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된 차명거래 문제금융실명제 시행 20년째 음성ㆍ불로소득 여전차명계좌 이용한 비자금↑… 개정안도 미흡한 점 많아사전등록제 도입해야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지만 차명계좌를 이용한 음성ㆍ불법적인 금융거래가 여전히 문제시되고 있다. 사진은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실시 관련 특별담화문을 발표한 김영삼 전 대통령. 주간한국 자료사진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집니다."

20년 전인 1993년 8월 12일, 임시 국무회의 직후 열린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이뤄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발표로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됐다. 1982년 '장영자ㆍ이철희 어음사기사건'이라는 대형 금융사건이 터지며 처음으로 논의된 금융실명제가 1983년 '7.3조치'를 통해 그 방법이 공식적으로 거론된 이후 많은 논의와 시행착오를 거쳐오다 10년 만에 실시된 것이다.

금융거래의 정상화를 통해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나아가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금융실명제이지만 지난 20년간 장밋빛 성공만을 이룬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강조하고 나설만큼 여전히 음성ㆍ불로소득이 널리 퍼져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최근에는 정ㆍ재계 인사들의 차명계좌를 이용한 비자금사건이 불거지며 금융실명제법 개정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이에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실명제 20년의 성과와 과제' 보고서를 통해 향후 금융거래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봤다.

차명거래 규제 목소리 커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고 20년 동안 가명ㆍ무기명 거래가 전면 금지됨으로써 불법자금원의 추적이 가능해졌다. 그로 인해 거래 투명성이 제고되고 거래가 활성 금융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 정ㆍ재계 인사들이 차명계좌를 이용, 비자금을 조성하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적발되는 일이 늘어나며 금융실명제법의 개정이 요구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차명거래의 전면금지와 행사적 제재를 담은 개정안이 제출됐으며 이를 계기로 차명거래 규제에 관한 논의가 다시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차명거래는 금융거래의 명의인과 자금 출연인이 서로 상이한 경우를 뜻한다. 그 중 동기가 불순한 범죄형 차명거래 규제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가 상당 부분 진척된 바 있다. 그러나 정보비대칭성으로 인해 잘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선의와 악의가 섞여 있는 차명거래의 특성상 규제방안을 마련하는데 큰 진전을 보진 못했다.

개정안 의의 적지 않아

차명거래는 현행법상으로 금지돼 있다. 금융실명제법 제3조 1항에는 "금융기관은 거래자의 실지명의에 의하여 금융거래랄 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고 유권해석 또한 금융기관의 차명거래 직접 관여 및 알선ㆍ중재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고객이 실명확인의무를 갖지 않으며 또한 처벌의 대상도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기관은 처벌하면서 고객은 처벌하지 않는 점 때문에 범죄에 활용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고객은 차명거래의 처벌대상에서 제외돼 있을까. 김자봉 연구위원은 ▦범죄행위와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은 차명거래에 대해 추측된 의도를 근거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점 ▦예금계약 당사자 중 하나인 금융기관을 처벌하도록 하면 차명예금은 없어질 수 있다는 점 ▦설령 개인을 처벌대상으로 하더라도 정보비대칭성으로 인해 차명여부가 관측되지 않으므로 사전적인 실효성이 없다는 점 ▦차명으로 이뤄진 계약이 행위의 결과에 따라 악의로 판명되면 해당 개별법에 의해 처벌된다는 점 ▦다수의 많은 차명거래는 선의의며 이들을 모두 금지할 경우 소비자의 불만이 증폭될 것이라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이에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도 차명거래의 고객을 집중 타깃으로 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실명거래책임을 실거래자에게도 부과하고 위반 시 형사적 제재를 가한다. 둘째, 차명을 무효화하여 실권리자의 반환청구권을 불인정하고 증여 의제한다. 셋째, 금감원장 및 국세청장에게 조사권을 부여하여 적발 시 출연인과 명의인에게 과징금을 부과한다. 넷째, 위법한 목적 없이 불가피한 경우, 그리고 재산은닉, 자금세탁, 세금포탈 등이 아닌 경우에는 차명거래를 허용한다.

그러나 김 연구위원은 ▦실명거래책임을 부과하더라도 차명거래여부는 여전히 쉽게 관측되지 않는 점 ▦모든 차명거래가 무효화되면서 명의인의 자산으로 의제되는 경우 출연금이 범죄수익 또는 부당이익이라도 몰수할 수가 없게 되는 점 ▦악의 여부도 판명되지 않은 차명거래 자체를 조사권 대상으로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 ▦많은 선의의 유형 중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해당 개정안의 실효성 자체를 문제 삼았다.

차명거래 사전등록제도가 유효

이에 김자봉 연구위원은 인센티브적 요소가 포함된 차명거래 사전등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사전등록제도가 시행되면 선의의 차명거래 중 대부분은 등록될 것인데 이들만을 재산권 보호의 대상 및 보이스피싱법과 소비자보호법상의 소비자피해구제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럴 경우 등록되지 않은 차명거래는 자기 부담 하에 차명거래를 지속하게 되거나 자연소멸될 것이다. 악의 차명거래는 적발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대상이 되도록 하며 등록된 차명거래의 경우에도 악의의 행위에 연루되면 마찬가지의 제재를 가하면 된다.

차명거래 사전등록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유권해석 및 사법해석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많은 선의의 차명거래를 제도권으로 흡수, 체계적인 보호와 관리 대상이 되게 하고 악의의 차명거래는 명시적인 처벌대상이 되게 한다는 점이다. 또한 가족, 종중 등 유형에 따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이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김 연구위원은 만약 차명거래 사전등록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다양한 법률과의 유기적 협력체제가 적절히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다양한 개별법이 경제범죄 처벌을 정하고 있지만 차명거래를 이용한 범죄행위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처벌규정을 보다 명시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