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되살아난 '가습기살균제' 공포정부 독성 확인 제품 제외 CMIT/MIT 성분 포함된 상품 쓴 소비자 잇단 사망피해자 더 증가 추세 불구 질병관리본부·해당기업 "추가 조사 없다" 발뺌만

지난해 정부조사에서 인체에 독성이 없다고 밝혀졌던 가습기살균제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과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가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광장 해치마당‘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사진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의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그동안 인체에 무해하다고 알려졌던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자 사망사례가 드러나며 수많은 임산부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2011년 당시의 장면들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들은 가습기살균제 사고 뒤 실시된 조사에서 인체독성이 없다며 정부가 안심시켜줬던 제품으로 알려져 더욱 큰 파장을 낳고 있다.

"독성 없다고? 사망자는 어쩌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체에 독성이 없다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람 중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환경보건시민센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교실과 함께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 사례의 제품별 정말 분석 결과'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입수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의심 사례 접수자의 사용 제품 현황' 자료를 바탕으로 총 322명의 피해자가 사용했던 가습기살균제의 종류와 사용빈도를 분석한 것이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질병관리본부가 폐 손상과의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발표했던 CMIT/MIT 성분의 제품에서도 총 58명의 피해자(환자 40명, 사망자 18명)가 접수됐다. 대부분이 중복 사용했던 경우지만 CMIT/MIT 성분이 들어간 특정 회사의 제품만 사용하다 사망한 사례도 5명이나 됐다.

정부에서 묵인한 독성물질

이번에 문제가 된 CMIT/MIT는 CMIT(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 5-Chloro-2-methy1-4-isothiazolin-3-one)와 MIT(메틸이소치아졸리논: 2-methy1-4isothiazolin-3-one)의 혼합물인 살균제다. 광범위한 종류의 미생물에 빠른 효과를 보이며 약효가 장기간 지속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냄새가 없고 사용 후 색깔에 변화를 주지 않으며 생분해성이 우수하여 환경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손소독제, 물티슈 등 생활제품 등에 자주 쓰인다.

그러나 보고서에 따르면 CMIT/MIT가 가지고 있는 독성이 완전히 확인되지는 않은 상태다. 이에 장하나 의원은 "CMIT/MIT 성분에 대해서는 국제 학술 저널은 물론이고 국내 학술 모임에서도 그 독성을 확인하고 있다"며 "CMIT/ MIT 성분에 대한 독성 평가를 추가로 실시하고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업무 보고에서 화학 물질 전문 기관인 환경부에 철저한 조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앞서 가습기살균제들을 조사한 정부가 "CMIT/MIT 성분 첨가 가습기살균제는 폐 손상과는 상관이 없다"고 못 박았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2월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 성분이 들어 있는 제품에 대해서만 폐 손상과의 인과 관계가 확인됐고 CMIT/MIT 성분 제품에서는 폐 섬유화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CMIT/MIT 성분의 경우 세포 배양 실험에서는 유해성이 나타났지만 동물실험에서는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독성이 확인된 제품 6종에 대해 수거 명령을 내리고 CMIT/MIT 성분이 들어간 4종은 강제 수거 대상에서 제외했다. 물론 해당 제품들도 안전성이 확증된 게 아니므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받기 전까지는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했지만 대처 미비에 대한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문제 제기에도 질병관리본부 측은 "추가조사는 없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어떤 성분에 독성이 있는 것과 해당 성분이 포함된 제품이 위험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CMIT/MIT 성분 자체에는 독성이 있을 수는 있지만 관련 제품을 피해자들과 같은 조건에서 실험한 결과 폐 손상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장하나 의원이 재조사를 신청한 것은 사실"이라며 "같은 건에 대해 다시 조사를 실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관련 기업 모르쇠로 일관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CMIT/MIT 성분과 사망자와의 연관성이 나타나면서 해당 제품들을 내놓았던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CMIT/MIT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살균제는 이마트 '이플러스', 애경 '가습기메이트', GS리테일 '함박웃음', 다이소 '산도깨비' 등 총 4종이다. 각 기업은 지난해 이미 해당 제품들을 모두 수거했지만 여전히 피해자 보상 문제는 남아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애경 '가습기메이트'에 대한 총 43건의 피해사례 중 해당 제품만을 단독으로 사용하다 사망한 사람은 총 5명이다. 이마트 '이플러스'의 경우 다른 제품과 중복해 사용한 피해자 9명 중 3명이 사망했고, GS리테일 '함박웃음', 과 다이소 '산도깨비'는 각각 다른 제품과 중복해 사용한 피해자가 3명씩 나타났다.

문제는 해당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 피해자들의 구제는 요원하다는 점이다. 이에 앞서 문제가 됐던 PHMG, PGH 성분 함유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했던 기업 중 피해자에게 사과하거나 보상에 나선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심지어 일부 기업의 경우 피해자들이 집단으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대형 법무법인을 통해 강하게 대응, 세간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번 경우는 더욱 묘하다. CMIT/MIT 성분의 경우 국내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기관인 질병관리본부에서 '무해하다'고 밝힌 이상 피해자로서는 자신의 질병과 해당 성분과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CMIT/MIT 성분 함유 가습기살균제 판매 기업 관계자는 "장하나 의원의 주장은 질병관리본부의 조사결과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우리로서는 공신력 있고 과학적으로 진행된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밖에 없지 않나"고 전했다. 이어 관계자는 "별다른 증거도 없이 단순히 우리 가습기살균제를 쓰던 사람이 비슷한 질병을 얻었다는 사실만 갖고 소송할 경우 법원이 누구 손을 들어주겠냐"고 꼬집었다.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와 판매사가 다른 점도 피해자 보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를테면 '가습기메이트'의 경우 '애경'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제조사는 SK케미칼인 것이다. 이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는 소비자로서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