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움직임에 재계 긴장수직계열화 체제 현대차… 삼우·현대오토 등 내부거래 비중 80% 이상허씨 일가 지분 많은 GS… 내부거래 의존도도 높아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본사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연일 화제다. 정치권,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대기업 총수일가에 집중되고 있는 부당 이익 환수를 위해서라도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환영의 목소리가 높은 반면, 당사자인 재계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정당한 경제활동조차 위축될 것"이라고 항변한다.

4월 임시국회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공정거래법)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만 계류된 채 6월로 미뤄진 상태다. 그러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데다 여야 간 입장 차이는 다소 있지만 정치권에서도 관련 문제를 하루 빨리 처리하고 싶어하는 상황이라 법안 통과는 머지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감 몰아주기 법안의 당사자인 재계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그 여파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요즘 '3대 불가사의' 우스갯소리가 인기다. 언론지면 등을 통해 자주 소개되며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기는 한데 정작 그 실체는 아무도 모른다는 내용으로 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 정치', 김정은의 '속마음'이 이에 해당한다.

재계 인사들을 만나서 이 얘기를 꺼내면 '3대 불가사의'에 하나를 더해 '4대 불가사의'라고 하고 싶다는 반응도 나온다. 바로 지난 총ㆍ대선의 주요 화두였던 정치권의 '경제민주화'다. 균형 있는 경제성장,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 적정한 소득분배 등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까닭에 주요 의제로 등장할 때마다 미묘하게 형태를 달리하며 재계의 정신을 쏙 빼놓는 까닭이다.

이렇듯 실체가 불분명한 경제민주화지만 각론으로 들어갈수록 의미는 분명해진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단어를 이용해 핵심을 짚어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일감 몰아주기다. 일감 몰아주기란 총수일가가 다수의 지분을 지니고 있는 특정 계열사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줘' 급속도로 성장시키고 그 과정에서 늘어난 이익을 다시 총수일가가 가져가는 행위를 통칭한다.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GS그룹 본사
문제는 그동안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안정적인 납품처 확보, 효율적인 기술협력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해 내부거래를 이용해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등 주요 대기업들은 내부거래를 통한 수직계열화 시스템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왔다. 일감 몰아주기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기업 경쟁력 강화의 근본이 돼왔던 내부거래들을 손볼 경우 단순 과세로 인한 손해를 훨씬 넘어서는 피해가 불가피하다. 재계가 불만을 제기하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에 대한 기준은 어느 정도 마련돼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계열사를 선정할 때 총수일가 지분이 3%를 넘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30% 이상인 곳으로 한정하는 방법이다. 특히 총수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곳은 직접 증거가 없어도 총수가 관여하거나 지시한 것으로 추정하겠다는 이른바 '30%룰'이 법적 안정성 논란 때문에 사실상 철회되다시피 하며 재계의 숨통도 조금이나마 트였다. 그러나 기준 자체가 워낙 애매해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 데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둘러싼 논의가 워낙에 거센 터라 관련 대기업들의 부담은 여전한 상황이다.

주무기관 작심하고 나서

사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발생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재계의 대표적인 문젯거리로 지적돼온데다 현대차그룹, SK그룹, 태광그룹, 웅진그룹 등은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수백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만큼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던 적은 없었다. 특히, 지난해 총ㆍ대선에서 여야 모두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이후에는 그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주무기관들도 작심하고 나선 모양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난달 24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3년도 업무계획'에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근절 방안이 담겨있었다. 기존의 공정거래법 5조, 23조를 개정해 일감 몰아주기 규정을 강화하고 이를 감시하기 위한 전담 조직을 신설하겠다는 내용이다. 오는 6월까지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완료하고 12월 시행령을 만들 계획이다.

국세청 또한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법원행정처 등 관계기관의 협조를 구해 대기업 대주주 및 총수일가에 대한 가족관계등록자료를 수집, 가계도를 구축해 과세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가공작업을 마친 상태다. 자체적인 세액계산 프로그램 개발도 완료했으며 역삼, 삼성, 서초 등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부과대상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시범세무서를 선정, 예행연습을 하며 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대차, GS 막대한 타격 예상

그렇다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될 경우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곳은 어디일까. <주간한국>은 지난해 공정위가 공개한 '대규모 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과 기업경영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대기업 순위 10위 내의 민간 대기업 계열사 중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영향받을 기업들을 살펴봤다.

삼성그룹에서는 IT 서비스ㆍ솔루션 업체인 삼성SDS의 내부거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각각 8.8%, 4.2%, 4.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SDS는 지난해 삼성전자의 시스템종합관리ㆍ통합구축을 통해 1조6,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등 전체의 68.9%에 이르는 내부거래 비율로 눈길을 끌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위치한 삼성에버랜드도 지난해 44.5%의 내부거래 비율을 기록했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의 주요 핵이니만큼 총수일가의 지분율도 높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3.7%)을 비롯해 이재용 부회장(25.1%), 이부진 사장(8.4%), 이서현 부사장(8.4%)이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45.6%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쇳물부터 완성차에 이르는 수직계열화 체제를 일찌감치 완성한 까닭이다.

현대차그룹에서 가장 높은 내부거래를 기록한 곳은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하는 삼우다. 일감 몰아주기 혐의를 받는 여타 계열사들의 지분을 '정씨일가'가 독점하는 것과 달리 삼우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셋째 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 일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신성재 사장이 25.0%를, 신 사장의 두 아들인 신우택, 신우현 군이 각각 8.3%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대오토에버도 일감 몰아주기 측면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현대차그룹 IT 서비스 전문업체인 현대오토에버는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각각 지분 10.0%, 20.1%씩 지니고 있다. 지난해 현대오토에버가 일감 몰아주기로 기록한 매출은 전체의 83.5% 수준이다. 그밖에 현대머티리얼, 서림개발, 이노션 등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들도 내부거래 비중이 높았다.

재계 3, 4위인 SK그룹, LG그룹에서는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SK C&C와 (주)LG가 일감 몰아주기 업체 명단에 올라있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38.0%)과 동생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10.5%)이 48.5%의 지분을 지니고 있는 SK C&C는 지난해 65.1%의 내부거래율을 기록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10.6%), 구본준 LG전자 부회장(7.6%), 구광모 LG전자 부장(4.6%) 등 총수일가가 27.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주)LG도 지난해 전체 매출 중 53.2%를 일감 몰아주기로 올렸다.

전문가들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GS그룹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을 필두로 '허씨일가' 구성원들이 계열사 대부분의 지분을 나눠갖고 있는데다 내부거래 의존도도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비상장계열사로 GS그룹에서 내부거래비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STS로지스틱스, 보헌개발 등은 아예 총수일가의 지분이 100%에 이른다. 특히, 내부거래비율이 100%에 이르는 STS로지스틱스의 경우 지분을 미성년자인 허정홍, 허석홍 군이 나눠갖고 있어 문제의 소지가 크다. 허정홍, 허석홍 군은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의 장ㆍ차남이다. 내부거래비율이 99.4%인 보헌개발은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아들인 허서홍씨와, 허세홍 GS칼텍스 부사장, 허준홍 GS칼텍스 상무가 각각 33.3%씩의 지분을 지니고 있다.

정보통신업체인 GS네오텍과 시설관리용업업체인 엔씨타스, 레저업체인 승산도 총수일가 지분율이 100%다. 세 곳 모두 일감 몰아주기로 인한 매출 비중도 전체의 50%를 넘나들 정도로 많다. 특히, 비상장사인 해당 기업들은 높은 배당률로 총수일가의 배를 불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GS네오텍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허정수 회장의 경우 올해 배당금으로만 120억원을 챙기며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