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품이 미래 성장동력현지 인기식 결합한 홍삼 대만서 40만병 판매 기염전통산업 여기던 식품산업 기술·아이디어 접목 대박한식 세계화 적극 나서야

지난 1973년 12월 당시 오리온 개발팀장이던 김용찬씨는 미국에 선진 제과기술을 공부하러 갔다가 서양의 '파이'를 알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곧바로 한국인 입맛에 맞도록 '마시멜로'에 비스킷을 얹어 그 위에 초콜릿을 뒤집어씌운 '초코파이'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그러나 마시멜로의 수분이 많아지면서 위에 덮인 초콜릿이 점점 녹는 현상이 생겨 난관에 처했다. 개발팀은 수분함량이 다른 초코파이를 수천개 시도해본 끝에 최적의 수분함량이 12%라는 것을 알아내 초코파이를 탄생시켰다.

1970년대 이 같은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통해 '국민간식'이라는 신시장을 창출한 초코파이는 1993년 중국 베이징사무소를 개설하면서 해외시장도 처음 노크했다. 중국에서 고급 과자로 자리잡는 데 성공한 초코파이는 급기야 2009년 해외매출이 국내매출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해외매출이 1조1,697억원을 기록하면서 국내 식품업계에서 최초로 중국매출 1조원을 달성하는 새로운 역사까지 썼다.

혁신기술ㆍ현지문화 융합

식품은 과학이다. 초코파이 신화를 만들어낸 오리온처럼 혁신기술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국내 식품업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창의력ㆍ창조경제ㆍ혁신 등은 흔히 과학기술ㆍ정보통신기술(ICT) 등 첨단산업만의 전유물로 여겨져왔지만 실상은 전통적 내수ㆍ사양산업으로 취급되던 식품산업이 최첨단 기술로 무장해 미래를 이끌어갈 진정한 먹거리로 변신하는 순간을 맞은 것이다.

장순홍 KAIST 석좌교수는 "사양산업이란 없으며 어떠한 산업이라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발상의 전환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면 블루오션의 창조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지문화와의 융합으로 이전에 없던 새 시장을 창출한 사례도 눈에 띈다. 한식의 정통성에 '현지문화'라는 새 옷을 입힌 CJ푸드빌의 글로벌 한식 브랜드 '비비고'는 각 나라에서 차별화된 모습을 갖고 있다. 채소와 밥을 고추장에 넣고 비비는 천편일률적 메뉴에서 벗어나 네 가지 밥과 여섯 가지 토핑, 네 가지 소스를 고객이 각자 기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기본 콘셉트다. 여기에 각 나라별 음식을 재해석해 비비고 제품과 버무렸다.

지난해 문을 연 영국 소호점에서는 영국인들이 와플을 즐긴다는 점에 착안해 '붕어빵'에서 콘셉트를 따온 레드빈(팥) 와플 '비비고 골드피시'를 내놓았다. 미국에서는 스테이크를 올려 비벼 먹도록 만든 '스테이크 비빔밥'을 선보였고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채소인 브로콜리를 비빔밥 나물로 활용하고 있다.

이승훈 CJ경영연구소장은 "비비고 비빔밥은 한식 세계화라는 창의적 콘셉트로 국내 기업들이 미처 진입하지 못했던 글로벌 외식시장을 새롭게 일궈냈다"며 "더욱이 청년인력의 국내외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 기여해 선순환적 창조생태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하다"고 평가했다.

정관장 브랜드로 홍삼을 생산하는 KGC인삼공사는 현지 소비자를 겨냥한 맞춤형 제품 개발로 한국의 홍삼을 세계적인 식품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2월 미국시장에서는 고농축 에너지드링크 시장의 성장세에 맞춰 6년근 홍삼에 천연생약제를 기반으로 씁쓸한 맛을 없앤 에너지드링크 '지-샷'을 개발했다. 해외 수출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화권 소비자들을 위해서는 대만에서 가장 인기 높은 건강기능 식품 '계정'을 홍삼과 결합해 '홍삼계정'을 개발했는데 2011년 말 출시 이후 현재까지 40만병이 팔려 나갔다.

도전정신으로 해외 개척

창조경제의 대표적 국가로 꼽히는 이스라엘의 성공비결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과 용기를 뜻하는 '후츠파 정신'이 회자된다. 후츠파 정신이야말로 창조경제 기업가정신의 근간이자 원동력이다.

이 후츠파 정신으로 똘똘 뭉쳐 해외시장을 개척한 곳은 농심이다. 농심은 '신라면'을 앞세워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계 곳곳에 한국의 매운맛을 전파하고 있다. 신라면은 1986년 출시 이후 해외진출이 여의치 않아 10년 넘게 고전하다 1998년 간신히 글로벌 매출이 2,000만달러를 기록하더니 이때부터 가속도가 붙기 시작해 14년의 세월을 거쳐 지난해 2억달러로 10배로 성장했다. 5월 신라면컵에 이어 신라면블랙컵이 지구촌 명소인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 팔리게 됐고 지난달에는 세계 최대 항공사인 미국 아메리칸항공의 기내식으로 채택됐다.

한국 문화의 글로벌화는 무궁무진한 일자리 창출, 국가위상 제고 등의 결과를 낸다는 점에서 창조경제의 필수요소다.

정부·기업·연구소 힘 합쳐야

전문가들은 정부의 아낌없는 투자, 기업의 적극적인 세계시장 공략, 연구소 및 대학의 기술연구 등 이종산업 간 융합이 삼위일체를 이뤄야 창조경제의 신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성공과 실패 여부에 급급하지 않은 '묻지마 투자'로 고부가가치 제품과 혁신기술의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며 기업은 이미 포화된 국내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려 글로벌시장을 공략할 아이템을 찾는 '응용연구'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또 연구소나 대학은 세계적 트렌드를 분석해 경제성 있는 제품이나 기술을 만들어 기업에 제공하는 선순환 생태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논리다.

신동화 한국식품안전협회장은 "지속적인 시장조사로 시장의 변화를 파악하고 혁신적인 제품 개발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며 "특히 건강ㆍ웰빙ㆍ편의성을 원하는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고부가가치 기능성 식품 등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식세계화 사업과 전통식품 발굴 및 육성을 위한 전략적 접근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남순 배화여대 식품영양학 교수는 "꼭 해외로만 진출하는 것이 아닌 한국으로 유인하는 전략도 모색해야 한다"며 "전통음식 문화와 그 지역의 문화자원, 지역관광을 연계한 6차 산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심희정기자 yvett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