업계에서는 현실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현재 우리가 마진을 완전히 포기한다 하더라도 리터당 200원 싸게 공급할 수는 없다"며 "하다못해 정유공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2조원 이상이 필요한데 그 같은 자금을 모을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못한 채 계획만 거창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에 국민석유주식회사 측은 "정유4사 중 GS칼텍스는 자본금이 2,500억원에 불과하고 공공자금으로 큰 SK에너지의 경우 수백억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했다"며 "중소도시 지역준비위를 통해 약정인사를 확대, 증자를 계속한다면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민석유주식회사의 주장처럼 정부의 정책자금이 지원될 경우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 현재 추진 중인 기름값 인하 정책이 또다시 표류해 정부가 국민석유주식회사에 지분 출자, 보조금 지급 등의 방법으로 참여할 경우 그 파급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지난해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정유사업에서만큼은 부진을 맛본 데다 위아래에서 동시에 치이는 정유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