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연대 가능성… 차기 대선 '대권-손, 당권-안' 역할 분담 가능손-안 정치적 약점 보완… 차기 대선 목표로 손잡을 수내년 지방선거 계기로 안철수 신당 성공 변수차기 총선 손-안 연대 분기점 될 수 있어

지난 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7주년 기념식에서 악수하는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과 안철수 의원
민주당 손학규 고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당장 특정 선거에 출마하거나, 자신에게 직면한 특별한 정치적 현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시간을 쪼개가며 정치권 인사를 두루 만나는 식의 교감 행보를 넓히고 있다. 최근 독일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이달 30일 치러지는 경기 화성 갑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서청원 전 대표에 맞서 출전해달라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간곡한 청도 뿌리친 그가 물밑에서부터 정치권 세 확장에 나선 모습이어서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 고문의 행보가 특히 주목 받는 이유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의 연대 가능성 때문이다. 손 고문은 민주당의 러브콜에는 야당의 대선 패배를 이유로 외면했다. 그리고는 불과 하루 뒤에 안철수 의원을 공개석상에서 만나 친분을 과시했다. 누가 봐도 정치적으로 묘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소속돼 있는 민주당과는 일정 거리를 두면서 오히려 외곽에서 자당의 지지기반을 잠식해 가고 있는 안 의원과 만나 서로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손 고문과 안 의원이 힘을 합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때 이른 전망도 나온다.

나름대로 이 같은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안 의원이 신당을 꾸릴 만한 전국적인 조직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신에 대한 잠재적인 가능성은 적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정당 조직을 갖출 수 있는 동원 세력을 충당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민주당 내 일정 지분이 있고 경기지사도 역임해 지역 기반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는 손 고문의 힘이 필요하다.

손 고문 입장에서도 친노 세력과 호남 세력이 단단하게 세를 형성하고 있는 민주당에서는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 때와 마찬가지로 다음 선거 때에도 후보로 선출되는 것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제3의 둥지에서 똬리를 틀어 새로운 정치를 천명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물론 양측은 연대 가능성에는 아직 손사래를 친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서로 손잡을 경우 정치적으로 자리를 나눠 가져야 할 문제도 보통 복잡한 방정식이 아니다. 다만 정치적 여건이 성숙될 경우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동아시아미래재단 7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손학규와 안철수의 만남

손 고문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에서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7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창립 심포지엄에는 20여명의 전 현직 의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민주당 신학용, 원혜영, 오제세, 김우남, 김동철, 이찬열, 이춘석, 황주홍, 최원식 의원과 김유정, 전혜숙, 최영희, 박양수, 한광원 전 의원 등 손 고문과 가까운 인사들이 모습을 나타냈지만 김한길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아 또 다른 정치적 시사점이 노출됐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안철수 의원의 참석이었다. 물론 안 의원 측은 여러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하객 중 한명으로 참석했을 뿐이라고 애써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정가의 시선은 손 고문과 안 의원의 교감 정도가 어느 수준이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손 고문이 먼저 정치적 의미가 담긴 축사를 밝혀 주목을 끌었다. 손 고문은 기조 강연에서 "좀 더 과감하게 통합의 정치를 펼쳐나가야 하며, 분열과 대결의 정치에서 과감히 떨쳐 일어서야 한다"고 운을 뗐다. 손 고문의 기조강연 주 내용은 독일 유학 생활에서 보고 느낀 점을 바탕으로 복지, 노동, 교육, 통일 등 분야에서 한국 사회에 필요한 정책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중의 귀는 그가 말한 '통합의 정치'에 집중됐다.

손 고문은 "자기의 지지기반에 집착해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폐쇄정치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외연을 넓혀야 한다"며 "나의 이익을 양보하고 상대방의 요구를 받아주는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는 구태 정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여야 모두에게 던지는 쓴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통합의 정치를 내세우면서 외연을 넓히는 작업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안 의원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손 고문은 이어 한국의 정치권에 대해선 "헌법개정 만능주의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우리 정치가 제대로 사회통합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이 마치 헌법상의 권력구조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정확한 진단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손 고문은 그러면서 "우리 헌법도 제대로만 지키면 권력분산과 견제의 기능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흔히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를 말하지만, 프랑스 의회는 총리임명 동의권이 없고 우리 헌법에는 국회가 국무총리 임명 동의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 등도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정부를 겨냥해서는 "사회적 약자가 국가에게 마음을 열고 의지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생산은 높아지고 국가는 번영의 길을 걷게 된다"면서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으며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통합이 여기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손 고문은 이날 기념식장에서 안 의원과 웃으며 악수했지만 여느 참석자들과 같이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러나 통합의 정치를 강조하는 등 적잖은 정치적 시사점이 있는 자리였던 만큼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 교환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양측, 연대는 아직?

두 사람 간 연대설에 대해 양측 모두 일단은 선을 긋고 있다. 다만 손 고문 측은 상대적으로 강한 어조로 연대 가능성을 일축한 반면 안 의원 측은 당장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부인하면서도 향후 연대의 여지는 남겨두는 분위기다.

손 고문과 가까운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에서 안 의원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현재로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근거가 아무것도 없다"며 "(두 사람이) 만났다기보단 예정된 기념식에 안 의원도 하객으로 온 것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이 의원은 손 고문이 언급한 '통합의 정치'에 대해서도 "안 의원을 보고 처음 말한 게 아니라 독일에서 귀국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그 말을 했고, 그 전부터 똑같은 말을 계속 했다"면서 "현재의 민주당과 야권이 너무 자기 진영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서 통합의 자세를 갖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가다보면 외연도 넓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미"라고 재차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같은 당 최원식 의원도 손 고문의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 불출마 결정과 안 의원과의 사전 교감설에 대해 "내가 손 고문의 (대선 캠프) 비서실장 역할을 해서 깊게 알고 있는데, 전혀 그런 것은 없었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대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한 건 안 의원 측도 마찬가지였다. 안 의원의 측근인 무소속 송호창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민주당 바깥에서 야권에서의 새로운 대안 정치세력화를 하고 있는 데는 그 나름대로 각자 국민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몫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이어 "민주당은 기존과 다르게 민주당의 혁신이 필요한데, 그것이 민주당 내부에 갇혀 있는 혁신이 아니라 야권 전체에 도움이 되고 (야권을) 확대·강화할 수 있는 혁신이 돼야 될 것"이라며 "거기에서 손 고문에 대해 아주 높은 기대가 있는 것"이라고 일단 연대론에 거리를 뒀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만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야권 전체의 리더십을 확립하고 그것을 통해서 국민들이 정말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야권의 중심세력이 되기 위해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면서 "그 과정이 잘 만들어진다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생기지 않겠느냐"라고 말해 향후 연대의 여지는 열어뒀다.

송 의원은 또 '손 고문과의 연대 여지는 두고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도 "모든 가능성은 다 열려 있다"면서 "지금 어떤 형태를 만들고, 독자적으로 어떤 성과를 만들기도 전에 연대를 한다거나 과거 선거 때처럼 단일화를 한다는 식으로 너무 성급하게 나가게 되면 오히려 각자의 성장과 발전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경우들이 많다는 차원에서 드리는 말씀"이라고 부연했다.

역할 설정이 최대 변수

두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비교하면 서로가 합치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손 고문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자당과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시작하다가 민주당으로 건너 왔다. 안 의원은 한나라당, 민주당 어느 쪽에도 몸 담지 않고 있어 양쪽 지지층 모두를 겨냥하고 있다. 지지층이 일정 부분 겹치는 것이다.

또 두 사람은 민주당의 대표적인 친노(親盧) 좌장인 문재인 의원으로부터 쓴 잔을 마셨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작년 대선 때 손 고문은 민주당 경선에서 문 의원에게 졌다. 안 의원은 야권 후보 단일화 후보과정에서 결국 문 의원에게 밀렸다.

손 고문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모바일 경선의 폐해를 주장하면서 문 의원 측과 거리가 멀어졌고, 안 의원도 스스로 대선 후보직에서 물러났지만 그 과정에서 문 의원 측과 앙금이 생겼다. 두 사람 모두 결국 대선 때 흔쾌히 선거 지원에 나서지는 않았다. 문 의원 측도 이런 과정을 겪은 두 사람에 대해 감정이 좋을 리 없다.

정치에서 공통의 지지 기반 위에 공통의 적을 가졌다는 것은 종국에는 한 편으로 묶어주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손 고문과 안 의원의 정치적 연대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연대는 역할 분담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처럼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로 자리를 나눠 맡으면서 공동 정부를 꾸리거나, 지난해 민주당처럼 문재인 대선 후보, 이해찬은 당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처럼 대권과 당권을 나누는 방법이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가 손 고문과 안 의원은 모두 대선 후보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령으로 보나 정치 경력으로 보나 손 고문이 안철수 대통령 밑에서 총리직을 맡거나 당 대표를 맡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더구나 2017년 대선에서 70세가 되는 손 고문 입장에서는 사실상 이번 도전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크다. 양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안 의원 입장에서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우리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대선 후보라는 자리를 쉽게 넘겨 줄 수가 없다. 손 고문이 대통령이 되고 그 밑에서 안 의원이 당 대표나 총리가 되더라도 여당이 또다시 재집권한다는 보장도 없다. 안 의원도 이번에 기회가 근접하면 무조건 잡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경륜과 야권 내 기반이 있는 손 고문은 참신성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돌풍을 몰고 올 파괴력은 부족하고, 안 의원은 정치 혁신의 기대 속에 또다시 안풍(安風)을 일으킬 가능성은 있지만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편이다.

어느 선까지는 두 사람이 서로의 강점을 흡수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야하는 상황이다. 그 시점이 이르면 내년 지방선거가 될 수 있다. 그 때 정치적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2016년 19대 총선으로 손잡는 시기가 미뤄질 수도 있다.

만일 손-안 연대의 신당 돌풍이 정국을 강타해 선거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경우 그 다음 상황은 예측불허다. 분명한 것은 그 때부터는 서로가 적대시 하는 내부 전쟁에 돌입한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 때 야권에서 줄곧 강조했던 '아름다운 양보'가 이뤄지면 모를까. 정치적 인생을 건 손 고문의 최종 선택지가 궁금해진다.

염영남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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