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물러나도 "갈 데까지 가보자?"금감원, 도쿄지점서 비자금 돈세탁 정황 포착해 조사카자흐스탄 은행 투자했다 8,000억원 허공으로 증발 금융권 MB인맥 배제설 솔솔

회장님 물러나도 “갈 데까지 가보자?”

도쿄지점 비자금, 카자흐스탄 은행 손실,

해외법인 인력 운영 잇따라 구설수

‘MB 금융인’손보기 아니냐 의문도

‘총체적 난국’. 지금 국민은행의 처지를 두고 이보다 잘 표현할 말은 없는 듯하다. 국민은행 도쿄지점 비자금 조성으로 촉발된 감독당국의 조사가 카자흐스탄 은행 투자손실에 이어 해외법인 인력 운용 점검까지 확대됐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인 상황이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사정기관의 조사가 이뤄질 당시 국민은행은 올게 왔다는 반응이었다. 수장의 사임을 압박하기 위해 이뤄져 온 자연스러운 수순이기 때문이다. 과거 수장의 퇴진 이후 사정은 조용히 무마됐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가보자는 분위기다.

도쿄지점 비자금 의혹

잔혹사의 시작은 지난 10일 금융당국이 국민은행 도쿄지점이 수년간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포착했다고 발표하면서다.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 도쿄지점장이 부당대출을 해주며 거액의 수수료를 받았고 이 중 20억원 안팎이 국내에 송금된 정황을 파악했다.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부당대출 의혹은 지난 3월 일본 금융청이 자금세탁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일본 금융청은 2011년 야쿠자 관련자로 의심되는 한 일본여성이 일본우체국 계좌에서 국민은행 도쿄지점 계좌로 약 50억원을 이체한 과정을 조사했다.

일본여성은 돈의 출처를 상속자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청의 생각은 달랐다. 국민은행 도쿄지점장이 야쿠자의 자금 세탁을 눈감아준 것으로 판단했다. 이 기간 도쿄지점장이 자신의 연봉보다 많은 돈을 국내에 송금한 점도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돈세탁에 관여한 사실도 나타났다. 한도를 초과해 대출해주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법인 명의로 대출한 것이다. 국민은행 직원들은 동일인 대출한도 초과를 숨기기 위해 대출자의 친인척 등 타인 명의로 서류를 꾸미고 담보 가치를 넘겨 대출한 점을 확인했다.

카자흐스탄 은행 부실

국민은행이 지분을 인수한 카자흐스탄 은행의 부실도 조사대상에 포함됐다. 금감원은 지난 17일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부실 실태를 파악하기로 했다. 금감원이 서둘러 현지 방문을 결정한 건 BCC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밀하게 조사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BCC는 금융권에서 최악의 해외투자 사례로 꼽힌다. 국민은행의 ‘애물단지’이기도 하다. 국민은행은 2008년 8월 BCC 지분 41.9%를 9,392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그해 글로벌 금융위기에 현지 부동산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대출 자산이 줄줄이 부실화됐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도 이렇다 할 조치없이 방치했다는 점이다. 그 사이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실제 9월 말 현재 BBC의 장부가액은 1,471억원에 불과하다. 8,000억원 가량이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의 베이징법인장 부당인사에 대한 특별점검에 나선다. 조사의 핵심은 KB금융이 내년 1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베이지법인장과 부법인장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인사가 이뤄졌는지 여부다.

앞서 지난 12일 국민은행은 김대식 중국법인장과 백강호 부법인장을 교체하고 신임 법인장에 김종범 베이징지점장을 승진 발령 조치했다. 내년 1월8일까지 임기가 남은 김 전 법인장을 앞당겨 교체하면서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부법인장도 같이 인사 조치했다.

금감원이 문제로 지적하는 부분은 해외법인 임원의 조기 교체다. 이는 해외 현지법인 임원의 임기를 보장토록 한 감독당국의 지도방침에 반한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금감원은 조기 교체과정에서 부당한 인사 개입이 있었는지 등을 집중 살펴볼 계획이다.

조사 배경 두고 뒷말

금융권은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권 교체 시마다 사정기관을 통해 수장의 사임을 간접 압박해 왔다”며 “그때마다 지주사 회장들은 직원들을 위해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통상 수장의 사임 이후엔 사정이 어느 정도 선에서 무마되는 수순을 밟아왔지만 이번 금감원의 행보는 과거와 많이 다르다”며 “그러나 이번엔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가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동양그룹 사태에 따른 비난의 화살을 금융사로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바닥에 떨어진 신뢰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출구전략’이라는 주장이다.

금감원이 ‘MB맨’을 겨냥했다는 견해도 있다. 어윤대 전 KB금융그룹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다. 그런 어 회장의 불법 비자금 조성 여부 등을 밝혀내 ‘MB 금융인’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은행 외에 우리은행이나 하나은행에 대한 금감원의 칼끝도 전임 수장을 향해 있다”며 “MB맨이자 금융권 ‘4대 천왕’으로 군림해 온 전 수장들에게 재기불능의 대미지를 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hankooki.com



이홍우기자 l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