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녀'들이 성형수술 한다고?잘생기고 예뻐야 취업 잘되고 연봉 높아 울며 겨자 먹기로 성형외모도 경제력이 좌우… 약자들 출발부터 뒤처져성형 열풍, 사회가 조장… 개인들에게만 책임 넘기면 '성형 광풍' 문제 해결 난망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1천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성형을 위해 입국하는 외국인도 늘고 있다.
22세 여대생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지난 10월 17일 부산의 한 성형외과에서 코를 세우고 턱을 깎는 안면윤곽수술을 받은 후 돌연 뇌사 상태에 빠진 이 여대생은 사고 후 9일 만에 숨지고 말았다. 지난 6월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술을 받던 30대 여성은 수술 중 의식불명 상태가 돼 한 달 만에 사망했다. 3월에도 22세 여대생이 충북 청주의 한 성형외과에서 눈ㆍ코 성형을 위해 마취를 하던 중 의식을 잃은 지 일주일 만에 사망했다.

사망 사고 못잖게 부작용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성형수술 부작용 피해 접수는 472건. 이 기간 피해구제 접수현황은 2008년 42건에서 지난해 130건으로 5년 동안 무려 3배 이상 급증했다. 그런데도 한국의 성형 열풍은 그칠 줄을 모른다.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에 따르면 한국 여성 5명 중 1명은 성형수술을 한다. 인구 대비 성형 비율이 전 세계 1위다. ISAPS 조사 결과 한국에서 2011년 한 해 동안 실시된 성형수술은 65만 건. 한국의 성형시장은 45억달러(5조원)로 세계 성형시장 규모(200억달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말 그대로 '성형공화국'인 셈이다.

세계 1위 '성형 공화국'

성형은 20세기 초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외상에 대한 재건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발전했다. 한국에는 한국전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50년대 중반 도입됐다. 경제 발전으로 인한 소득 증가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다소 높아진 80, 90년대에 성형이 보편화됐다. 이때만 해도 성형은 카메라 앞에 서는 연예인과 젊음을 유지하며 윤택한 삶을 영위하려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불과 수십 년 만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형수술을 하는 나라가 됐다. 성형외과가 수만 2,000개에 이르고 1,000여개의 성형외과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몰려 있다. 강남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성형 거리'까지 형성돼 있다. 그만큼 성형은 장사가 되는 사업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0~2011년 국내 759개 직업군의 현직 종사자 2만 6,810명의 연봉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성형외과 의사는 9,278만원으로 의사 연봉 중 최고 수입을 기록했다.

강남구 압구정동의 성형외과 밀집 지역에 내걸린 병원 홍보물.
병원이 많으니 과열 경쟁이 불가피하다. 성형외과 전문의뿐 아니라 일반 의사까지도 병원 수익을 위해 성형수술에 나서고 있다. 성형외과는 성형을 상담하는 코디네이터(상담실장)를 고용하고 TV와 대중교통 광고판, 옥외 광고 등의 수단을 이용한 과장 광고를 통해 무분별한 성형을 조장한다. 병원의 상술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최근 영화 '관상'이 흥행하자 '관상 성형'까지 나왔다.

성형 탐닉은 사회구조 문제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왜 이렇게 성형에 탐닉하는 것일까. 성형을 해서라도 아름다움을 확인받으려는 '된장녀'들의 욕망 때문일까? 성형외과를 이용하는 대다수가 여성, 취업 준비생, 은퇴자 등 미래가 불확실한 계층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취업을 앞둔 여대생 권모(25)씨는 "성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예쁘지 않으면 취업이 불가능한 시대라는 것이다. 실제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인사담당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92%가 증명사진이 채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취업 경쟁력에서 외모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다. 남녀 직장인 1,474명을 상대로 한 잡코리아의 지난 8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5명 중 3명 이상이 '성형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응답자 대부분이 외모 경쟁력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성형하고 싶다고 밝혔다. 호주의 맬버른대와 호주국립대 공동 연구팀은 잘생긴 사람이 못생긴 사람보다 평균 연봉이 약 3,600만원이나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도 평균보다 매력적인 사람이 못생긴 사람보다 연봉을 최대 20% 더 받고 취직률도 10%나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취업 준비생은 물론이고 이미 직장을 가진 이들도 이런 연구결과에 흔들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은퇴를 앞둔 중년들은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인상을 바꾸거나, 사업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활기찬 용모로 가꾸기 위해 성형을 한다. 일에 치여 혼기를 놓친 청년들도 이성에게 호감을 주는 첫인상을 만들기 위해 성형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권씨는 "외모차별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성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다 같은 여성 국회의원이라도 얼굴이 더 예쁘면 더 주목받는 게 사실 아니냐고 말했다. 권씨의 푸념에서 알 수 있듯이 성형을 하는 이들이 어느새 연예인과 부유층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로 옮겨왔다.

문제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더 이상 매력적인 외모를 갖추는 데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자가 공부를 잘하듯이 돈이 많을수록 외모도 뛰어난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피부미용과 성형에 연간 수천만 원의 돈을 쓸 수 있는 부자들과 달리 사회적 약자들은 성형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성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젊은이들은 학자금대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성형 대출을 받기도 한다. '후불제 성형'을 할 수 있는 대출 상품까지 등장했다. 일부 몰염치한 병원과 짜고 환자를 알선하는 성형대출 전문 브로커도 생겨났다. 최근 서울 강남경찰서는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주고 환자를 받은 성형외과 전문의와 병원 관계자 55명을 의료법 위반 행위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이 1년 반 동안 챙긴 돈은 무려 7억 7,000만원.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이다.

전문가들은 '성형공화국' 오명에 씁쓸해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의식의 이면에는 사회 문제를 개인 문제로 치환하는 폭력적인 시선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또 외모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 편승해 성형을 조장하는 의료계의 반성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형외과 의사는 아니지만 환자들에게 성형에 조언을 해주고 있는 안성후 전문의는 "성형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 치부해 개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도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성형을 권장하는 사회의 분위기로 인한 성형이 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반성 없이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사회적 공유와 함께 과열을 넘어서 무분별하기까지 한 병원의 홍보에 대한 제재, 성형의 위험성을 알리려는 당국의 노력이 다 함께 어우러져야 한국이 '성형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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