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법 등 과감한 재정비 우선돼야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 기업 구조조정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거두기 위해 도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갑작스러운기업 구조조정으로 촉발된 '동양사태'의책임을 지고 2013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현재현 회장.(앞쪽) 주간한국 자료사진
웅진, STX, 동양…. 이는 지난해부터 법정관리, 워크아웃 등 '기업 구조조정'(이하 구조조정)을 선택한 기업들의 이름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며 파산 직전의 마지막 방법으로 구조조정을 선택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경기회복이 더디고 기업 성과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구조조정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거두기 위해선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 LG경제연구원의 이지홍ㆍ문병순 연구원은 '기업 구조조정 제도, 선제적 대응 기능 높여야' 보고서를 통해 도산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구조조정 선택 쉬워져

이지홍ㆍ문병순 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 제도는 1998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크게 변화됐다. 과거 구조조정 관련 법률들(도산3법: 파산법, 화의법, 회사정리법)이 기업 회생보다는 청산과 채권자 이익 보호를 추구했던데 반해 이후에는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큰 기업에 한해 회생할 수 있게 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구조조정의 목적이 바뀌면서 제도도 정비됐다. 과거 은행들과 정부가 자율적으로 워크아웃을 실시하여 운전자금을 공급하고 부실자산을 매각하면서 구조조정을 실행했다면 2001년 한시적으로 제정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과 2006년의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통합도산법)에서는 기존 경영인의 역할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는 경영인들이 구조조정을 어렵지 않게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늦게 신청할수록 회생도 늦어

문제는 최근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을 신청한 기업들의 신청 당시 부실 수준이 과거보다 심각하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의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영업이익률이 부채비율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된 것으로도 확인된다.

구조조정 개시 시점의 재무구조가 과거보다 악화된 원인으로는 먼저 신청 시기가 늦어진 점을 꼽을 수 있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신청하지 않아도 금융기관이 워크아웃 기업을 선정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신청의 주도권을 기업들에게 주면서 그 시기가 많이 늦어지게 됐다.

또 다른 이유는 저금리와 채권 시장의 발달 영향이다. 기업은 재무구조가 악화돼도 채권이나 기업어음 발행을 통해 채권시장에서 자본을 조달, 곧바로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고 과거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환자로 비유하자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입원시기를 결정하고 의사 외의 치료수단에 기댈 수 있게 되며 오히려 병을 키우게 된 셈이다.

통합도산법 효과 커

2006년 통합도산법이 제정되면서 구조조정 절차는 한결 신속해졌다. 이전에는 화의법 절차를 밟다가 회사정리절차로도 이행하는 등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간을 지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도산법으로 통합하면서 기업들의 시간 끌기가 사라지고 구조조정이 빨라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2006년 이전에는 평균 50개월 이상 걸리던 기업회생이 도산법 제정 이후 20개월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법정관리의 경우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채권자 보호를 기본적인 목표로 두고 자산매각을 하며 재무구조 개선에 더욱 초점을 맞췄던 도산3법과 비교할 때 재무구조 측면의 개선효과는 줄어들었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워크아웃 기업들과 비교해도 성과 개선 정도가 높게 나타났을 정도다.

제도개선 어떡해야?

그 효과에도 불구하고 개선할 부분은 여전히 많다. 우선 워크아웃은 금융기관 가운데 대출 채권을 적게 가지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문제가 있다. 채권 금융기관 중에 전체 대출채권의 75% 이상을 가지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동의만 있으면 채무재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소액의 채권을 보유한 다른 금융기관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

정부의 개입도 문제다. 사실상 워크아웃 대상 기업의 선정부터 채무재조정까지 모든 절차에 금융당국이 개입하고 있는데 이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개별 금융기관의 희생도 우려된다.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는 대출은 대부분 담보대출로서 법정관리로 가도 손실이 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워크아웃 상의 출자전환을 무리하게 강제하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모든 채무가 아니라 채권 금융기관의 채무만 조정되고 나머지 채권들은 조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통합도산법에 따른 법정관리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기존 경영진이 부실 책임이 없는 이상 계속 경영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법정관리 신청 이후 빌린 채권은 선순위로 보호해 주기는 하지만 청산 절차로 전환되면 후순위로 떨어지기 때문에 여전히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는 점도 큰 문제다. 그 결과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들이 회생은커녕 운전자금을 공급하지 못하여 경영난이 더욱 심화되는 경우도 많다.

정부 또한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 중이다. 조만간 한시법인 기촉법의 종료 시점이 다가옴에 따라 워크아웃을 상설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지홍ㆍ문병순 연구원은 "워크아웃의 문제점에 비추어 볼 때 경제적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기촉법 연장은 필요할 수 있으나 제도의 상설화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오히려 도산법의 재정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두 연구원은 선제적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도산법과 관련 법제도의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산분리의 원칙을 완화,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도산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선제적으로 출자전환을 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부실기업이 법정관리 절차를 밟기 전에 자산매각을 할 경우에 불거지는 도산법상 부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인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