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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친정체제 강화로 위기 돌파

박근혜 대통령, 리더십 위기에 '원조 친박' 호출
충성심 높으나 올드하고 비박 불만
항명 파동, 검찰난에 '의리의 친박' 의지
서청원 보궐선거 출마… 홍사덕 민화협 대표로 복귀
박근혜 대통령이 흔들리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박 대통령 리더십의 위기다. 소위 말해 대통령의 '말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임기가 시작된 지 이제 7개월 밖에 안된 시점임을 감안하면 이 같은 현상은 너무 이르다. 박 대통령의 첫 위기가 도래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얼마 전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박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제출해 수리됐다. 청와대 측의 물러나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버티면서 자리를 유지하는 식의 항명은 역대 정권에서도 종종 있어왔으나, 대통령이 장관에게 직접 사의 표명을 거두라는 뜻을 거듭 전했는데도 이를 뿌리치고 사퇴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아직도 진위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혼외아들 의혹 사건의 당사자인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보다는 외풍의 압력으로 비쳐지길 바라는 듯한 모양새다.

앞서 양건 전 감사원장도 8월26일 이임사에서 "감사 업무의 최상위 가치는 직무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라면서 "재임 기간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지키려고 했지만 역부족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변수에 의해 임기를 지켜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며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다.

개인적 잡음으로 물러났지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과 박종길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도 사퇴 과정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게 적잖은 부담을 줬다.

  • 서청원
이 같은 일련의 잡음은 박 대통령의 지도력이 정부 안의 혼선조차 정리하지 못할 정도로 그 작용력이 급격히 약화한 것 아니냐는 진단이 나와 우려된다. 진 전 장관은 자리를 지키라는 지시를 거부했고, 채 전 총장과 양 전 원장은 사실상 우회적인 사퇴 사인에 대해 각기 다른 각도에서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니 일각에서는 "고위 공직자가 대통령의 지시를 가벼이 보는 행태가 나타나는 게 마치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을 보는 듯 하다"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임기의 불과 10분의 1이 지난 시점에서 대통령의 구심력이 약화할 때의 부작용은 실로 엄청나다. 벌써부터 행정부가 눈을 감고 여당이 돌아앉는 다면 그 정권의 성패는 불 보듯 훤하다. 박 대통령에게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친박 핵심 줄줄이 귀환

위기 상황임을 모를 리 없는 박 대통령이 이를 보고만 있지는 않을 태세다. 당장 내부 기강잡기에 나서는 분위기다. 최근 대통령 중심의 주요 보직 인선에서 범 친박계가 아닌 핵심 친박, 다시 말해 원조 친박들이 서서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친정 체제 강화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8월 청와대 비서실장에 정치권 원로이자 유신헌법 초안을 다듬었던 것으로 알려진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기용된 데 이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새 대표 상임의장에 홍사덕 전 의원이 2일 추대됐다. 홍 전 의원은 2007년과 2012년 박근혜 후보 경선 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최측근 인사다.

  • 홍사덕
여기에다 10월30일 치러지는 보궐선거에서 경기 화성 갑지역에 서청원 전 의원의 공천이 확정됐다. 서 전 의원은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정치 원로로 1998년 박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재ㆍ보선에 출마할 당시 당 사무총장으로 공천에 관여했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캠프 상임고문을 맡았다. 이듬해 18대 총선에서는 낙천한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로 친박연대를 출범시키며 '박풍(朴風ㆍ박근혜 바람)'을 주도한 최측근이다.

이미 당에는 원조 친박인 최경환 의원이 원내대표로 대야(對野) 창구역을 맡았고 홍문종 사무총장도 오랜 친박계 의원이다. 여기에 이달 30일 보궐선거에서 서 전 의원이 당선될 경우 바로 대표 후보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공석이 된 감사원장과 복지부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후임에도 친박계 인사들이 하나 둘 거명되고 있다. 특히 복지부 장관에는 이혜훈 전 의원 등 전 현직 친박계 의원들의 이름이 집중적으로 오르내린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원조 친박계를 다시 중시한 데에는 국정운영에는 무엇보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확고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원조 친박계가 당과 행정부를 보다 확실히 장악한 뒤 청와대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국정을 펼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박 대통령의 생각이 녹아 있는 것이다.

진 전 장관의 항명 파동은 결국은 충성심이 약해 비롯된 것으로 박 대통령이 보고 있기에 결국 자신과 정치적 생사를 같이 해온 공동운명체가 국정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의리의 친박'이 진짜 실세

  • 최경환
하지만 원조 친박이라도 모두가 박 대통령의 부름을 기대하긴 어렵다. 박 대통령과 적잖은 교감이 담보되는 인사라야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종종 사석에서 의리의 중요성을 언급하곤 했다. 이중 서 전 의원에게 건넸던 "의리가 없으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에 박 대통령의 생각이 정확히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을 것이다"라면서 "유신 때는 '유신만이 살길'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때 무슨 힘이 있어 반대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인생의 서글픔이 밀려왔다"고 적었다. 이어 "고마운 사람은 나에게 물 한잔 더 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시류에 따라 오락가락하지 않으며 진실한 태도로 일관된 사람들, 진정 빛나는 이들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도 그렇거니와 정권이 바뀐 뒤 유신시절 고위 공직자들이 앞다퉈 전 정부를 평가절하하는 언행을 보였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은 '배신'이란 키워드에 가장 거부감이 크다.

때문에 친박계 인사 중에서 등을 돌렸던 적이 있거나 핵심에서 멀어진 경우는 박 대통령의 온전한 신임을 받기는 어렵다.

진영 전 장관도 당초 박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는 등 원조 친박계 인사였다. 하지만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 대통령이 패하고,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는 과정에서 진 전 장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 쪽으로 기울었다. 이른바 '월박(越朴·친박계를 벗어남)'인사로 분류된다. 그러다 지난해 대선 과정을 거치며 적극적으로 박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해 현정부에서 장관직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랬던 진 전 장관이 재차 등을 돌리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상실감은 더 클 것으로 여겨진다. 진 전 장관이 '복박(復朴·돌아온 친박)'으로 불릴 만큼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의리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더더욱 의리에 대한 강조점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가능해진다.

  • 홍문종
서청원 전 의원이 얼마 전 재보선 경기 화성갑 출마를 선언하며 펴낸 책 제목도 <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이다. 2010년 12월24일 의정부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풀려날 때 했던 말이다. 고초를 당하기는 했지만 박 대통령과의 우정은 변함없이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서 전 의원이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여의도로 복귀할 경우 이명박정부에서 이상득 전 의원이나 이재오 의원이 누렸던 영향력 정도를 행사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단초다.

비박계 불만 커질 듯

친박계 중에서도 핵심 측근들이 중용되면서 이들 위주의 국정 운영이 예상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비박 진영은 심기가 불편하다. 가뜩이나 여권의 헤게모니가 친박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분위기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임용으로) 외부에서 볼 때는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좀더 심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다"며 "시대의 흐름하고는 안 맞는 분위기"라고 김 실장을 겨냥했다.

조 의원은 이어 "대통령만 모시는 건 잘하는 게 아니다"라며 "소통의 아쉬움을 참모들이 인식한다면 더 잘해주고 메워줄 수 있는 역할이 대통령에게 정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 실장의 대 정치권 소통 부족을 지적한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청와대는 김 실장, 당은 최경환 원내대표와 홍문종 사무총장 등 원조 친박계 의원, 행정부도 곳곳에 기용된 친박 출신 장관들이 주도하는 분위기가 강화할 것"이라면서 "정부 출범 후 가급적 친박 중용을 자제하던 박 대통령이 돌고 돌아와서 다시 친박을 통한 측근 정치에 시동을 거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당내 친이계와 중간 지대에 있던 소장파 그룹 등은 더욱 정권의 핵심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라면서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달래가며 끌고 가느냐 하는 문제가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지켜보는 또 다른 관전포인트"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정국 위기 돌파를 위해 꺼내 든 카드가 친박 중용이지만 자칫 '코드 인사'강화에 그칠 우려도 나온다. 이 경우 정국은 더욱 꼬일 수도 있다.

염영남 한국일보 논설위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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