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조직 비리' 지적·외부 고발… 수년간 법정 투쟁 벌이기도축출되거나 배신자 낙인 '고달픈 삶'도… 실질적 보상·보호대책 절실

이지문 중위가 1992년 3월 기자회견을 통해 군부재자투표 과정에서 일어난 선거부정을 고발하고 있다.
내부공익신고자들 삶 들여다보니…

양심에 따라 용기를 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잘못을 지적했지만 도리어 배신자로 낙인찍혀 고달픈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속칭 내부공익신고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용기는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했지만 정작 그 자신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적지 않았다. 내부공익신고 이후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축출되거나 남아 있더라도 왕따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0~2012년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당시 청와대의 증거인멸 지시 사실을 공개했던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을 꼽을 수 있다. 불법선거 정국의 불씨를 댕긴 장 전 주무관이었지만 지난달 28일 법원이 그의 증거 인멸 및 공용물건손상 혐의를 인정하며 결국 공직을 떠나야만 했다. 장 전 주무관에 이어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 수사 축소ㆍ은폐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 또한 최근 한 보수언론이 제기한 석사논문 표절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부공익신고를 통해 세상을 바꿔왔던 이들은 현재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호루라기재단에서 조사한 ‘내부공익신고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중심으로 과거 큰 이슈를 낳았던 내부공익신고자들의 공익신고 이후 행보에 대해 살펴봤다.

폐쇄적 공간에서 갖은 비리 발생

조주형 대령이 F-X 사업 기종 선정과정에서 국방부 핵심인사가 개입됐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군은 그 어떤 조직보다 폐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군납문제, 병역비리 등 소위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되기에 밖에서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는 문제들도 상당수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진 문제들이 외부로 드러날 때도 있지만 이는 대부분 내부공익신고자들이 자신의 목을 걸고 그 사실을 알리는 경우다.

육군 제9사단 소속 이지문 중위는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군부재자투표과정에서 공개ㆍ대리투표 행위와 여당지지 정신교육이 있었다고 1992년 3월 기자회견을 통해 고발했다. 이 중위를 무단이탈로 구속한 국방부는 해당 부대의 장ㆍ사병 5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중위의 증언이 허위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중위의 행동에 고무된 현역 군인 200여 명이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와 언론사 등으로 군부재자투표부정에 대해 제보했고 결국 국방부는 여당 지지 정신교육과 대리 투표행위가 일부 부대에서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후 군부재자투표제도가 영외투표로 개선, 1992년 12월 대통령선거부터 시행되고 있다.

기소유예로 석방된 후 이등병으로 파면조치된 이 중위는 4년여에 걸친 법정투쟁 끝에 파면처분취소확정판결을 받아 중위 신분으로 명예전역했다. 그러나 이 중위는 1991년 ROTC로 임관하기 전 장교특채로 입사한 삼성에는 결국 돌아갈 수 없었다. 이 중위는 현재 호루라기재단에서 다른 내부공익신고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2002년 3월 F-X 사업의 시험평가를 책임지고 있던 조주형 대령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방부 핵심인사가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특정기종의 선택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위해 시험평가 과정과 그 결과의 보고에 대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했다. 조 대령의 주장으로 F-X 사업 기종 선정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됐으며 이는 결국 국방부에서 미 보잉사와 벌인 F-15K 가격협상에서 2억 달러를 깎는데 보탬이 됐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장애아동성폭력사건에 분개한 시민들이 대책위원회를 조직했다.
결과적으로 공익에 보탬이 됐음에도 군사기밀 누설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돼 군사법원에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조 대령은 공군참모총장에 의해 징역 1년 6월로 감형된 뒤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 항소,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됐다. 현재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는 조 대령은 생명평화마중물 이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지도위원 등 평화 관련 시민단체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권위적 구조의 사립학교 문제 커

학교 또한 내부 비리가 많은 집단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이사장을 중심으로 강고한 위계질서가 구축, 비리사실이 발견되더라도 쉽게 개선되기 어려운 구조다. 내부공익신고자 중 사립학교 내의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이들이 유독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전응섭 교사는 2005년 6월 광주 인화학교의 성폭력 사건을 광주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신고했다. 인화학교의 학부모가 딸의 또래 친구가 행정실장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 교사에 도움을 요청하며 시작된 해당 사건은 이후 소설과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를 끌었다. 이후 이 사건은 관련 소설의 이름을 따 도가니 사건이라 불리고 있다.

전 교사의 고발로 시작된 이 사건은 광주지역 26개 시민단체들로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가 구성되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2006년 재단임원 해임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이 242일간 진행됐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도 이어졌다. 결국 인화학교 김모 교장, 김모 행정실장, 전모 교사 등 6명은 청각ㆍ지체장애 학생 9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그중 2명은 실형을 받았다.

효산그룹 콘도사업 비리를 고발했다. 현준희 주사는 되레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당했으나 12년 간의 법정투쟁 끝에 2008면 무죄를 선고받았다.
2009년과 2011년 소설과 영화로 해당 사건이 재조명된 이후 경찰의 재수사가 실시, 인화학교의 재단인 우석재단에 대한 설립취소가 결정됐고 국회에서는 장애인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07년 해임됐던 전 교사는 소송을 통해 복직했고 이화근로시설 지도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종교사학인 명지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홍서정 양은 학교의 종교수업이 대체교과목 없이 운영, 사실상 종교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2012년 7월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이후 서울시 교육청은 해당 학교를 대상으로 학생인원 안착화를 위한 컨설팅 장학을 실시했고 명지고 측은 그해 9월부터 대체 교과목을 설치했다.

그러나 제보 이후 명지고 측은 홍양에게 전학을 종용하고 수업시간에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압박을 진행했다. 결국 홍양은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퇴했다.

사내 왕따 시키고 결국 해고

재계에도 주목할 만한 내부공익신고 사례가 상당하다. 문제는 사기업에 대한 내부공익신고의 경우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허점이 많다는 점이다. 이에 재계의 내부공익신고 또한 KT, 포스코 등 공민기업이나 인천공항공사 같은 공기업에 한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스코는 동반성장 허위실적 사실을 공개한 계열사 직원을 부당해고해 시민단체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1996년 4월 감사원의 현준희 주사는 “효산그룹이 수도권정비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경기도 행정심판위의 결정으로 콘도사업 허가를 받아 수백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현 주사의 고발로 촉발된 검찰 수사 결과 장학로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6,000만원을 받은 것과 김영삼 전 대통령 측근들이 연루돼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감사원은 현 주사가 허위사실을 폭로해 공직자 품위와 감사원 명예를 손상시켰으며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외부에 누설했다는 이유를 들어 파면조치했다. 또한 현 주사는 감사원 간부에 의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해 2008년 무죄가 선고될 때까지 12년간의 법정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인천국제공항 터미널 공사현장에서 3년 동안 감리원으로 일하던 정태원씨는 2000년 7월 기자회견을 통해 “인천국제공항 감리 과정에서 내화ㆍ불연ㆍ방수처리자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등 부실사례와 부적절한 설계변경이 무더기로 발견됐으나 감리단이 이를 덮어왔다”고 밝혔다.

정씨는 기자회견 두 달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관련 자료 일체를 넘겨주고 수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인천국제공항공사 측과 시공사의 조직적인 반발로 해당 수사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고 정씨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됐다. 인천공항공사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민ㆍ형사 소송을 당한 정씨는 법원 판결 승소했으나 건설업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결국 재취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포스코 계열사에 근무하던 정모 씨는 2012년 8월 포스코 및 포스코 계열사가 동반성장 허위실적 자료를 제출하면서 부당한 인센티브 지급받았다는 내용증명을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공익신고를 진행했다. 또한, 정씨는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국민권익위원회와 민주당 김기식 의원에게 같은 내용을 제보하기도 했다. 결국 진행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포스코가 2012년 제출한 ‘2011년 공정거래협약 이행실적 자료’ 중 일부가 허위 자료임이 밝혀졌고 우수협약 기업으로서 포스코에 부여된 혜택들도 올해 9월 전면 박탈됐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당시 청와대의 증거 인멸 지시사실을 공개했던 장진수 전주무관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공직을 떠나야만 했다.
내부공익신고 과정에서 정씨는 보직 및 업무 박탈 처분을 받았고 곧이어 ‘돈을 요구하고 본사 채용을 원했다’는 부당한 징계사유로 해고됐다. 이와 관련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낸 정씨는 부당해고임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를 거부한 포스코 측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 아직까지도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실질적 보상책 있어야

위에 언급된 사례들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내부공익신고로 야기된 인권 침해와 불이익의 수위는 위험할 정도였다. 호루라기재단에 따르면 내부공익신고자 중 심층인터뷰에 참여한 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으로부터 파면과 해임(25명)당하거나 직간접적인 불이익으로 자진사퇴(5명)하는 등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분상 불이익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할 만큼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은 이들도 상당수였다.

그렇다면 내부공익신고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서는 어떤 작업이 병행돼야 할까. 내부공익신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부패방지법과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있지만 해당 법안들의 수혜를 입은 사람이 45명 중 2명에 불과할 만큼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해당 법안들을 개정, 내부공익신고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내부공익신고자를 위한 카운슬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들에게 보복행위를 한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hankooki.com

<관련기사>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 인터뷰

1992년 군부재자투표 부정을 세상에 알렸던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는 현재 공익제보자 모임과 호루라기재단에서 자신과 같은 내부공익 신고자들의 인권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 상임이사가 출강하는 연세대학교에서 만나 내부공익신고를 결심하는 이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들었다.

-현재 몸담고 있는 호루라기재단은 어떤 곳인가?

호루라기재단은 내부공익신고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2011년 설립됐다. 내부공익신고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법적ㆍ절차적 도움을 주고 내부공익신고 이후 피해를 당하는 이들의 삶을 지원하고 있다.

-자신도 내부공익신고자 출신이라 더욱 조언할 것이 많을 것 같은데?

상담하러 오는 분들에게 ‘제보를 하라’고 직접적으로 권유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제보일지라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않다면 크게 후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패방지법이나 공익신고자보호법 등 제보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법안에 대해 설명하고 만약 제보한다고 할 경우에 어떤 절차와 방법이 필요한지 조언할 뿐이다.

-내부공익신고를 결심하는 이들이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일단 내부공익신고를 결심했다면 법이 허락하는 한에서 증거자료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 공문 등의 문건이나 녹취자료, 이메일 등을 최대한 수집한 다음 제보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가능하다면 제보 과정에서 나를 지원할 수 있는 조직 내부의 협조자를 확보하는 것도 좋다. 제보 이후 중요한 것은 해고 등 징계를 할 만한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근태를 확실히 하고 가능한 한 업무도 확실히 하는 편이 좋다.

-내부공익신고자 관련 법안 중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할까.

내부공익신고는 개인적으로 하는 데다 갑작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아 제보 이후의 삶에 대해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그분들이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본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부공익신고에 따르는 특혜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교사가 사립학교 비리를 제보, 직장에서 쫓겨날 경우 공립학교로 특채를 시켜주는 방법이 있다. 기업의 비리를 제보해 해고되는 이들은 공무원으로 특채하면 된다. 특혜가 상당할 경우 내부공익신고는 자연히 늘어날 것이고 결국 세상이 더욱 좋아지지 않겠나.

-1992년의 내부공익신고를 했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가?

내부공익신고자들 중 살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다. 나 또한 제보 이후로 경제적으로는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후의 삶을 되짚어 볼 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결정을 할 것 같다. 물론 방법을 좀 달리 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죽기 전 내 삶을 정리할 때 잘 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김현준기자 real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