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상생’, 뒤로는 중소기업 ‘뒤통수’

지난해말 KT 윤리경영실과 이석채 KT 회장 앞으로 진정서가 날아들었다. 발신자는 KT와 협력관계를 맺어온 한 중소기업. KT의 경비보안 관련 계열사인 KT텔레캅이 자신들이 독자개발한 프로그램을 10여년간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급기야 최근에는 경찰 고발로까지 번졌다. 이 회장의 지휘 아래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KT로선 대단히 불편한 대목. 특히 중소기업 기술 도용에 대해 강한 척결 의지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독자 프로그램 복제해 사용

문제의 회사는 비경시스템. 1996년 설립돼 18년간 무인경비분야 보안장비와 시스템의 개발 및 제조 전문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는 특히 KT 자회사 KT텔레캅의 무인경비 사업 초기부터 10여년 이상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관련 장비를 개발ㆍ생산해 왔다.

그러던 2001년 비경시스템은 로컬관제프로그램을 개발해 KT텔레캅에 제안했다. 이는 아파트나 빌라, 빌딩 등의 입주자들이 직접 상황을 모니터링하거나, 중앙관제와는 별도로 출동요원이 상주하며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개발된 관제시스템이다.

이후 비경시스템은 이 프로그램과 관련된 소프트웨어인 ‘안전평등’을 KT텔레캅에 납품하기 위해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개의 견본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했다. 그러나 이후 정식 상품 등록이나 단가계약은 없었다.

당시 비경시스템은 KT텔레캅이 해당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비경시스템은 최근 KT텔레캅이 동의 없이 견본제품을 복제 해 전국 아파트와 주요 건물 146곳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해결의지 보이지 않아 고소

비경시스템에 따르면 프로그램 개당 기본 가격은 500만원에 육박한다. 이를 감안하면 KT는 약 7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취한 셈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KT와 KT텔레캅의 관련부서 및 윤리경영실에 호소했다. 심지어는 KT텔레캅 사장과 이석채 KT 회장과 독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KT는 적극적인 해결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비경시스템은 지난 1월 KT텔레캅을 구로경찰서에 형사고소했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지난 6월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 상태다.

경찰 대질 신문 당시 KT텔레캅 측은 “모두 146곳에서 프로그램을 사용 중이고 100건은 프로그램만 사용하고 있으므로 복제”라면서도 “46건은 장비를 구입할 때 딸려 들어온 프로그램인줄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런 진술에 대해 비경시스템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최초 장비 판매 당시 ‘안전평등’이 무료 프로그램이라는 언급을 한 적이 전혀 없었다”며 “2002년 최초 2건의 프로그램 구입 시에도 KT텔레캅에서 비용을 지불했다”고 말했다.

KT텔레캅은 해당 프로그램의 공동명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비경시스템과 2001년 채결한 양해각서엔 해당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해 공동소유라고 명시돼 있다”며 “그동안 문제없이 프로그램을 사용해 왔고 비경시스템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경시스템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양해각서의 제5조와 제6조에 따라 KT텔레캅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해각서 제5조엔 기술개발을 진행하는 데 있어 비용이 소요되면 상호협의 하여 비용을 분담한다고 명시돼 있다.

비경시스템 관계자는 “KT텔레캅은 양해각서를 근거로 공동 소유를 주장하면서도 10여년 이상 제품을 사용하면서 기술개발비는커녕 제품을 정식으로 구입하지도 않았다”며 “투자비용은 한 푼도 안내면서 소유만 공동이라는 주장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또 양해각서 제6조엔 “비용이 지출된 결과물에 관한 관리는 ‘을’(비경시스템)이 담당한다”로 돼 있다. 여기에 견본제품을 팔 때 불법복제를 하지 않겠다는 KT텔레캅의 확인 사인도 양사가 1부씩 보관하고 있다.

비경시스템 관계자는 “이런 상황임에도 KT텔레캅은 협력업체 모르게 10년 이상 프로그램을 무단으로 대량 복제해 사용해 왔다”며 “향후 발생될 모든 거래와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상생 외침 ‘공염불’

KT는 현재 중소기업과 동반성장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특히 2010년엔 ‘3불(不) 정책’을 발표했다. ‘중소기업의 자원이 KT로 인해 낭비되지 않게 하겠다’, ‘기술개발 아이디어를 가로채지 않겠다’, ‘중소기업과 경쟁환경을 조성하지 않겠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KT텔레캅의 이번 행태로 KT가 외쳐온 상생의 외침은 공염불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과의 상생이 중요시되는 최근 사회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번 일은 KT에겐 상당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향후 KT텔레캅의 대응에 세간의 시선이 주목되고 있다.

한편, 비경시스템은 이외에 또다른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서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상태다. 구체적인 내용은 ▦자사의 구매 시스템을 핑계로 재고비용을 협력사에 떠넘기는 구매 행태 ▦신규 개발에 따른 비용과 위험부담을 협력사에 떠넘기는 개발 행태 ▦자체 개발한 제품에서 설계상의 문제로 발생된 보완비용을 위탁 생산 업체에 떠넘기는 행태 ▦3년 전 상품화 제품 대금 미지급 등이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