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한 기업' 스트레스에 속타는 재계"나쁜 기업 찍힐라" 부정적 인식 차단에 올인시장개척·R&D 등 주요 업무는 뒷전 정부·정치권 압박에 몸살

#한 대기업 간부인 A씨는 요즘 외부 리스크 요인에 대한 대응 방안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부서원들과 매일 회의를 하고 있다. 조세피난처 투자 등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이슈들이 나오고 확대 재생산되다 보니 사전에 발굴해 차단하라는 최고 경영진의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10대 그룹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담당하는 부서 인력들을 대폭 강화했다. 당초에는 회사 홍보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 이미지 추락을 막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식의 루머를 사전에 찾아내고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이들 직원은 휴대폰 등을 통해 24시간 트위터 등을 모니터하며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있다.

착한 기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이 '나쁜 기업'으로 인식되지 않기 위한 노력들은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담당부서도 홍보뿐 아니라 사실상 전 부서가 가동되면서 착한 기업 스트레스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재계 고위임원은 "우스갯소리로 기업 본연의 업무인 시장 개척과 연구개발보다 착한 기업으로 남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정부ㆍ정치권 등에서 요구하는 착한 기업의 정의와 역할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화 태도와 말조심도 교육 대상

삼성전자는 최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도급업체 직원 응대 방식까지 교육하고 나섰다. 임직원이 협력사 직원에게 고압적인 언어를 사용하거나 말하는 태도가 위압적이라는 신고가 들어오면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 징계하겠다고 선포했다. 전화 응대 태도에서부터 사용 언어까지 교육을 통해 바로잡겠다는 게 회사의 방침이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국회에 계류된 공정거래 관련 법안으로 임직원들의 언어와 태도 등까지 개선해야 한다는 판단에 이 같은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또한 사회적으로도 대기업과 임직원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어 이 같은 방침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임직원들의 말실수가 자칫 협력업체 직원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동반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이뤄진 것이지만 말실수 하나가 이상한 방향으로 왜곡,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위기감은 웬만한 대기업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현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6년 재계에 중소기업과의 상생이라는 화두가 제시될 때 기업들은 아이디어를 쥐어짜내 중소기업에 퍼주기식 지원을 했다"며 "상생이라는 단어 속에 대기업들의 속앓이가 자리 잡았듯 요즘에는 착한 기업으로 남기 위한 속앓이가 커져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치권 압박…쏟아지는 '카더라 통신'

기업들이 '나쁜 기업'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하는 이면에는 최근의 사회 분위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정부와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한 기업 압박이 그것이다. 경제민주화법은 태생이 '기업이 나쁘다'는 인식하에 탄생했고 최근에는 사정한파까지 몰아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6월 초에 '자본시장과 금융투자법 법률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내용은 상장법인들이 사업보고서를 제출할 때 재무정보 외에도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협력사 관계정보, 여성 복직률, 출산휴가ㆍ육아휴가율, 여성 관리직 비율 등도 담도록 규정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같은 법안 개정안은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일이지만 문제는 착한 기업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몰아치고 있어 기업들이 당혹스러워한다는 점이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는 기업에 기업시민으로서의 역할과 행동에 대해 사업보고서에 담도록 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동반성장 노력과 육아휴가율 등까지 사업보고서에 담으라고 규정하고 있어 기업에 착한 기업에 대한 지나친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고 전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구체적인 전략과 로드맵을 수립한 뒤 나서는 것과 여론에 떠밀려 급조하는 것은 많은 차이를 보일 것"이라며 "정부나 정치권도 현재 추진하고 있는 착한 기업 만들기가 과연 재계 압박용이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NS 선제대응하자

기업들의 착한 기업 스트레스가 고조되면서 트위터 등 SNS 모니터링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이들 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 트위터, 페이스북 등 온라인상에서 특정 기업에 대한 이슈가 터질 때 최초 유포자와 유포 건수 등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기업들에 대한 허위사실이 유포될 경우 최초 유포자에게 해명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월 가입비용만도 최고 3,000만원에 육박할 정도다.

서비스업체의 한 관계자는 "10대 그룹에 속한 모든 기업들은 기업 이미지 추락을 염려해 다양한 업체를 통해 SNS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기업들 입장에서는 매달 2000만~3,000만원의 서비스 이용료 부담보다는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더욱 두려워하는 눈치"라고 전했다.



김상용기자 kimi@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