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 붙기 전에 일단 팔고 보자유동성 위기 기업 자금 마련 총력… 경남기업 채권단에 손 내밀어동부그룹 계열사 지분·빌딩 매각… 한진해운 영구채 발행 나서현대상선 부산신항만 매각 검토

유동성 위기를 맞은 기업들이 자산매각·자본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은 최근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신청한 동부제철 아산만 공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최근 동양 사태와 관련해 회사채 시장이 우려할 정도는 아니며 다른 기업의 부실 우려 또한 과장됐다." 지난달 24일 '부실기업 블랙리스트'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대답한 내용이다. 그러나 제2의 동양그룹이 나올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킨 신 위원장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재계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웅진그룹, STX그룹에 이어 동양그룹까지 굵직한 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혹시라도 다음 차례가 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차입금 비중이 높아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기업들의 경우 자산매각 및 자본확충에 매진하고 나섰다. 차압 딱지가 붙기 전에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일단 팔고 보자는 모양새다. 벌써 두 번째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한 경남기업을 비롯해 제2의 동양그룹으로 언급되고 있는 동부그룹, 재무구조 압박에 시달리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이 그 주인공이다.

자구책 마련했지만 결국 워크아웃

경남기업은 워크아웃 졸업 2년 만인 지난달 29일 또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반복되는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채권단을 찾은 것이다. 2009년 1월 워크아웃에 들어가 2011년 5월 조기 졸업한 경남기업은 지난해 24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 했다. 상반기 기준 총자산과 부채는 각각 1조8,275억원, 1조2,517억원이며 부채비율은 217.4%에 달한다.

당초 경남기업은 연말까지 차입금 등 상환과 결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사유보금을 회수하고 담보대출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공공사 입찰 제한에 이어 신용등급마저 강등, 추가 대출 및 대출 연장 과정에서 난항을 겪으며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 연말까지 상환해야 하는 2,650억원 중 절반 정도만 겨우 확보한 경남기업은 결국 또다시 채권단의 손을 빌리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경남기업은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차입금 상환 등을 위한 500억원의 긴급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채권단에 추가로 1,500억~2,000억원의 자금 지원도 요청할 계획이다.

다행인 것은 채권단의 도움을 받아 일단의 급한 불만 끄게 되면 향후 전망은 그리 어둡지 않다는 점이다. 베트남 하노이의 복합센터 '랜드마크72'와 광주 수완에너지의 지분 매각만 성공하면 1조원 이상의 자금 확보가 가능한 까닭이다. 또한, 기존에 수주했던 공사 물량의 선수금 2,000억원 가량을 내년 1월 회수할 예정이라 또다시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할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 도움받아 자금 확보

동부그룹은 동양사태가 터지며 다음 타자로 가장 많이 지목된 기업이다. 1년 이내 만기가 도래하는 동부제철의 차입금이 5,800억원이나 되고 그룹 전체로 따져보면 3조5,000억원에 달하는 까닭이다. 이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확산되자 결국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까지 사태 진화에 나선 동부그룹은 최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우선 동부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동부건설이 보유한 각종 지분을 매각해 5,000억원 규모의 실탄을 확보할 계획이다. 동부건설은 지난달 23일 서울 동자동 오피스 빌딩 지분을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빌딩 매각으로 동부건설은 공사미수금 약 1,943억원과 지분투자액 약 985억원 등 약 3,000억원 내외의 자금을 회수하게 됐다. 또한, 동부건설은 동부익스프레스 지분을 매각해 1,700억원을 추가 매각할 계획이다.

매각대금이 모두 유입되면 오피스 빌딩 지분을 담보로 우리은행에서 발행한 600억원 규모의 사모사채를 비롯해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420억원 규모의 공모사채와 신용보증기금 발행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 150억원어치를 우선 상환할 계획이다. 또한 내년 말까지 도래하는 2,77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갚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주력 계열사인 동부제철은 오는 12월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1,050억원에 대해서는 산업은행에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신청한 상태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란 만기 도래 회사채 상환을 위해 기업들이 사모방식으로 회사채를 발행하면 산업은행이 이를 인수해 기업의 상환 리스크를 줄여주는 제도다. 회사채 신속인수제가 적용되면 동부제철은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20%를 자체 자금으로 상환하고 나머지 80%는 산업은행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숨통이 트이게 되는 셈이다.

사옥까지 내놔야 할 판

오래 전부터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온 한진그룹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그 중 한진해운의 사정은 특히 어렵다. 지난 3월 말 기준 775%에 육박하는 부채비율만 봐도 그렇다.

상반기 1,156억원의 영업순손실을 기록한 한진해운은 올해 말까지 기업어음(CP) 2,100억원과 회사채 400억원을 갚아야 한다. 또한 내년에도 3, 4, 9월에 각각 1,800억원, 600억원, 1,500억원의 만기가 도래할 예정이어서 총 3,9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해야만 한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한진해운이 꺼내든 카드는 4,000억원 내외의 영구채 발행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동의를 전제로 우리ㆍ하나은행에 지급 보증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영구채 발행에 성공만 한다면 부채비율을 620%까지 줄일 수 있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그러나 금융권의 반응이 냉랭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이 지난달 30일 1,500억원을 한진해운에 긴급 지원한 것이 눈에 띈다. 한진해운이 영구채 발행에 실패할 경우 그 여파가 그룹 전체에 미칠 가능성도 적지 않은 까닭에 그룹 지도부에서 내린 결정으로 읽힌다.

한진해운 측은 조달 자금을 차입금 상환에 우선할 계획이지만 전체 차입금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 다른 자산의 매각이 필수적이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한진해운이 결국 사옥 및 터미널과 물류기지를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크레인과 컨테이너 등 돈 되는 자산을 거의 매각한 상태라 남은 자산이 몇 개 없는 까닭이다.

가능한 모든 자산 매각 검토

해운업 불황으로 유동성 압박을 경험하고 있는 현대상선도 금융권의 도움을 받아 재무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최근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이용, 지난달 22일 만기 도래한 회사채 2,800억원의 차환 발행에 성공했다. 또한, 내달 초에는 2,145억원의 유상증자를 개시, 내년 만기인 2,5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CP) 상환에 사용할 계획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현대부산신항만 매각도 염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신청하며 보유자산 매각의사를 전한 만큼 차입금 증가 없는 유동성 확보에 나서야 하는 상황인데 이를 위해서는 현대부산신항만 카드가 가장 적절하다는 해석이다. 현대상선이 10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부산신항만은 시장가격이 약 4,000억원에 이르는 알짜회사다.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지분 및 운영권을 넘기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를 되살 수 있는 우선매수권을 갖는 방식으로 매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