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 회장 경영 복귀에 전횡까지

과거 피죤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이윤재 회장이 사실상 경영에 복귀해 충격을 주고 있다. 피죤 서울 사옥과 이윤재 피죤 회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모든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던 이윤재 피죤 회장이 사실상 경영에 복귀하면서 전횡을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청부 폭행, 배임ㆍ횡령 등 기업의 오너가 행할 수 있는 범죄 대부분을 저질러 온 이 회장의 경영복귀로 피죤에 막장경영 2부가 열리는 게 아닌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배임ㆍ횡령 혐의 집행유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부장판사 이정석)는 회삿돈을 빼돌려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기소된 이윤재(79) 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지난달 22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회사에 113억원이 넘는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재무구조를 악화시켰다"면서도 "횡령액 중 일부를 회사를 위해 사용한 점 등을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지난 2002년부터 2009년까지 피죤 제품의 스티커 납품업체 등과 금액을 부풀려 납품계약을 체결한 뒤 차액을 돌려받거나 회사 비용을 허위로 회계처리하는 방법으로 회삿돈 60억5,0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불구속 기소됐다.

폭행사주 혐의로 소환통보를 받은 이윤재 피죤 회장이 2011년 10월 5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당시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회장은 빼돌린 돈을 개인적인 주식투자, 중국법인의 유상증자 대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회장은 중국 현지법인을 운영하면서 공사비와 중국법인의 인건비를 국내 법인이 부담하게 하는 등 총 59억여원의 손해를 회사에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도 받고 있다.

죄질이 그리 좋지 않은 이 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데는 적지 않은 나이와 건강상의 문제가 반영됐다. 실제로 재판부는 "회사 측도 선처를 탄원하고 있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아 장기간 구금이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한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선처 배경에는 피죤 경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이 회장의 과거 약속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조직폭력배를 동원, 이은욱 전 피죤 사장을 청부 폭행해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이 회장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당시 "인간의 수명이 길다 해도 자진해서 할 수 있는 한계는 거의 다 됐다"며 "모든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처를 호소한 바 있다.

사실상 경영 복귀로 뒷말 낳아

문제는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던 이윤재 회장이 사실상 피죤 경영에 복귀했다는 점이다.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피죤지회(이하 피죤지회) 측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8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꼴로 본사 및 생산공장에 방문했고 9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출근해 업무보고까지 받고 있다. 김현승 피죤 지회장은 "이 회장이 9월5일 직원들을 모아놓고 경영복귀를 선포했다"며 "회장의 복귀로 회사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하는 직원들의 불안감도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영 전면으로 재부상한 것은 최근 몇 달간의 일이지만 공백기 동안에도 이 회장은 수렴청정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 회장은 2011년 재판을 앞두고 피죤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도 이사직은 놓지 않아 구설을 낳은 바 있다. 또한, 장녀인 이주현 피죤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올려놓고 뒤에서 사실상의 경영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경영인 자르고 직원들도 해고

피죤 내에서는 이윤재 회장의 복귀로 막장경영 2부가 시작됐다며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경영복귀를 선언한 9월 이후 회사를 자기 뜻대로 쥐락펴락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2월 취임 이후 회사 정상화에 힘을 쏟던 조원익 전 피죤 사장을 내쫓은 것이다. 조 전 사장은 LG생활건강에서 26년간 일한 마케팅 전문가로 2009년 만년적자에 시달리던 에스콰이어를 맡아 흑자전환시키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피죤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3위로 떨어진 실적을 어느 정도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는 조 전 사장은 코치와 플레이어로 구성된 직제를 뜯어고치는 등 근무조건도 대폭 개선해 내부 직원들의 신망도 두터웠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경영에 복귀하자마자 조 사장을 경질했다.

또한, 이 회장은 지난 10월 직원 64명에 대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그중 영업ㆍ관리사원 8명을 다른 권역으로 발령했다. 김현승 지회장은 "서울에서 강원도로, 경상북도에서 충청도로 강제전보를 내고 이를 거부하면 사직해야 한다고 협박했다"며 "갑작스런 전보로 가정과 떨어져 주말부부로 살아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에게 지원되는 것은 월세비용 35만원뿐"이라고 분개했다.

그밖에 직원 10여 명은 아예 권고사직을 당했다. 지금 나가면 3개월치 급여라도 받을 수 있지만 버틴다면 지방으로 보내겠다는 협박, 사직서를 내도록 했다는 것이다. 김 지회장은 "회사 측에서는 권고사직 이유를 비용절감 때문이라고 하지만 최근 경력사원들을 뽑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며 "회장의 경영복귀 이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서 노조까지 만들게 됐다"고 전했다. 지난 11월5일 결성된 피죤지회에는 현재 전 직원의 30%인 41명이 몸담고 있다.

이에 대해 피죤 관계자는 "경영복귀설을 주장하는 것은 노조의 입장일 뿐"이라며 "이윤재 회장은 현재 출근하고 있지 않다"고 부정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