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욕망' 향한 인스턴트 연애

어느 직장남의 씁쓸한 인스턴트 연애

인터넷카페서 만난 이들과 돈 갹출

150만원짜리 강남클럽서 하룻밤 유흥

인사만 나눈 뒤 철저한 개인플레이

대부분 ‘원 나잇 스탠드’가 목적

성관계한 여성 ‘홈런녀’로 부르기도

소통에 어려움 겪을수록

자극적 만남 원하는 악순환 되풀이

서울 마포의 한 직장에 다니는 P(남ㆍ37)씨는 애인이 없다. 연애를 간절히 원하지만 바쁜 직장생활 때문인지 도통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다. 간간이 만나던 친구들과의 연락도 요즘엔 끊겼다. 어쩌다 전화를 걸면 미혼 친구들은 직장일로, 기혼 친구들은 육아 문제로 바쁘다고 한다. P씨는 알 듯 모를 듯 미묘한 이성의 심리를 소개하는 종편 프로그램 ‘마녀사냥’을 시청하다 외로움이 사무쳤다.

P씨는 최근 ‘룸 조각 모임’이라는 ‘번개 모임’을 가졌다. ‘룸 조각 모임’은 돈을 갹출해 강남 유명 클럽의 룸에서 유흥을 즐기는 걸 일컫는다. 오랜 기간 솔로로 지내던 P씨는 “외로움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성을 만나고 싶었다”면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손쉽게 이성을 만나고 잘하면 하룻밤 성관계도 가능한 ‘룸 조각 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른바 ‘원 나잇 스탠드’ 등 일회용 만남을 위해 클럽이나 나이트에 함께 가자는 글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클럽에 온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해 대여섯 명의 남성이 함께 돈을 모아 클럽의 룸을 잡는다. 일반적으로 클럽에서 여성을 유혹하는 데는 룸을 이용하는 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남성들은 커뮤니티를 통해 시간과 날짜, 장소를 잡고 사람을 모집한다. 룸 비용은 대략 150만원. 혼자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1인당 20만~30만원만 있으면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 유혹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게 ‘룸 조각 모임’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P씨는 “모임에 참가한다고 해놓고 한참 내가 뭐하는 짓인가 자문했다. 하지만 외롭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성을 만나고 유혹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했다. P씨는 지난달 마지막 금요일 강남의 한 클럽 2층 룸에서 조각모임에 참여한 남자들과 달랑 인사만 나눴다. P씨는 “여자를 유혹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함께 간 남자들과는 돈을 나눠 내기만 했을 뿐, 그 다음은 함께 있어도 철저히 개인플레이였다”고 했다.

P씨는 “여성을 유혹하지 못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합석한 여성들 사이에서 얼굴 되고 몸매와 패션이 받쳐주는 남성만 인기를 끌었다”며 “다시는 이런 만남을 갖지 않겠다”고 말했다. P씨는 “왠지 더 외로워졌다”고 했다.

문제는 여성을 손쉽게 유혹하려던 P씨의 행태가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P씨는 "후기 게시판에 ‘홈런 인증’을 한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홈런 인증'은 클럽 등에서 여자를 유혹해 하룻밤 성관계를 갖고 그 사실을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통해 알리는 것을 말한다. 성관계를 한 여성은 '홈런녀', 성관계 성공은 ‘홈런’으로 통용된다. P씨가 말한 게시판에는 이 밖에도 ‘F-close(성관계 성공)’, ‘K-close(키스 성공)’, ‘윙(작업 도와주는 친구)’, ‘게임(여성을 유혹하는 것)’ 등의 은어를 쓰며 인스턴트 연애를 즐기는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사이버경찰청은 “여성의 알몸 사진을 직접 찍으면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의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고, 이를 인터넷에 공개하면 정보통신법상 음란물 유포 위반과 명예훼손”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 4월 경찰은 서울 부산 대전 등의 나이트와 클럽 등에서 만난 여성들과 하룻밤 성관계를 맺고 이를 과시하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에 사진을 올린 남성 5명을 불구속 입건한 바 있다.

P씨 역시 이 같은 폐해를 알고 있다. P씨는 “내가 미쳤는지 너무 외로워서, 당장 이성이 그리워서, 손쉽게 외로움이 해결될까 해서, 일회용 만남을 원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하게 된 것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P씨는 “그런 만남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커뮤니티를 찾는 게 잘못이란 걸 알면서도 유혹에 굴복한 건 딱히 이성을 만날 방법도 없었고 만나서 어떻게 유혹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며 “하지만 옳지 않았다. 한 번 경험한 쉬운 만남은 주머니만 가볍게 했을 뿐 마음은 되레 더 무겁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P씨가 경험한 사례를 들은 배정원 행복한 성문화센터 소장은 “P씨 같은 사람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 소장은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거나 이성에게 어떻게 어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면서 “P씨처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은 보다 손쉽고 자극적인 만남을 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배 소장은 “인스턴트 만남을 통해 당장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겠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 손해”라며 “(그런 만남이 잦으면) 갈수록 우울해지고 외로움을 느끼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배 소장은 건강한 남녀관계를 위해선 ‘자판기 관계’를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등산 동아리 등 사교 문화를 통해 이성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배 소장은 “궁극적으론 공동체 문화를 살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배 소장은 “개인적으로 자극적인 만남을 벗어나려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결국 공동체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배 소장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고, 오가며 인사하고, 이웃 간의 왕래가 잦은 지역에선 성폭행 같은 범죄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며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는 공동체 문화를 구축해야 일반적인 관계에서 소외받는 젊은이들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옥희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