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불교계 소통창구 역할… 청불회장에 '무교' 유민봉불교계 불만 고조되자… '한반도 평화 대법회' 참석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와 국민행복을 위한 기원 대법회'에서 삼귀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종교가 없다. 말하자면 무교(無敎)인 것이다.

그런 박 대통령이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개신교 쪽과 인연이 좀 있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청와대를 나온 지 2년 뒤인 1981년 장신대 기독교교육학 대학원을 한 한기 다녔다고 한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불교와 아주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고 육영수 여사가 독실한 불자였던 터라 박 대통령은 불교에도 작지 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이 지난달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5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국회조찬기도회장인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신 대법관, 박래창 전 한국CMBC 회장,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등 3,000여명도 박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 했다.

여기까지는 무리가 없다. 대통령이 주요 종교의 큰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관례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불자회(청불회ㆍ靑佛會) 회장 선임과 관련해 "적임자가 없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면서 불교계의 불만 섞인 시선이 청와대를 향했다.

청와대 내 석조여래좌상
적임자 찾기에 골몰하던 청불회는 고육지책으로 유민봉 국정기획수석비서관에게 이 모임의 회장을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불교계 일각에서는 "유 수석은 무교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소망교회 장로인 이명박 전 대통령 때부터 이래저래 불만이 컸던 불교계에서는 청불회장을 무교인 유 수석이 맡게 되자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청불회 명맥이 끊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정치권 관계자는 "역대로 수석비서관이 청불회장을 맡았는데 수석비서관급 중 불자가 없다고 해서 행정관이나 일반 비서관을 그 자리에 앉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유 수석은 무교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불교와 가까운 편"이라고 귀띔했다.

청와대 내에는 장관급 실장 3명에 수석비서관 9명이 있지만 공교롭게도 불교와 인연이 있는 인사는 한 명도 없다. 허태열 비서실장,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은 개신교 장로이고 수석들도 대부분 개신교를 믿는다. 유 수석도 독실한 불자는 아니지만 고시공부를 할 때 불교와 가까워졌다는 후문이다.

청불회는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말기이던 1996년 8월에 만들어졌다. 박세일 정책기획수석이 청와대 내 행정관과 비서관 등 50여명을 모아서 모임을 결성했다.

김 전 대통령 역시 개신교 장로였던 터라 재임 기간 종교 편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따라 불교계 일각에서는 불만을 제기했고, 청와대와 불교계의 소통창구로 청불회가 출범한 것이다.

역대로 청불회장은 정권의 실세들이 맡았다. 대통령을 대신해서 불교계와 가교 역할을 하는 자리가 청불회장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박세일 정책기획수석,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박준영 공보수석,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변양균 정책실장,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홍상표 홍보수석, 박범훈 교육문화수석 등이 이 모임의 회장을 역임했다.

사실 불교계는 이 전 대통령 재임기간 불만이 작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만 해도 청와대 내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있는 석조여래좌상 참배가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취임과 함께 불상 참배가 중단되다시피 했다. 누가 강제로 막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통령을 의식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고 한다.

불교계는 박 대통령 취임과 함께 이런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청불회장 선임 난항 등이 불거지면서 불교계의 불만은 사그라지기는커녕 되레 증폭됐다는 전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쉐라톤그랜트워커힐호텔에서 주최한 '한반도 평화와 국민 행복을 위한 기원 대법회'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의 불교 행사 참석은 취임 후 처음이었다. 이를 두고 '불교계 달래기'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국민 행복을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정신적 가치가 편안하고 문화의 꽃을 함께 피워내야 한다. 우리 불교가 피워온 찬란한 문화예술의 꽃은 우리가 나아갈 문화융성의 길에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정치권 관계자는 "전 정권 때 불만이 있었는데 새 정권 들어서 청불회장감도 마땅치 않은 상황을 맞자 불교계 일각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으로 안다"며 "박 대통령의 지난 15일 대법회 참석도 불교계 달래기의 일환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편 우여곡절 끝에 새 회장을 맞은 청불회는 지난 3일부터 회원 모집에 나섰다. 청불회는 이날 청와대 내부 통신망인 '웹 춘추'에 '청와대 불자회 회원 모집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청불회는 회원 모집 안내문에서 "독실한 불자이신 유민봉 수석을 15대 회장으로, 꾸준한 신행을 이어오신 38분의 경호실 불자회원님들과 함께 '청불회' 활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유 수석이 회장에 선임됨에 따라 청불회 총무는 최상화 춘추관장이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최 관장은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있는 불상에 가서 삼배를 할 만큼 불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