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여세 부과로 후계구도 차질 불가피대기업 상당수 대상에… 이재용·정의선 등 영향편법 상속에 '제동' 걸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오른쪽). 이재용 사진=연합뉴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움직임에 재벌 2ㆍ3세 ‘덜덜’

정치권, 시민단체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목소리가 커지면서 후계구도를 미처 완성하지 못한 재계 2~3세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내부거래를 통해 차기 총수 후보들의 자산을 불려 나가던 기존 방식에 제동이 걸리며 후계구도 형성에도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 까닭이다. 대기업 후계자 상당수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올라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후계자 사익 편취 수단으로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은 “회장 아들이라고 해서 돈을 너무 쉽게 번다”는 불만이 확산되면서부터다. 이는 일감 몰아주기의 근본 목적이 총수일가, 그중에서도 후계자들의 사익 편취에 있었다는 점이 언론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기업 총수의 부가 후계자에게 이어지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우선 대기업 총수가 수십억원대의 현금을 후계자에게 넘겨준다. 후계자는 그 돈으로 비상장 계열사를 하나 차리거나 기존 계열사의 주식을 싸게 매입한다. 이때 대기업 경영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수의계약이 보편적인 시스템통합(SI), 물류, 광고 등의 업종이 주로 선정된다.

이후 대기업은 후계자의 보유지분이 높아진 계열사에 막대한 양의 일감을 몰아준다. 그룹 차원의 일감 몰아주기로 계열사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후계자가 지니고 있는 지분가치도 함께 상승한다. 그 과정에서 매년 수십억원씩 책정되는 배당금도 들어오게 된다. 혹시라도 해당 계열사가 상장되거나 기존의 상장계열사와 주식교환을 하게 되면 대기업 총수에게 처음 받은 수십억원은 수조원대로 불어난다. 결과적으로 몇 년에 걸쳐 수조원에 이르는 금액을 상속받았음에도 증여세는 처음에 받은 수십억원에 해당하는 부분만 내면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보유함으로써 후계체제를 사실상 완성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수조원의 자산을 확보, 승계구도를 공고히 하는데 일감몰아주기로 인한 실적도 적잖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통해 헐값에 산 삼성SDS의 지분은 현재 1조원 가까이 뛰어올랐고 이 부회장이 1996년 15억원을 들여 45.7%의 지분을 확보한 삼성SNS의 지분 평가액도 1,000억원대로 대폭 상승했다. 일련의 과정에 일감몰아주기가 있었다는 평가이고 실제로 이 부회장에게 막대한 부를 쥐여준 삼성에버랜드, 삼성SDS, 삼성SNS는 지난해 각각 44.5%, 68.9%, 44.6%의 내부거래율을 기록했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재산 형성 논란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에게도 해당된다. 2005년 이노션 설립 당시 12억원을 출자하며 40%의 지분을 확보한 정 부회장은 그동안 배당금만 108억원을 받았다. 현재 정 부회장이 보유한 이노션의 지분가치는 900억원에 육박한다. 2000년 10억원을 출자한 현대오토에버의 지분가치도 300억원을 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01년과 2002년 30억원을 들여 매입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이다. 2004년과 2005년 지분 일부를 매각하며 31.9%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현재 정 부회장이 지닌 현대글로비스의 지분가치는 2조4,000억원이 훌쩍 넘는다. 정 부회장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준 이노션, 현대오토에버, 현대글로비스의 2012년 내부거래율도 47.7%, 83.5%, 45.2%에 이른다.

SI 계열사 중심으로 내부거래 횡행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대한 재계의 부담은 지난 4월 최고조에 달했다. 2003년 말 상속증여세법 개정으로 증여세 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됐음에도 국세청과 기획재정부가 대기업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를 방치해왔다는 감사원의 지적 때문이다.

감사원은 정의선 부회장, 허창수 GS 회장 일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자녀 등을 대표사례로 지목하며 지난 9년간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부과 방안을 마련하도록 국세청에 통보했다. 당시 국세청이 난색을 표하며 해당 문제가 일단락됐지만 향후 이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될 경우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로 후계자에게 부를 승계해왔던 대기업들에 미칠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일감 몰아주기 과세가 현실로 다가올 경우 이에 영향을 받을 만한 후계자들은 누구일까. 이재용 회장, 정의선 부회장 외에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자로 꼽히는 재계 2~3세들은 상당수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 후계자들이 일감 몰아주기로 이득을 보고 있는 계열사 대부분이 시스템통합(SI) 업종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라는 점이다. 그룹의 수직계열화를 위해 내부거래가 불가피했다는 재계의 해명이 무색해지는 지점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50%), 김동원씨(25%), 김동선씨(25%)는 한화그룹의 SI 계열사인 한화S&C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S&C가 지난해 일감 몰아주기로 올린 매출은 4,702억원으로 전체의 41.6%에 달한다.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대림산업의 SI를 전담하고 있는 대림I&S의 지분 89.7%를 지니고 있다. 대림I&S는 지난해 전체 매출 2,896억원 중 79.1%인 2,292억원을 내부거래로 올렸다.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 역시 SI 계열사인 동부CNI의 일감 몰아주기로 많은 수익을 올렸다. 김 부장은 동부CNI가 동부정밀화학에 흡수ㆍ합병되기 전인 2007년에 부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으로부터 동부CNI 지분을 증여받았다. 원래부터 동부정밀화학의 최대주주로 있던 김 부장은 2010년 합병된 동부CNI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현재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동부CNI가 지난해 일감 몰아주기로 기록한 매출은 2,267억원으로 전체 매출 5,445억의 41.6%에 달한다.

효성그룹은 조현준 효성 사장, 조현문 효성 부사장, 조현상 효성 부사장 3형제가 지분율 30% 이상을 보유한 계열사가 11개사나 된다. 올해 초 조현문 부사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주)효성의 보유 주식 대부분을 매각했지만 여타 비상장 계열사들에 미치는 3형제의 지배력은 여전하다. 3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트리니티에셋메니지먼트, 신동진 등의 내부거래 비율은 70%가 넘는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