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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 수여식 전후로 기부금 내놔… 일부선 "돈으로 명예 산다" 논란도

● 명예박사 회장님 누구가 어떻게 받았나
이건희 회장 재계 첫 서울대 명예박사 올라
정주영·몽구 부자 나란히 고려대서 받아
일부는 재학생들 반대로 수차례 굴곡 겪기도
최태원·구본무 회장은 하나도 없어
10대 그룹 ‘회장님’ 중 명예박사 누구?

무책임한 남발로 취지 무색해진 명예박사

‘박사’는 학문연구와 학술 진흥을 위해 일정한 능력을 갖추거나 업적이 있는 자에 대해 대학이 수여하는 최고의 학위 또는 학위를 받은 사람을 뜻한다. 석사 학위를 소지한 사람으로서 대학원에서 소정의 과정을 이수한 뒤 학위논문을 제출해야 받을 수 있는 학위인지라 대학교 졸업 이후 적어도 10년 정도는 부단히 노력해야만 비로소 ‘박사’라는 호칭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박사’ 앞에 존경의 의미가 담겨 있는 ‘명예’라는 단어가 따라붙으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본래 사회에 대한 공적에 탁월한 성품이 따라붙어야만 주어지는 ‘명예박사’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해당 대학 총장을 끌어줄 수 있는 정치권 인사나 수십억원대의 기부금을 쾌척할 수 있는 재벌 총수라면 특별한 노력 없이도 ‘명예박사’ 타이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모든 명예박사들을 한 묶음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그에 걸맞은 공적과 성품을 지닌 명예박사들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예박사 대부분이 해당 대학 또는 학과와 상관없는 정ㆍ재계 인사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지성의 전당인 상아탑에서 권력ㆍ금력을 위해 학위장사를 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주요 그룹 ‘회장님’들 중 명예박사는 누가 있으며 어떻게 학위를 받게 된 것일까.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자산순위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이 언제 어느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어떠한 경위로 해당 학위를 받게 됐는지 살펴봤다.

1993년 이후 명예박사 학위 남발

고등교육법 시행령 47조에 따르면 명예박사란 ‘학술발전에 특별한 공헌을 했거나 인류 문화의 향상에 특별한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학위논문과 관계없이 주는 학위이다. 1948년 서울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우리나라 명예박사 1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1949년 서울대에서 학위를 받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최초다.

원래 명예박사 학위를 주기 위해서는 대학원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교육부 장관의 승인까지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1993년 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명예박사 수여 승인권이 대학으로 넘어가며 몇 명에게 주겠다는 예정자 명단만 보고하게 됐다. 2000년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대학의 수여 예정자 명단 사전 보고 의무조차 사라지며 완전히 자율권을 누리게 됐다.

문제는 대학원과정에 대한 주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만든 대학원위원회를 통해 이뤄지는 명예박사 심사 방식이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대학원장과 보직교수들로 구성된 대학원위원회의 경우 총장, 이사장 등 해당 대학의 의사결정권자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나 대학이 재정상의 곤란을 겪을 때마다 명예박사 학위가 남발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총장 끌어주고, 건물 지어주고

2012년 국정감사에서 교육과학기술부를 통해 드러난 통계에 따르면 2008~2012년 국내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자는 907명에 이른다. 이 중 대다수는 정치인, 그룹 총수,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장 등이다. 학문적 성과가 없으면 명예박사가 될 수 없는 프랑스나 공직자에 대한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뇌물로 간주해 처벌하는 핀란드와는 비교된다.

역대 대통령들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여러 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그 취지가 의심스럽다는 데 있다. 해당 정치인이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과 어떠한 인연도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수여되는 분야도 정치와 전혀 상관없을 때가 많다. 명예박사가 된 정치인은 해당 대학의 인사들을 중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2005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명예경제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목포대의 경우를 꼽을 수 있다. 목포대에서 비호남 출신 인사로는 처음으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이 전 대통령은 그 사실을 한나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십분 활용, 호남의 인심을 끌어들였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을 천거했던 임동오 목포대 관광경영학 교수를 정책자문교수단장으로 임명하며 보답한 바 있다.

지역 대학들의 개발 관련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도 자주 논란이 된다. 김완주 전북지사(2007년 전북대 명예경제학박사, 2009년 군산대 명예행정학박사), 허남식 부산시장(2009년 부산대 명예경영학박사), 박준영 전남지사(2009년 목포대 명예경영학박사) 등이 재임 중 관내 대학에서 명예박사가 되며 구설을 낳았다.

재계 인사들의 경우, 대기업이 대학에 기부금을 쾌척한 때와 해당 그룹 총수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시기가 맞물리는 사례가 많다. 대학과 재계 인사가 명예박사 학위와 돈을 주고받았다고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1993년 한국외대에서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은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은 이듬해부터 대학발전기금 14억원을 냈고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은 전남대에서 2005년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은 지 2개월 만에 법대 연구동 건립에 10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 100년 동안 매년 1억원씩 기부하겠다는 약정서를 제출한 심영섭 우림건설 대표도 그새 12월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아 입방아에 오른 바 있다. 그 밖에도 명예박사 학위와 기부금을 맞바꿨다는 의혹을 받는 ‘회장님’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내외 3개 명문대 명예박사, 이건희 회장

물론 명예박사들 모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명시된 명예박사 학위의 수여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까닭에 판단하기 쉽지 않지만 사회공헌에 힘써왔다든지 특유의 경영관으로 학생들에게 인생철학을 가르쳐줬다든지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다면 국내 10대 그룹 총수 및 총수일가들은 어떠한 이유와 경위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을까?

삼성그룹의 경우 재계 1위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명예박사 학위가 많지 않은 편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국내외를 통틀어 3개 학교(2000년 서울대 명예경영학박사, 2005년 고려대 명예철학박사, 2010년 와세다대 명예법학박사)에서만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의 경우 이 회장이 해당 대학 출신의 성공한 기업가라는 점이 주요 자격요건으로 작용했다. 학위 수여식 당시 와세다대 측은 이 회장을 “1942년에 태어나 1965년 와세다대 제1상학부를 졸업했고 탁월한 선경지명과 리더십으로 삼성을 이끌어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서울대와 고려대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며 유쾌하지 못한 의심을 받기도 했다. 2000년 당시 재계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서울대 명예박사에 오른 이 회장은 삼성그룹이 2002년 대학발전기금으로 80억원을 기탁한 것이 알려지며 구설을 낳았다. 삼성그룹이 기부한 418억원으로 지은 ‘백주년 기념 삼성관’ 완공식을 며칠 앞두고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고려대에서는 무노조경영의 원칙을 지닌 이 회장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연좌시위로 학위 수여 장소까지 옮기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받은 학위는 1982년 미국 보스턴대에서 받은 명예경영학박사 학위가 유일하다. 이 창업주가 학위 수여식 기념강연에서 남긴 “삼성은 인재의 보고라는 말을 세간에서 자주 하는데 나에게 있어서 이 이상 즐거운 일은 없다”는 말은 삼성그룹의 인재중시경영을 대표하는 어구로 오랫동안 회자됐다.

정주영 명예회장, 재계 인사 중 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명예박사 학위와 첫 인연을 맺은 곳은 미국 코네티컷대(1989년 명예인문학박사)였다. 정 회장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년 동안 가졌던 코네티컷대 유학 시절 자동차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알려져 있다. 2002년에는 몽골과 한국 간의 자동차산업 및 경제교류 활성화에 공헌했다는 명목으로 몽골국립대에서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정 회장이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대학은 고려대(2003년 명예경영학박사)뿐이다. 부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1995년 고려대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 정 회장 부자는 10대 그룹 총수일가 중 유일하게 같은 대학에서 명예박사에 이름을 올린 부자가 됐다.

정 회장이 명예박사에 올랐을 당시 고려대가 밝힌 학위 수여 이유는 정 회장이 자동차 산업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점뿐이었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고려대가 2010년부터 450억원 규모의 ‘현대자동차경영관’을 짓고 있는 점을 지목,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이 쾌척한 200억원대의 기부금과 정 회장이 받은 명예박사학위와 연관 짓고 있는 모양새다.

정 명예회장은 1975년 경희대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 9개 대학(1976년 충남대 명예경제학박사, 1982년 조지워싱턴대 명예경영학박사, 1985년 연세대 명예경제학박사, 1986년 이화여대 명예문학박사, 1990년 서강대 명예정치학박사, 1995년 고려대 명에철학박사, 1995년 존스홉킨스대 명예인문학 박사, 2000년 한국체대 명예체육학박사)의 명예박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재계 인사 중 명예박사 학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것은 물론이고 전체적으로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2위다. 소학교 졸업이 정 명예회장 학력의 전부인 것을 감안하면 의미있는 결과다.

전남대에서 세 차례나 퇴짜맞은 정몽준 회장

현대중공업의 사실상 오너인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 또한 부친을 닮아 다수의 명예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정 의원이 명예박사로 있는 대학은 국내외를 포함해 총 8개(1998년 명지대 명예체육학박사, 1999년 메릴랜드대 명예법학박사, 2000년 뉴욕시립대 명예법학박사, 2000년 공주대 명예경영학 박사, 2002년 한국체대 명예이학박사, 2002년 고신대 명예보건학박사, 2011년 전주대 명예경영학박사, 2011년 강원대 명예경영학 박사)다. 재계 6위 그룹의 최대주주이자 집권여당의 전 대표, 그리고 전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한 까닭에 분야 또한 경영학, 체육학, 보건학 등 다양하다.

그러나 정 의원 또한 이건희 회장과 마찬가지로 명예박사 학위와 관련해 낯뜨거운 사건을 경험한 바 있다. 전남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예정돼있었으나 학생들의 반대로 세 차례(2007년, 2009년, 2011년)나 무산된 것이다. 당시 전남대 학생들은 5.18민주화운동 진압을 주도했던 신군부의 후신인 새누리당의 전 대표인 정 의원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5.18정신을 훼손하는 것이고 자본에 굴종하는 것이라며 대학 측에 거세게 항의했다.

젊은 총수 중 명예박사 별로 없어

기타 10대 그룹 총수 및 총수일가의 경우 명예박사 학위 수여자가 그리 많지는 않다. 특히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력으로 박사학위를 획득한 바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아예 명예박사 학위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10대 그룹에서는 현 총수들보다 선대회장들의 명예박사 비중이 오히려 높았다. 고 이병철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위시해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조중훈 한진그룹 명예회장, 고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고려대와 연세대에서 각각 1986년과 1999년, 경제학과 경영학으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중훈 회장은 1972년 대만중화학술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7년에는 루앙대에서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1995년에는 한국해양대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의 오너답게 명예항공경영학박사 학위만 두 개를 갖고 있어 눈에 띈다. 조 회장은 1998년과 2006년 각각 미국 엠브리리들항공대와 우크라이나국립항공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밖에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모교인 세인트루이스대에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서강대에서 각각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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