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국정조사 좌초 위기… 각종 호재 못살리고 친노는 딴 목소리 계속리더십 한계 지적 잇따라… 2014년 지방선거 결과 따라 조기 낙마 가능성도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14일 서울시청광장 임시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왕태석기자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리더십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아직 집안정리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대선 때는 신파와 구파가 나뉘어져 신경전을 벌인 끝에 결국 대권을 거머쥐는데 실패했고, 현재는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 핵심부의 통제가 민주당 전반에 미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귀태'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홍익표 전 원내대변인과 박근혜 대통령을 '당신'으로 칭한 이해찬 당 상임고문 등 친노무현계 인사들의 잇단 발언 파문으로 당이 곤혹스런 처지에 몰리는 것은 예삿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일부 인사가 실언으로 당의 이미지를 훼손해도 김 대표 체제는 이를 강력히 통제할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야권에서는 민주당이 이슈 생산에만 급급할 뿐 지향점이 분명치 않아 내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슈 생산은 상대편에 타격을 줄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역풍을 감당해야 하고 그때 내부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정쟁의 산으로 가는 민주당

민주당 안팎에서는 지도부의 통제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대 현안인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는 김현·진선미 의원의 특위 위원직 사퇴 여부를 놓고 당 내부 의견이 엇갈리면서 혼란이 반복되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 7월 15일 개최한 최고위원·중진(4선 이상) 연석회의에서 이 같은 문제가 본격화 됐다. 이날 모임에는 정세균·문희상 전 대표 등 4선 이상 민주당 중진 의원 10명이 참석했다. 당시 각종 현안에 대처하는 김 대표의 리더십을 놓고 우려와 조언이 쏟아졌다.

중진 의원들은 "대외적으로 마치 당 지도부가 흔들리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며 "내부적으로 소통을 원활하게 해서 지도부에 보다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김관영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또 "(당내 일부 인사들의) 개별 발언이나 행동을 자제시키고 지도부가 필요한 경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해당 인사에 대해) 경고 조치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김 수석대변인은 밝힌 바 있다.

김 대표가 지난 12일 취임 100일을 맞은 때에도 리더십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지난 5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당선된 김 대표를 두고 당 주변에서는 "127명의 민주당 국회의원은 당대표를 중심으로 결속되지 않고 당내 다수파인 범친노·구주류 세력은 국정원·NLL 정국에서 사실상 '이중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에 당내 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서 김 대표가 조기에 낙마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김 대표는 100일째 되는 아직까지 당대표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그런 상황을 정리할 결단력과 추진력도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 대표가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는 배경에 지난해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거론된다.

문 의원은 지난 6월 16일 자신의 대선캠프를 출입했던 기자들과 북한산 산행모임에서 "현재 우리(민주당) 당원은 불과 몇 만 명이고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어 '당원중심'이면 일반 국민들 의사와는 동떨어질 위험성이 많이 있다"며 김 대표의 이른바 '당원중심노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문 의원은 또 지난 6월 21일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녹음테이프 등 녹취자료, 준비과정에서의 자료, 회담 이후 각종 보고자료 등을 모두 공개하자"고 제안해, 당일 오전 김 대표가 밝힌 '선 국정원 국정조사, 후 대화록 공개' 원칙을 일방적으로 뒤집었다. 김 대표가 당혹해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문 의원의 이 같은 행동을 계기로 당내 다수파인 범친노 진영에서는 독자 행동 기류가 퍼졌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과 대화록 실종 등 정국을 흔들고 있는 대형 사건을 대처하는 과정에서도 범친노 진영의 독단적 강경대응이 이어졌다. △권영세 녹취록 폭로 △국정원 국조특위 사실상 단독 운행 △대화록 실종과 관련한 정보 독점 등으로 김 대표의 지도력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따로 노는 친노 분열 씨앗되나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NLL 정국에서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지도부에 보고나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했다"며 "일이 안 풀리거나 잘못되면 지도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식"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김 대표가 쉽게 힘을 얻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민주당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당 의원들은 잇따른 총선·대선패배의 영향으로 정권교체보다 자신의 재선, 3선에 더 관심이 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다음 총선에서 누가 공천권을 갖느냐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김 대표는 다음 총선에서 자신조차 공천이 불확실하다. 따라서 현재 127명의 민주당 의원 가운데 김 대표의 측근 의원과 비노성향 의원을 제외한 다수의 의원들은 김 대표 체제에 큰 이해관계가 없다. 여기에 비례대표 의원과 다수의 지역구 의원들은 지난 총선에서 한명숙 전 대표와 친노진영의 직간접적인 지원으로 당선돼 범친노의 세력권 아래 있어 김 대표의 지도력은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당장 진행하고 있는 장외투쟁을 어떤 식으로 성과를 낼지가 관건이다. 정기국회와 10월 재보선 정국을 돌파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는 결과에 따라 김 대표의 거취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호남과 수도권에서 일정한 성과를 못 내면 조기 낙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내에서는 이미 일부 유력 중진의원을 중심으로 김 대표 낙마에 대비한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또 최근에는 국회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가 좌초 위기에 빠지면서 김 대표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이 순순히 청문회에 협조하지 않을 기세다. 민주당은 원 전 원장보다 김 전 청장의 입을 통해 결정적인 한방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김 전 청장의 일관된 태도로 난항을 겪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국조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면 김 대표 체제는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그동안 존재감이 작아지는 듯 했던 무소속 안철수 의원(51)이 현안들에 대해 거의 실시간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 속에 최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까지 이탈하자 다급해진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안 의원은 지난 14일 오후 9시50분쯤 남북 당국 간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에 대해 자료를 내고 "오랜만에 단비 같은 소식"이라며 "개성공단 조업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 타결을 환영하고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인내와 노고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북한 태도도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한다"고 했다.

개성공단 회담 타결 발표가 나온 지 2시간40분 만으로 그로선 매우 발 빠른 대응이었다.

국가정보원 국정조사에는 "원세훈, 김용판 두 증인은 청문회에 나와서 국민의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두 증인의 불출석 사유에 대해선 "핑계치고 너무나 군색하다"고 비판했다.

트위터를 통해서는 전날 서울광장에서 어버이연합에 폭행을 당한 민주당 전순옥 의원에 대한 걱정을 표했다. 안 의원은 "입원 중인 전 의원께선 아직도 육체적, 정신적 충격이 커 전화통화도 힘드시다 하신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안 의원은 전날 세법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정부의 세법개정안 수정안이 나온 지 7시간 만이다.

안 의원은 "(이번 일은) 여당의 무지와 전형적인 관료주의 탁상행정이 만들어낸 폐해"라며 "여권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은 세제개편안 재검토 지시에 앞서 솔직하게 국민 앞에 사과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안 의원이 주요 현안에 대해 시시각각 독립적인 목소리를 낸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