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개점한 '박승직상점'이 두산 모태… 1952년 OB맥주 설립경방 전신 경성방직, 최초 주식회사… 삼성, 1938년 삼성상회로 출발

두산
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00년 여성 80.5세, 남성 71.3세에서 지난해 여성 84세, 남성 77.3세로 각각 증가했다. 의학계에서는 '100세 장수시대'가 그리 멀지 않았다고 예측하고 있다.

반면 기업들은 수명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은 근대 기업의 출발이 늦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업 수명이 너무 짧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내 1,0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27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국내 '장수기업'들은 얼마나 있을까. <주간한국>은 한국전쟁이라는 한국 기업 최악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칠순(七旬ㆍ70세)잔치를 벌인 기업들 가운데 보유자산이 3,000억원 이상인 곳의 면면을 공개한다.

ㆍ동화약품 100세 이상

국내 최고(最古) 기업은 이다. 올해 117세로 상수(上壽ㆍ100세)를 누렸다. 1995년 한국기네스협회에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런 의 모태는 창업주인 박승직씨가 1896년 서울 종로에 개점한 '박승직상점'이다.

경방
1952년 주류회사인 OB맥주를 설립한 뒤 사명을 산업으로 개명, 무역업을 시작하면서 사세를 크게 불려나갔다. 1960~70년대에는 동양맥주, 동산토건, 한양식품 등을 잇달아 인수ㆍ설립하며 소비재 산업, 무역업, 건설업 등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1996년 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당시 3조3,000억 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25조8,0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뤘다.

동화약품도 과 더불어 100세를 넘긴 기업이다. 1987년 태어나 올해로 116세가 됐다. 보다 한 살 어린 셈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유일하게 일업백년(一業百年)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 동화약품을 국내 최장수 기업으로 꼽는 이유다.

동화약품의 시초는 한말 궁중의 선전관이었던 노천 민병호 선생이 만든 '활명수'다. 민 선생의 아들인 민강 사장은 동화약방을 창업했다. 1910년 통감부에 '부채표'와 '활명수'를 상표등록한 동화약품은 이후 본격적인 제약사의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생산공장이 완전히 파괴되는 등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협력단(ICA)의 지원을 받아 재기에 나섰다. 결국 옛 명성을 되찾은 동화약방은 1962년 동화약품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한 뒤 발전을 거듭하며 굴지의 제약기업으로 성장했다.

유한양행
1897년 국내 최초의 민간 상업은행으로 설립된 조흥은행은 올해 116살로 동화약품과 동갑이고, 1899년 문을 연 상업은행은 올해 114살이 됐다. 그러나 조흥은행은 2006년 신한은행에 인수됐고, 상업은행은 1999년 우리은행에 합병됐다.

ㆍ메리츠화재 90세 넘어

은 올해 94살로 졸수(卒壽ㆍ90세)를 넘긴 기업 중 맏형이다. 일제시대 대표적 기업가인 김성수 선생이 1919년 설립한 경성방직이 모태다. 3ㆍ1운동 직후 김 선생이 전국을 돌며 각 지방의 유지들로부터 자본금을 마련해 세운 경성방직은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다.

1970년 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1990년대 어패럴과 유통, 필백화점 등을 세우며 사업을 다각화했다. 2009년에는 서울 영등포 에 초대형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를 개장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보험회사인 메리츠화재도 90대다. 1922년 세워져 올해로 91살이 됐다. 설립 당시 사명은 '조선화재'였으며, 광복 이후인 1950년 '동양화재'로 변경됐다. 당시 대주주는 이화학당이었다.

이후 1962년 강의수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창업주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3년 삼성그룹 계열에 편입됐다. 이후 1967년 한진그룹에 매각됐다 2005년 계열분리되면서 '메리츠화재'로 사명을 변경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삼양사ㆍ 등 80대 기업

1924년에 설립된 삼양사는 미수(米壽ㆍ88세)를 이제 갓 1년 넘긴 89살이다. 80대 중에선 최고령이다. 일본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 국내 농지들을 수탈하던 시절 김연수 창업주가 호남 일대 토지를 모아 세운 기업형 농장인 삼수사가 삼양사의 전신이다.

창업 8년째인 1931년 삼수사는 삼양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그리고 5년 뒤인 1936년부터 만주일대에 조선 농민들을 이주시켜 개간사업을 벌이고 1939년에는 만주에 '남만방적'을 세웠다. 남만방적은 최초의 국외 공장으로 기록됐다.

1955년 제당사업과 1969년 화학섬유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제당사업과 화학섬유사업은 1970년대 삼양사를 굳건한 반석 위에 세운 양대 축이 됐다. 이후 삼양사는 1990년대 사업구조 고도화를 거쳐 1999년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선정됐다.

은 1926년에 태어나 삼양사보다 2살 연하다. 일제 치하에서 보건문제로 고통받던 국민들을 위해 유일한 창업주가 설립했다. 당시 서재필 박사가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며 선물한 버드나무 목각화가 의 상징이 됐다.

당초 은 의약품과 각종 위생용품을 수입해서 팔았다. 수입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경기 부천에 제약공장을 세우고 세계적인 화학자를 초빙해 제약기술을 연구한 결과 질 좋은 국내 의약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이후 은 성장을 거듭했다. 1936년 자본금 75만원의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생산활동이 아예 멈췄던 한국전쟁 전후 4년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또 1962년 상장한 이후 단 한 해도 흑자 배당을 쉬지 않았다.

올해 83세를 맞은 CJ대한통운의 모태는 1930년 세워진 조선미곡창고이다. 설립 당시 부산과 인천, 목포, 군산 등에 지점을 두고 창고보관과 하역업을 맡았다. 1950년 한국미곡창고로 사명을 바꾼 후 비료와 양곡 등의 보관 및 수송 업무를 대행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산업 기반 시설 기자재 운송에 주력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 국제행사의 전담물류기업으로 선정됐다. 1990년대엔 전담업체로 활약했고, 1993년부터 택배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회사정리절차가 시작됐다. 2008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거쳐 2011년 CJ그룹 계열사에 편입돼 지난 4월 CJ GLS와 통합됐다. 현재 대한통운은 국내 최대 일시수송능력을 보유한 회사이자 생활물류인 택배부문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2011년 공식 출범한 회사다. 하이트맥주가 소주생산업체 진로를 인수한 이후 세운 기업이다. 아직 2살에 불과한 나이다. 그러나 하이트진로의 전신인 하이트맥주(80세)와 진로(89세)는 모두 장수기업으로 분류되는 회사다.

진로는 1924년 장학엽씨가 평안남도 용강군에 세운 '진천양조상회'로 출발했다. 진로 소주의 오랜 상징은 '두꺼비'다. 1954년 처음 상표로 쓰이기 시작했다. 진로는 1970년 당시 국내 소주 시장을 석권하던 삼학소주를 제치고 국내 소주시장 1위가 됐다.

또다른 전신인 하이트맥주는 일본의 대일본맥주주식회사가 1933년 '조선맥주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국내 최초의 맥주회사다. 80세 이상 기업 중에선 막내다. 해방 후 크라운맥주를 거쳐 1998년 하이트맥주로 사명을 전환했다.

금호전기ㆍ한진중공업 등 70대

이밖에 70세를 넘긴 기업들은 금호전기(1935년·78세), 한진중공업(1937년·76세), 삼성물산(1938년·75세), 대림산업(1939년·74세), 일동제약(1941년·72세), 한국타이어(1941년·72세) 등이 있다.

먼저 '번개표' 상표로 유명한 금호전기의 전신은 1935년 세워진 소규모 수도 계량기 생산업체 청엽제작소다. 1945년 대한금속계기사로 법인전환했다. 197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편입, 2년 뒤인 1978년 금호전기로 사명을 변경했다.

한진중공업의 모태는 국내 최초의 조선소인 영도조선소다. 2007년 필리핀에 70만평 규모의 조선소를 건설해 현재 두 개의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건설사업도 벌이고 있다. 현재 한진중공업그룹의 주력업체로 자리 잡았다.

삼성물산의 모태는 이병철 창업주가 세운 삼성상회다. 1952년 삼성물산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75년 국내 최초로 종합무역상사 1호로 지정받았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내의 중요한 해외무역창구로, 모든 상품의 수출입을 맡고 있다.

대림산업은 건설자재 판매상인 '부림상회'로 시작했다. 이후 1947년 대림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대림산업은 한국 경제성장의 상징적인 건축과 기반시설을 탄생시킨 기업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국회의사당, 잠실주경기장이 대림산업의 손을 거쳤다.

활성지속성 비타민 '아로나민'으로 유명한 일동제약의 전신은 윤용구 창업주가 세운 극동제약으로 1942년 지금의 상호로 바꿨다. 한국타이어는 조선다이야공업으로 태어나 한국다이야제조와 한국타이어제조를 거쳐 1999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