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친정 체제 강화 움직임에 유독 시선을 끄는 이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파문과 관련해 새누리당 안에서는 김 실장 등 청와대 2기 참모들에 대한 소통 부족 비판이 나온다. 김 실장의 당과의 교감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진영 전 장관의 사퇴도 그렇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이뤄졌다면 다른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김 실장이 청와대 내부의 기강확립 문제에 있어서는 확실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 같지만 외부와의 소통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권 내부의 불만이 이어지자 최근 김 실장은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와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지도부 10여명을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상견례 차원에서 덕담이 오간 자리였지만 당장 새누리당 내부에선 자신의 공관으로 불러 만찬을 하는 이런 모임 자체가 이례적일뿐더러 권위주의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공식적인 당청협의를 하거나 개인적인 친분에 의한 비공식 만찬을 제외하고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원내지도부를 한꺼번에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며 "왕실장이 들어온 뒤에야 가능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김 실장에 대한 비판에는 질시의 감정도 들어 있다. 김 실장이 이른바 '왕실장'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다.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진 중에 이 같은 별칭이 붙은 2인자 세력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박철언 전 의원이 '정권의 황태자'란 소리를 들었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차남 현철씨를 향해 김 대통령의 아호인 거산(巨山)을 빗대 소산(小山)으로 통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에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대(代)통령으로 비유됐고,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왕수석'으로 청와대 비서실을 주름잡았다. 또 이명박 대통령 때에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왕차관' 등으로 비유됐다.

그만큼 권력의 힘이 이들에게 쏠려서 붙여진 별칭이지만 그럴수록 이들에 대한 내부 견제의 힘은 컸고, 종국에는 대통령을 믿고 권력을 남용한다는 비판에 종종 시달려야 했다.

김 실장도 현정부에서 왕실장이란 별칭을 얻은 상태다. 자신의 경우와 비슷한 역대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걸어온 길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염영남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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