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의식주' 종합기업 도약테마파크 등 레저 노하우 접목아웃도어·패스트 패션 등 새로운 시너지 창출제일모직 2조 사업 포기… 전자소재 전문 탈바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오른쪽)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지난해 말 호암아트홀에서 이건희 회장 취임 25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함께 나오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제일모직 패션 사업이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손을 떠나 언니인 이부진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의 품으로 옮겨가게 됨으로써 삼성에버랜드는 기존 건설과 식품을 포함해 '의식주' 관련 사업을 모두 운영하는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하게 됐다.

또한 제일모직은 전자소재사업 중심의 회사로 탈바꿈하게 됐다. 제일모직은 최근 독일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업체인 노바엘이디를 인수하면서 소재사업 영역을 넓혔고 이번 패션사업 양도로 '글로벌 초일류 소재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재확인했다.

단숨에 연매출 5조원 육박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의 패션사업 인수를 통해 입고 먹고 주거하는 이른바 '의식주' 관련사업을 모두 거느린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삼성에버랜드는 현재 건축ㆍ토목ㆍ조경 및 부동산업을 주관하는 E&A사업부와 식자재 유통 및 급식사업을 담당하는 FC사업부, 테마파크와 골프장을 운영하는 레저사업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패션사업이 새로 더해질 경우 삼성에버랜드는 말 그대로 '의식주'와 관련된 사업을 모두 보유한 거대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삼성에버랜드는 패션사업 인수를 계기로 제일모직이 보유한 글로벌 디자인 역량을 기존 사업에 접목함으로써 사업의 질적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삼성에버랜드가 테마파크와 골프장 운영 등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성공적으로 결합하면 아웃도어ㆍ스포츠ㆍ패스트패션 등 성장성이 높은 분야에서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주화 제일모직 패션사업총괄사장은 "패션은 무엇보다 소프트 경쟁력이 중요한 사업"이라며 "리조트와 레저사업 등을 통해 소프트 경쟁력을 확보한 삼성에버랜드가 패션사업을 맡게 돼 앞으로 더욱 큰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것"이라면서 높은 기대감을 표했다.

아울러 삼성에버랜드는 기업 규모 역시 지난해 기준 3조500억원의 기존 매출에 1조7,000억원 안팎의 패션사업이 새로 가세하면서 단숨에 연 매출 5조원에 육박하는 기업으로 올라서게 된다.

제일모직은 이번 패션사업 양도를 통해 첨단소재 전문기업으로 입지를 굳히게 됐다.

사실 제일모직은 이미 패션 중심의 기업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1990년대 화학사업, 2000년대 전자재료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패션'보다 '소재'를 개발하는 데 더 주력해왔다. 20년간 첨단소재 사업에 집중 투자한 덕분에 제일모직에서 화학과 전자재료 등 소재사업이 차지하는 매출비중은 지난해 70%를 넘어섰을 정도로 커졌다. 이에 비해 1980년대 제일모직의 주력사업이었던 패션사업의 매출비중은 30% 이하로 줄어들었다.

제일모직이 패션사업을 에버랜드에 양도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패션사업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지만 이를 포기하고 기업의 역량을 한 곳으로 집중해 2조원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경영진의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패션부문 이서현 계속 맡을 듯

이에 따라 삼성 3세 간의 역할 및 후계구도 변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삼성가(家) 3세는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 부문을 맡고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겸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이 호텔신라와 에버랜드 등 서비스 부문을,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ㆍ제일기획 부사장이 패션과 광고를 각각 담당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번 제일모직의 패션 사업 양도로 이 같은 구조에 일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가장 큰 관심은 그동안 공을 들인 패션 사업을 에버랜드에 넘긴 이 부사장의 거취 문제다.

서울예고와 미국 파슨스디자인학교를 졸업한 이 부사장은 2002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이래 패션 전문가로서 패션 사업의 성장을 진두지휘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패션 사업이 오는 12월 에버랜드로 넘어가더라도 이 부사장이 패션 사업을 계속 이끌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제일모직이 소재사업부와 패션사업부를 별도로 나눠 운영하는 것처럼 에버랜드도 새로 인수한 패션 사업을 별도의 사업부로 두고 이 부사장이 이를 총괄하는 방식이다.

이 사장도 2009년 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을 맡은 후 에버랜드의 체질 변화에 주력해온 만큼 경영전략담당 사장으로서 전체 사업을 계속 총괄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아울러 제일모직이 소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가운데 그룹 전체의 소재 사업을 누가 총괄할지도 관심사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재 삼성의 완제품과 부품은 세계 1등의 자리에 올랐지만 소재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이에 제일모직이 패션 사업을 떼어 내고 소재 사업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도 지난해 말 "삼성의 5년, 10년 후를 책임지기 위한 소재 사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소재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현재 제일모직 외에도 삼성토탈ㆍ삼성정밀화학 등 화학 계열사들이 신사업으로 소재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단 이 부사장이 소재 전문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한 제일모직을 필두로 그룹 내 소재 사업을 총괄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다만 소재 분야는 대부분 삼성전자에 공급되는 구조라 전자를 총괄하는 이 부회장의 역할도 주목된다.

한편 패션 사업 인수로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에버랜드의 덩치가 더욱 커졌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에버랜드의 경영전략은 이 사장이 맡고 있지만 최대주주는 지분 25.1%를 보유한 이 부회장이다. 이어 KCC가 17%, 이 사장과 이 부사장이 각각 8.37%를 보유하고 있다. 에버랜드가 이번에 사업 양수도를 통해 패션 사업을 가지고 왔지만 3세 간 지분 구조에는 변화가 없어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번 사업 재편은 단순한 사업 양수도일뿐 에버랜드의 지분 변동이 없다는 점에서 이를 후계구도와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며 "매각 작업이 완료되는 12월 초 진행될 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향후 3세 간 역할 분담의 밑그림이 그려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종배기자 ljb@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