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현동 보물 미스터리' 발굴자 백준흠씨 "보물은 없었다""주민 밤낮없이 지켜봐 금 빼돌리기 불가능" 정충제씨 주장에 반박정씨, 사기혐의 고소 관련 "모종의 음모" 주장하기도

부산 문현동 보물탐사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문현동 일대에 일제 어뢰창고를 발굴했던 백준흠씨가 "보물 발굴은 실패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주간한국> 지난 호(제2475호 참고)를 통해 정충제씨가 주장한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백씨는 문현동 보물 발굴에 대해 "일제시대 만들어진 병참기지 지도 등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물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으나 결과적으로 보물을 찾아내는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또 백씨는 보물 발굴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에 대해서도 단호히 부인했다. 누군가 보물을 빼돌렸고 정치권 핵심인사들에 보물이 흘러갔다는 주장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보물에 대한 인간의 탐욕

백씨는 보물탐사에 대해 정씨가 주장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리고 정씨가 2009년도경에 펴낸 책 '황금백합작전'에서 백씨 자신을 도굴범으로 지목한 데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입장이다.

어뢰공장 지도
정씨는 <주간한국>을 통해 일본군이 부산 문현동 일대의 어뢰공장에 천문학적인 보물을 숨겨뒀으며 이 보물을 몇몇 탐사꾼들이 도굴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책에서도 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정씨는 '황금백합작전'에서 자신과 보물탐사를 했던 이들 중 일부가 보물이 발견되자 자신을 사기꾼으로 매도하고 따돌린 뒤 보물을 도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도굴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백씨라는 게 정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백씨는 정씨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정씨는 나를 납치한 뒤 폭행해 그 일로 감옥살이까지 한 사람이다"라며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 보물이 있다며 사기행각을 벌이다 사법처리를 받은 뒤에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백씨는 "정씨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이발사였던 박수웅씨와 함께 문현동 보물을 탐사했으나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보물을 찾지 못했다"며 "그러나 자신이 판 굴을 마치 보물이 있는 굴인 것처럼 속여 나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금전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도 아직 반성하지 않고 나를 도굴범으로 몰고 있어 그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씨에 따르면 탐사가 한창 진행되던 당시 지하 굴에서 마대자루가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씨는 이를 두고 금괴가 들어있는 마대자루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백씨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이며 그 마대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확인한 결과 굴을 팔 때 생긴 돌 부스러기 등을 담을 마대자루였다는 것이다.

백씨는 "우리는 지하에서 마대자루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매우 고무됐었다. 하지만 마대자루를 건져 올린 순간 탐사팀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마대자루에는 '한주소금'이라고 쓰여져 있었던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때 무슨 한주소금이 있었겠나. 그리고 그 안에는 돌무더기만 가득했다. 하지만 정씨는 이를 두고 탐사팀이 자신이 발견한 마대자루를 '한주소금' 마대로 둔갑시켰으며 진짜 황금이 든 마대는 빼돌렸다고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엇갈리는 주장들과 진실

백씨는 마대자루의 진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백씨는 "금은 납보다 더 무거운 물질이다. 가로세로 30센티미터면 1톤 정도다. 정씨가 말한 대로라면 굴 안에 쌓여있던 마대자루 1개 안에 적어도 4톤 정도의 금이 들어 있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겠나. 그 무게를 마대가 견디지 못해 쌓기도 불가능하고 인간의 힘으로 지하 좁은 굴로 운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마대 속에는 황금도 없었고 마대 역시 일제강점기 것이 아닌 80년대 정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다. 도굴된 보물들 중 상당 부분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간 정황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백씨는 허무맹랑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백씨는 "생각해 보면 정씨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보물 발굴 당시 탐사팀이 보물을 발굴하고 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퍼졌고 그 때문에 문현동에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그리고 문현동 일대 주민들이 밤낮 할 것 없이 탐사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막대한 보물을 빼돌리고 또 정치권이 보물 빼돌리는 작업에 개입할 수 있었겠나"라고 반박했다.

정씨가 중국으로 도피한 것에 대해서도 백씨는 "그것은 내가 정씨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황당한 책을 펴내 나의 명예를 훼손했기 때문에 그를 고발했다"며 "그러자 정씨는 중국으로 도망갔다. 정씨가 한국에 들어왔으니 곧 그의 죄를 우리나라 사법부가 물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 호를 통해 "내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깜짝 놀랄 증거가 있다"며 "부산 문현동 보물과 관련해 진실을 입증할 열쇠를 찾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백씨는 더 들어 볼 것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백씨는 "그런 증거가 있다면 얼마든지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보물과 관련해 정씨와 3자 대면할 용의도 있고 자신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내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있다"며 "그가 어떤 주장을 내놓든지 간에 나는 그의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내가 문현동 보물을 발굴하기 위해 쏟아 부은 돈과 시간은 정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나는 내 인생을 그 탐사작업에 걸었던 사람이다. 내가 조사한 자료만 해도 수 만 페이지 분량"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씨는 문현동 보물탐사와 관련해 사기꾼 혐의 등으로 고소를 당해 옥살이를 했다.

당시 재판 기록을 살펴보면 검찰은 정씨가 다른 사람이 판 굴을 자신이 판 굴이라고 속인 뒤 "보물을 찾아내면 지분을 주겠다"며 투자금을 갈취했다고 판단했다.

고소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문현동 해당 장소에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어뢰공장이 존재하지 않고 정씨가 주장하는 내용과 달리 굴을 조사해 본 결과 일부 드러난 굴착 흔적은 해방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검찰과 재판부는 고소인 측의 이 같은 주장을 대체로 인정했다.

정씨는 자신이 고소를 당한 것에 대해 "모종의 음모가 있었다"고 말한다.

정씨는 "일부 인사들의 증언과 현장을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내가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어뢰공장 도굴이 있었던 것 같다"며 "현장 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어뢰공장에서 보물을 도굴한 흔적이 역력하고 각종 발굴 장비가 주변에 뒹굴고 있다. 도굴한 이들이 대량의 금을 옮기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