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유업 '흡혈경영'제품 주문량 2~3배… 대리점에 막무가내 떠넘겨월 1,600만원 적자로… 항의땐 권리금 담보 협박대리점주 분노의 시위… 남양 "허위사실" 불구… 검찰, 전·현직 임원 수사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이 본사의 막무가내식 밀어내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피해 대리점 창고에 쌓여있는 '밀어내기' 물량
국내 굴지의 유제품업체인 남양유업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검찰이 남양유업 전ㆍ현직 임직원을 대상으로 직접 수사에 나선 까닭이다.

남양유업 대리점주 2명의 고발로 시작된 이번 사건에서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김웅 남양유업 대표이사 등은 '밀어내기', '떡값요구' 등 다양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남양유업 측이 받고 있는 혐의들은 '상생경영', '불량식품 척결' 등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민감히 여겨지는 사안들인지라 귀추가 주목된다.

대리점주와 '법정 싸움'

남양유업 본사 정문이 올해 초부터 시끌시끌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대리점주들의 1인 시위 때문이다. 대리점주들이 길가에 세워놓은 피켓에는 '대리점 피 빨아 논현동 신사옥 웬 말이냐. 우리는 피 말라 죽어간다.', '검은돈 수수, 떡값요구 남양유업 철저히 수사하여 처벌하라.', '독재기업 남양은 내가 한 주문 발주 왜, 맘대로 수정하냐''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남양유업의 대리점주들은 도대체 어떤 부당한 처우를 받았길래 생업을 뒤로하고 본사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이 본사의 막무가내식 '밀어내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피해 대리점주-남양유업 영업직원과의 통화 녹취록, '떡값' 송금내역서.
사건은 지난 1월 대리점주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남양유업을 고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피해 대리점주 3명은 남양유업이 '밀어내기', '떡값요구' 등으로 부당한 수익을 챙기고 있다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고발했다.

또한 이들은 본사 앞에서 1인시위를 전개하면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남양유업을 규탄하는 호소문과 영상을 올리는 등 이번 사건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남양유업 측은 '밀어내기', '떡값요구' 등은 대리점주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본사의 경영과는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남양유업은 해당 대리점주들과의 대리점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이들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남양유업의 강력한 대응에도 피해 대리점주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비슷한 피해자들이 모여 만든 남양유업대리점피해자협의회(이하 협의회)에 따르면 함께 힘을 모으는 대리점주들도 점차 늘어나 벌써 20명 가까이 된다. 남양유업의 고소에 대해 협의회 측도 지난 1일 맞고소로 대응, 양측의 싸움은 법정에서 판가름나게 됐다.

초과물량 막무가내 떠넘겨

피해 대리점주들에 따르면 '밀어내기'는 남양유업 영업직원이 대리점의 인터넷 발주 전산 프로그램(PAM21)에 접속, 대리점의 발주 품목 및 수량을 조작한 발주서를 만들어 서버에 보존하며 시작된다.

이후 남양유업의 물류센터에서는 조작된 발주서에 따라 대리점 주문량의 2, 3배에 이르는 물량을 배달해온다. 대리점주로서는 떠맡은 초과물량 중 상당 부분을 폐기하게 되고 고스란히 적자로 남게 된다.

대리점주들이 담당 영업직원에게 항의해도 소용이 없다. 지점별로 정해진 물량을 소화해야만 하는 영업직원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대리점주들을 협박한다.

물량 처리에 실패하면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라 영업직원으로서도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권리금과 투자비용 등을 담보로 재계약을 해주지 않겠다는 영업직원들의 으름장에 대리점주들은 강한 반발도 하기 어렵다.

이는 최근 <주간한국>이 입수한 피해 대리점주와 남양유업 영업직원의 통화 녹취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해당 녹취록에는 본사의 막무가내 밀어내기에 항의하는 대리점주에게 영업직원이 "이미 다 제품을 만들어놓은 상태라('밀어내기'는) 어쩔 수 없다"며 "한 달에 1,500만원 정도를 미는 것 같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어 "판매가 안 되면 해당 제품을 단종하면 되지 않느냐"는 대리점주의 호소에 영업직원은 "단종을 하면 매출이 떨어지기 때문에 (본사에서) 안 된다고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자기 돈으로 적자를 메우던 대리점주는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된다. 실제로 이창섭 협의회 회장의 경우 지난 3년간 월평균 1,600만원 정도의 적자를 봤고 전체 피해액 5억9,000만원 중 대부분이 빚으로 쌓여 있는 상태다.

'밀어내기'의 더욱 악랄한 점은 유통기한이 임박해 본사에서 폐기해야 하는 제품을 대리점에 떠넘긴다는 점이다. 유제품업계에서는 유통기한이 30%가량 남은 제품은 출고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남양유업은 유통기한이 며칠 남지 않은 제품들을 대리점에 '밀어내기'해 처리비용을 전가하고 있다. 대리점주는 피해를 줄이고자 '원플러스원' 행사 등을 벌여보지만 결국 물량의 대부분을 날릴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을 사가게 되는 소비자들도 건강을 위협받게 된다.

남양유업이 대리점주에게 시시때때로 요구하는 떡값도 큰 문제다. 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영업직원들을 통해 명절ㆍ휴가 떡값과 임직원 퇴직위로금, 대형마트 파견 직원 급여 등을 수시로 요구해온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현금 혹은 차명계좌로 떡값을 받고 이에 불응하면 보복성 '밀어내기'를 자행한다.

이에 대해 남양유업 측은 "대리점주들이 일방적으로 조작한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수천만원의 물품 대금을 미납한 대리점에서 이를 탕감해주지 않는 본사에 대한 흑색비방에 나선 것"이라며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경찰에 고소했기 때문에 곧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라고 전했다.

새 정부 압박에 당혹

남양유업이 '밀어내기', '떡값요구'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남양유업은 2006년에도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대리점이 구입할 의사가 없는 상품을 구입하도록 강제했다'는 명목으로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또한 2009년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밀어내기'에 따른 대리점주의 손해 중 3,6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수년간 자행돼온 불법행위이지만 그에 따른 처벌이 미미한 까닭에 아예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사뭇 다를 것으로 보인다. '상생'과 '불량식품 척결'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가 새로 출범한 까닭이다. '상생'은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의 주요 화두다. 기자회견, 연설 등을 통해 수시로 '상생'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 때문에 재계에서도 저마다 협력사와의 상생 작업에 발 벗고 나설 정도다. 박 대통령이 '4대악'으로 규정한 '불량식품' 또한 최근 경찰의 매서운 단속을 받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감안하면 최근 남양유업 임직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유제품업계와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는 홍원식 회장, 김웅 대표이사 등 남양유업 임직원 10여 명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대리점주들의 고발장이 접수된 지 불과 이틀 만에 사건을 배당했다는 점, 경찰이 아닌 검사가 직접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은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검찰은 남양유업을 둘러싼 '밀어내기', '떡값요구' 등의 사실 여부를 검토한 뒤에 관련 인물 조사를 차례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남양유업 측은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며 "이후 수사 과정을 지켜보며 대응 방안을 정하겠다"고 전했다. 대리점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남양유업이 새 정부의 철퇴를 맞아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