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 양성화 착수… 정치권·대자산가 대상 해외불법거래 집중 조사국세청 조사4국 확대… 전담조직 운영 계획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한국인 최대 5,000여명 평균 1인당 250억 숨겨한류 관련 탈세 의혹… 엔터테인먼트사도 조사

국세청이 해외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자산가들의 재산 추적을 본격화하고 있다. 사진은 국세청사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박근혜 정부, 해외 은닉재산 추적 본격화

박근혜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이에 따라 숨은 자산가와 비자금을 조성한 기업인 등이 사정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세청의 주도로 추진되는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자금 추적도 병행한다. 국세청은 기업의 역외탈세 등을 조사해 문제가 드러날 경우 엄격하게 조치한다는 계획이다.

이목이 쏠리는 대목은 지하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치권 비자금도 그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금까지 여러 의혹이 제기됐던 전 대통령들의 비자금과 기업 비자금의 연결 여부도 일부 밝혀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사정기관이 지하경제를 정조준하자 재벌 2, 3세들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국세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세청 등은 재벌 2, 3세들의 해외재산과 계열사 지분소유 그리고 계열사 형태의 별도법인 등에 대해 전례 없는 고강도 조사를 벌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번 조사 특별할 것"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따르면 박근혜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할 '지하경제 양성화'정책은 김대중 정부 시절 세무조사 강화와는 다르다.

현 부총리는 지난 10일 세종특별자치시 인근 식당에서 기획재정부 출입 기자단과 만찬 간담회를 갖고, 박근혜정부가 추진할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 등에 대해 설명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단순한 세무조사 강화가 아닌 제도적인 접근으로서,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를 활용하는 등 대기업·대재산가들을 타깃으로 은닉재산과 해외불법거래 등을 집중 조사한다는 것이다.

현 부총리는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ㆍ감면 축소 등으로 5년 동안 총 135조원의 복지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 실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계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조사 4국은 지난해 박근혜 당시 후보자 측으로부터 폐지 검토 대상이었지만 최근 오히려 조직이 대규모로 확대되고 있어 그 배경에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세청 소식통에 따르면 조사4국을 중심으로 배정된 비정기적인 기획·심층 세무조사 역할이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더불어 관련된 업무량도 한층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소식통은 "조사인력이 한정된 상황에 업무가 몰릴 경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게 국세청의 판단"이라며 "이에 서울청 조사2국은 개인분야 조사에 집중하고 조사4국을 법인분야 지하경제 추적조사 전담조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심층ㆍ기획 세무조사 전담인력이 늘어나고, 조사방법 또한 심층 세무조사 방식으로 운영돼 조사의 강도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국세청 등 사정기관은 특히 해외조사를 위해 전문 인력을 강화하고 있다. 역외탈세 등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만큼 특별반 형태의 전문팀이 해외로 빼돌린 기업의 비자금 추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국세청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에 따르면 국세청은 이미 기업 또는 기업인의 역외탈세와 관련해 상당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

이 인사는 "15% 미만의 세율의 지역이 조세피난처로 의심받고 있고 국내 법인세율 (최대 22%), 소득세율(최대 38%)임을 감안할 때 탈세규모를 예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세피난처(Tax Haven)란 기업이윤 등 소득에 대하여 과세를 하지 않거나, 낮은 세율의 과세를 위해 기업 등이 이용하는 지역이나 국가를 말한다. 또 다국적기업 등은 조세 회피를 위해 조세부담을 경감시키는 수단으로 특수한 조세혜택이 부여되는 조세피난처를 이용하기도 한다.

역외탈세로 떨고 있는 기업

국세청이 파악하고 있는 조세피난처는 앵길라, 앤티가바부다, 아루바, 바하마, 바레인, 버뮤다, 버진아일랜드, 쿡아일랜드, 도미니카, 지브롤터, 그레나다, 건지, 라이베리아, 몰타, 마셜제도, 모리셔스, 몬세라트, 나우루, 네덜란드령앤틸리스제도, 니우에, 파나마, 사모아, 산마리노, 바투아누 등이다.

국세청이 수집하고 있는 사례를 살펴보면 ▦환율이 급격히 상승해 거액의 외화자산 평가이익이 발생할 경우에 명목회사(paper company)와 파생상품거래를 이용해 세부담을 회피한 회사 ▲내대부 투자자금을 이자소득세가 면제되는 조세피난처의 명목회사(paper company)를 경유시킴으로써 이자소득세 회피한 기업이나 개인 ▲조세피난처에 SPC(special purpose company)를 설립 이를 통하여 국내 부실기업의 주식을 인수한 후 단기간 내에 양도하여 막대한 차익을 얻고도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회피 ▲조세피난처에 역외펀드를 설립하고 외자유치를 가장하여 주가 조작하는 기업이나 개인 등이다.

이외에 조세피난처에 역외펀드를 설립하고 계열회사에 자금 부당 지원하거나 조세피난처에 특허권 등을 위장 등록시키고, 이를 경유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여 사용료(로열티)에 대한 과세 회피하는 기업도 조사할 계획이다.

국세청이 전통적인 조세피난처로 알려 진 버진아일랜드(영국령)에 재산을 숨긴 세계인사들 가운데 한국인이 있는지 확인 작업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전경련을 비롯한 대한상의, 경총, 중기중앙회 등 경제단체들은 국세청 세무조사 발표 등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재계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인으로 해외조세피난지역에 거액을 빼돌린 숫자는 최소한 3,000명 최대 5,000여명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들은 평균적으로 1인당 25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국세청은 파악하고 있다.

가장 우선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기업과 개인은 A기업과 G씨다. A기업은 해외에 현지 법인 등 회사를 설립하고 기업과 특수관계인 K씨에 현지법인 관리를 일임하고 있다. 이 회사는 대선 전인 6월부터 역외탈세 의심을 사고 있으며 이에 대한 내용은 검찰도 일부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기관 인사에 따르면 이 기업의 총수 일가가 이 회사를 통해 비자금을 빼돌리거나 유령회사를 통해 검은 돈을 세탁한 뒤 국내 투자금 명목으로 다시 들여온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이 현지 법인은 캐나다 등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G씨는 자신의 친인척과 최측근의 지인 등을 해외 페이퍼컴퍼니 사장으로 앉힌 뒤 지속적으로 돈을 빼돌린 것으로 국세청은 의심하고 있다. G씨의 핵심 측근인 L씨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굴지 대기업이 중요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핵심으로 활약했으며, 그 공로로 해당 기업의 요직에 앉은 인물이다.

G씨의 해외 자금을 L씨가 관리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L씨는 자신과 특수관계에 있는 제3자를 현지 페이퍼컴퍼니 사장으로 보내고 그 외에도 다른 현지인 명의 회사를 두 개 더 설립해 돈 세탁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세청은 우선 몇 가지 의심 정황을 주목하고 있다.

국세청 소식통에 따르면 ▲기술 제공에 따른 거액의 로열티를 사주의 국외 개인계좌로 수취하고 법인세를 탈루, 해외금융계좌 신고도 미이행하거나 ▲위장 비거주자가 외국인등록번호와 여권번호를 혼용하여 신분을 세탁한 후 배당소득을 수취하고 종합소득합산과세를 회피한 경우를 살피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조사에서 한류관련 탈세 의심 내역도 조사한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이명박 정부 당시 한류를 통해 수익을 거둔 엔터테인먼트 회사들도 조사할 계획이다.

이 소식통은 "해외에서 연예관련 용역을 제공하고 관련 대가를 별도의 해외계좌나 해외에서 현금으로 지급받고 신고 누락한 엔터테인먼트사 탈세도 조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지하경제 조사 칼끝 어디로

이와 함께 사정당국은 이번 지하경제 조사를 위해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 등 정부와 공기업이 보유한 금융거래 정보를 총 동원할 계획이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탈세추적이다.

고액의 해외계좌 미신고자는 명단이 공개되고, 자금 출처를 소명하지 못하면 과세 대상 소득으로 추정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추진된다.

국세청은 대기업 대자산가와 고소득자영업자, 민생침해사범, 역외탈세자 등을 4대 지하경제로 정하고 올해 이 분야에 조사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지난 10일 오전 종로구 수송동 청사에서 전국 세무관서장과 직원 대표 등 2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3년 전국 세무관서장회의'를 열고 새 정부 첫해를 맞아 이 같은 내용의 '국세행정 운영방안'을 중점 추진키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국세청은 FIU법을 개정해 세무조사 대상의 선정과 집행, 체납자 은닉재산 추적 등 지하경제 양성화에 금융자료를 폭넓게 활용하기로 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본청에 국세청 차장을 단장으로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기획단을 설치했다. 또 본청과 각 지방청에 세수관리 특별대책반을 운영해 세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세원발굴 대책을 강구한다.

국세청의 전담팀 구성을 보면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조사는 박근혜 정부 5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별도의 T/F 조직을 꾸려 운영키로 했다.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기획단'을 본청에 설치했으며, 국세청 차장을 단장으로 하고 총괄기획분과, 탈세대응분과, 세원발굴분과, 체납추적분과로 구성했다.

기획단은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계획의 수립, 집행, 제도개선사항 논의, 추진실적보고 등의 임무를 맡는다.

기획단은 외부인사 위주로 구성되는 '지하경제 양성화 자문위원회'에 추진실적을 보고하게 된다. 자문위원회는 국세청 직원, 시민단체, 유관단체, 교수, 세무전문가 등 10여명으로 구성된다.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은 철통보안 속에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조사의 핵심인 금융정보들은 여의도에서 세종로로 옮겨진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위치한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세종로 금융위 청사로 이사한다고 밝혔다.

이번 이사에서는 70여명 FIU 직원들의 사무실 용품 등을 비롯해 서버, 스토리지(저장장치) 등 250여대에 이르는 고가 전산장비들도 함께 옮겨진다. 특히 이들 전산장비에는 불법 거래가 의심되는 혐의거래보고(STR), 고액현금거래자료(CTR) 등 금융거래정보 6,000만건이 저장돼 있다.

FIU는 중요 정보를 담고 있는 전산장비보호를 위해 무진동 특수 화물차 3대를 동원하는 등 조사를 위해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다. 무진동 특수 화물차는 시속 약 30km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이동하며, FIU 직원들도 차량을 에워싸고 이동하는 등 극도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