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전 국정원 핵심 인사국정원 인사권 실무총괄MB와 독대 등 실세폐기 못한 기밀 처리 소문

검찰이 국정원 여직원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국정원 주변에서 MB정부 시절 국정원 핵심이었던 A씨와 관련된 여러 소문과 추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 검찰과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정원 내부 동향에 밝은 한 소식통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A씨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이다. A씨는 MB정부 시절 국정원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대통령과 독대하는 등 청와대 업무에도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소식통들은 이런 A씨가 "언젠가부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연락도 닿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A씨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일부에서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세간의 이목이 쏠린 사이 A씨가 MB정부의 비밀문건을 챙겨 잠적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민주당 낚시에 걸렸나

검찰은 최근 국정원 심리정보국의 민모 국장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국정원 여직원 수사를 속전속결로 해결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 주변과 야권 일각에서는 국정원 여직원 수사를 두고 "MB정권 실세들이 던진 낚시에 걸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몇 가지 정황이 석연치 않아서다.

예컨대 국정원 정치개입과 관련해 대선 전에는 경찰이 '없다'고 했다가 대선 후에 특별한 이유 없이 '있다'고 말을 바꾼 것, 원 전 원장이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보란 듯이 해외로 출국하려 했다는 점 등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특히 원 전 원장의 출국은 국정원 내부에서도 말이 무성하다. 국가기밀을 취급했던 이들은 말단 직원에서 고위인사들에 이르기까지 기밀유출 우려 등으로 인해 해외 출입국에 일정부분 제한을 받는다.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이었던 원 전 원장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또 국정원 여직원 사건으로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 보란 듯이 해외출국을 준비했다. 이에 검찰과 정치권에서는 원 전 원장이 시선 끌기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원 전 원장이 시선 끌기를 시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야권 일각에서는 "여권이 정권에 치명적일 수 있는 MB정권의 비밀파일을 빼돌리기 위해 극비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던진다.

경찰의 말 바꾸기와 국정원장의 해외도피 시도 등은 치밀하게 짜진 각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경찰과 국정원 모두 청와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없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들이 청와대와 아무런 교감 없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검찰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MB정부 비밀기록물에 대해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MB정부는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노무현 정부가 청와대 비밀기록물을 빼돌렸다고 주장하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불을 붙였다"며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다른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를 승계한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의 문건이 파기된 사실을 확인했으면서도 이를 특별히 문제 삼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MB와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비밀기록과 함께 사라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비밀기록'을 단 한 건도 남기지 않고 모두 폐기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인 적 있다. 당시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지난 3월 7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MB정부가 비밀기록을 단 한 건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 지정기록물 자체도 이전 정부에 비해서 30% 줄었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만약 폐기했다면 이는 엄중한 사안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 최고위원이 참고한 해당 보도내용을 살펴보면 MB정부의 대통령 기록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과 비교해 8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드러난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측은 MB정권 청와대 대통령실과 대통령 자문위원회 등에서 지난 4년간 통보한 기록물 생산건수는 총 82만5,701건이라고 밝혀졌다. 연평균 20만6,425건의 자료를 생산한 셈이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5년간 총 825만3,715건, 연평균 165만743건의 기록을 남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참여정부의 기록물을 문제 삼았던 MB정부 기록물이 참여정부에 비해 8분의 1 수준(12.5%)에 불과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민주통합당의 2012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대통령실이 직접 생산한 기록량을 비교했을 때도 현저한 차이가 나타났다. MB정부 대통령실은 지난 4년간 54만1,527건의 기록물('위민 시스템'을 통한 전자기록 18만5,570건, 종이기록 9,422건)을 생산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 비서실은 5년간 204만449건이었다.

이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부가 넘긴 기록물 대다수가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물, 아니면 온라인 시청각 기록이었다는 보도는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어 "중요한 기록물들을 폐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폐기했다면 이는 엄중한 사안이라고 본다"며 "차기 정부에게 책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 국가의 중대한 기록물들을 폐기하는 일은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상득 전 의원 등 MB정부 실세들이 구속되는 가운데 비밀기록이 단 1건도 없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며 "차기 정부가 참고할 기록이 없어지게 되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국정원 A씨가 파기하지 못한 MB정부의 비밀파일을 들고 잠적했다는 소문이 국정원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MB정부 시절 국정원 안팎에서 핵심실세로 지목됐던 인물로 이 전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매우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국정원 직원 L씨의 증언에 따르면 A씨는 인사권을 쥐고 국정원 내 호남인맥 축출에 앞장섰으며, 역대 국정원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부서를 신설해 자신이 부서를 총괄했다고 한다.

복수의 국정원 전ㆍ현직 직원들이 전하는 말을 들어보면 원 전 원장은 사실상 결제만하는 바지 원장에 가까웠으며, A씨가 국정원 실무를 총괄하는 사실상 실무 총책이었다.

또 A씨는 박주원 전 안산시장 검찰 수사에도 개입해 박 전 시장의 검찰구속을 뒤에서 지원하기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박 전 시장은 검찰 수사로 옥살이를 하다 결국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실제로 이 같은 일이 가능한지 추적한 결과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영삼 정권 당시 국정원 내 핵심부서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리 수집 업무를 하던 한 국정원 직원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비밀파일을 들고 지방으로 잠적했다가 정권이 바뀌자 슬그머니 복귀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K라는 가명을 썼으나 실명은 Y씨였다. <주간한국>은 그와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그는 대화에 응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그의 주변인들로부터 확보한 증언에 따르면 관련 내용은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노무현 정부 때 9,700여 건이던 비밀기록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에 대해 MB정부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비밀기록이 한 건도 없는 것은 맞지만 비밀에 해당하는 기록은 7년, 15년, 30년 기한의 지정기록으로 분류해 넘겼다"고 말했다.

대통령 기록물은 일반, 비밀, 지정기록으로 분류된다. 이 중 비밀기록은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 인가권자만이 열람할 수 있는 국가 기밀 사안이다. 지정기록은 이보다 수위가 높아 이 기록을 만든 대통령만 볼 수 있도록 완전히 봉인한 자료다.

지정기록물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이 이뤄진 경우, 관할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이 제시된 경우, 대통령 기록관 직원이 업무 수행상 필요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장의 사전승인을 받은 경우 접근 및 열람이 가능하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