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 ‘경제차원’에서 실현

한러 간 교역ㆍ투자규모 증대 전망

남-북-러 3각경협 프로젝트 제안

북한핵 대처에 양국 공감대 형성

러‘동방정책’한국‘유라시아 정책’상관

지난 11월 13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미 9월 러시아 G20정상회의에서 짧은 조우가 있었으니 두 정상 간 두 번째 만남이었다.

세종연구소 정은숙 수석연구위원은 연구소‘세종논평’(278호, 11월 18일자)에서 ‘푸틴대통령의 신동방정책과 한러 정상회담’제하의 글을 통해 한러 정상회담의 의미와 전망을 분석했다. 다음은 정은숙 수석연구위원의 기고문 내용이다.

1990년 9월 수교 이후 지난 23년간 한러 양국은 소련붕괴 및 이후 아시아와 러시아 경제위기 등 여러 도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정상급 회의 개최, 교역과 투자 확대, 인적교류 확대 등을 도모해 왔고, 그 결과 2008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이명박-메드베데프 대통령 정상회담에서 양국관계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됐다.

푸틴 대통령의 방한 목적은 양국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경제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었던 것 같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집권 제3기를 맞아 러시아 극동지역 개발 없이는 러시아가 유럽의 변방에 머물 것이라는 우려 속에 연방정부내 ‘극동지역개발부’를 신설, 신동방정책을 꾀해 왔다.

양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무부서간 2건의 협정(비자면제/ 문화원건립), 6건의 양해각서가 각각 체결됐다(교통/ 문화ㆍ스포츠ㆍ관광ㆍ2014-15 상호방문의 해/ 한국수출입은행-러시아대외경제개발은행 공동 투ㆍ융자 플랫폼/한국투자공사-러시아직접투자기금 공동투자 플랫폼/ 러시아철도청-POSCO-코레일-현대상선물류사업/ 러시아국영석유회사(로스네프트)-러시아국영가스회사(가스프롬)-러시아국영해운선사(소브콤플로트)-대우조선해양 러시아 내에서의 조선협력). 이외에도 러시아 스콜코보 IT혁신단지내 한러센터 건립, 과학기술 공동연구 등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ㆍ민 차원에서 상당수의 합의문이 성사됐다.

이번 한러 정상회담을 다음 몇 측면에서 조망해 보고자 한다.

첫째, 러시아가 연방차원에서 올해 새롭게 채택한 ‘극동바이칼지역 사회경제발전전략 2025’와 상당히 조응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와 달리 자원개발보다는 플랜트 및 수송망 건설을 통한 첨단 과학기술 중심의 고부가가치제품 생산, 그리고 아태역내 극동지방의 위상강화를 목표로 한 것이다. 주변국의 투자유치 필요성이 절실해진 것이다. 특히 한국은 조선, 자동차, IT기술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러시아의 대중의존도 상쇄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 한러 교역규모는 220억 달러로서 러시아가 주변4강이라 하지만 한국의 제12위 교역상대국에 머물렀다. 이번 한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과연 한러간 교역ㆍ투자규모가 호혜적으로 대폭 증대될 것인지 기대된다.

둘째, 러시아가 남-북-러 3각경협 프로젝트를 제안한 점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이행하는 우리로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이지만, 조심스런 측면이 없지 않다. 3각경협은 2000년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줄곧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상 중요한 자리를 점해 왔지만 한반도의 정치상황, 3각경협에 대한 경제성 검토, 북러의 재정문제 등으로 큰 진척이 없었던 제안이다. 그러다가 2013년 9월, 러시아는 북한 나진-러시아 하산을 잇는 철로 54km의 보수를 완료하고 개통식을 가졌다. 또한 러시아가 나진항 제3부두 현대화도 시현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이 사업들에 한국기업이 시범적으로 참여할 수 있음을 밝혔다. 북러간에는 소련시절 북한의 채무(약 110억 달러)가 경협의 주요 걸림돌 중 하나였다. 러시아 재무부에 따르면 2012년 9월, 90% 탕감 및 10%의 경협사업 사용에 합의했다고 한다. 이것이 지난 10여년 지연되어오던 나진-하산 철도 및 항만프로젝트의 동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에 대해서는 한러 양국이 추후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하기로 했다. 우리로서는 북한을 통과하는 지상 가스관의 안보문제, 계속 지연되는 중러 가스관 협상, 2006, 2009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가격 논쟁이 빚은 파이프라인 가스의 대유럽 중단, 2009년 이후 미국발 셰일가스 혁명 등 국제가스시장 지각변동 등을 모두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이미 2009년부터 파이프라인이 아닌 액화방식의 가스를 사할린-2에서 들여오고 있다.

셋째, 이번 정상회담에서 정치부문 합의는 비교적 원론차원에 머물렀다. 한러 정상은 북한의 독자적 핵ㆍ미사일 능력구축노선을 용인할 수 없고,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데에 합의했다. 그러나 방한 직전 한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이는 북한의 선행 비핵화 조처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한국, 미국, 일본과는 상충되는 시각이다. 러시아는 1990년대 중반, 특히 푸틴 대통령이 취임한 2000년 이후 북러 우호관계 유지가 한반도내 자국 영향력을 위한 지렛대라 보고 있다. 한러 공동선언은 “6자회담 재개 여건조성을 위해 양국이 여타 참가국과 노력”할 것이라 했다. 또 푸틴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구상에 대해 각각 공감 및 환영을 표했다고 한다.

넷째, 러시아의 동방정책과 한국의 유라시아 정책 상관관계다. 러시아가 2013년 2월 채택한 신‘외교정책개념’에 따르면 러시아는 분명 아태지역이 세계경제와 세계정치의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이를 기회로 극동지방을 개발하고 자국의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유라시아 진출을 기대하는 한국정부, 그리고 한국의 많은 기업과도 상부상조의 잠재력이 큼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대내외적으로 선포한 ‘유라시아 이니시어티브’가 아태세력으로서 우리가 쌓아온 입지, 쌓아갈 경로와 상충되는 부분은 없는지도 동시에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아직 러시아는 아태 주요 세력들과의 ‘실질경협’ 관계가 저조하다. 중러 ‘전략적동반자’관계는 경협차원에서는 가시적 성과를 얻지 못했고(2012년 러중 교역규모: 880억달러, 한중은 2,540억 달러), 일본과는 영토분쟁 및 전환기 러시아의 열악했던 투자환경으로 인해 경협규모가 잠재력에 못미치고 있다(2012년 러일 교역규모: 270억, 한일은 1030억 달러). 2012년 ASEAN회원국과 러시아의 교역은 140억 달러에 머문데 반해 중국은 2,804억 달러, 일본은 2,730억 달러, 한국은 986억달러다. 2012년 러시아의 대ASEAN투자는 4,000만 달러인데 반해 미국은 1,596억 달러다. 또한 러시아는 역내 지역통합 추동체인 ASEAN+3, 그리고 미국주도의 ‘환태평양전략적경제동반자’(TPP), 중국이 주도하는 ‘지역포괄적경제동반자’(RCEP) 네트워크와도 무관하다.

요컨대, 지난해 WTO가입을 계기로 러시아내 외자관련 법과 제도정비 개선, 그리고 러시아의 주도적 극동시베리아 기초인프라 건설 등 투자환경의 개선을 기대한다. 우리정부가 민간기업들을 대상으로 대러투자를 권고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러 3각 경협은 북한의 가시적 비핵화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자칫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 특히 제3차 북핵실험 후 채택한 2094호(2013)에 위배될 수 있다. 또한 올해초 갑자기 정치적 이유를 들어 북한이 중단시켰던 개성공단 조업의 사례에 대해서도 러시아측에게 충분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끝으로, 한국의 대러정책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여타 국가들에 대한 정책과 마찬가지로 의당 한국의 국익에 기초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러시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러시아측의 ‘노여움’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으나 이는 양국의 건설적 관계발전을 위해서도 부적절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hankooki.com



이홍우기자 l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