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친노 결집’ 金 ‘선당후사’ 孫 ‘文 때리기’ 安 ‘신당 바람’

야권의 주도권을 놓고 대주주 ‘4인방’이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민주당 지도부를 이끄는 김한길 대표와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계의 수장인 문재인 의원, 비노진영의 대선주자 손학규 고문, 신당 창당에 여념이 없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그들이다. 이들은 멀게는 다음 대선, 가깝게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물밑 신경전이 한창이다. 또 한걸음 뒤에서는 정세균 의원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을 맡으며 서서히 공개 행보를 시작할 움직임이고, 안희정 충남지사도 재선을 목표로 뛰면서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자라는 주장을 앞세워 대선 도전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들이 벌이는 이른바 ‘야권 쟁투’의 신호탄은 문재인 의원이 가장 먼저 쏘아 올렸다. 지난 대선 과정의 이야기를 담은 저서 <12ㆍ19 끝이 시작이다>를 펴내면서 사실상 대선 재도전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자 손 고문도 가만 있지 않았다. 자신의 싱크탱크 동아시아미래재단 송년회에서 역할이 주어지면 굳이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정치적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여당을 상대하랴, 내부를 단속하랴 심적으로 가장 바쁜 김한길 대표는 대놓고 당내 유력 주자 들에 대한 반박은 하지 않지만, 적잖이 신경이 쓰이는 분위기다. 우회적인 말로 특정 주자들의 행태는 여당을 상대하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적전분열 양상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여기에 안 의원은 이들과의 직접적인 경쟁보다는 외곽에서 신당 창당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새정치 이미지를 고착화하는데 애쓰고 있다.

야권 유력 주자들의 이 같은 발 빠른 행보는 일단 안 의원의 신당 창당이 도화선이 됐다. 안 의원이 신당 창당을 통해 사실상 차기 대권 행보에 나서자, 다른 야권 주자들도 나름의 위기의식이 발동해 때이른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는 순간 야권 재편 문제가 정치권의 가장 큰 화두가 될 게 분명하다. 야권 유력 주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게 급선무다. 자칫 안 의원에게 주도권을 뺏길 경우 향후 정당간 통합 내지 연대과정에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벌써부터 대선 도전을 언급하며 부지런히 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내년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현 시점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여 놓아야 향후 공천 과정에서 자신의 측근들을 보다 많이 내세울 수 있다는 점도 반영돼 있다. 때이른 야권 쟁투가 시작된 이유다.

비노, 문재인에 공격 집중

야권 4인방 중에는 민주당 최대 계파인 친노계를 이끄는 문재인 의원에 대한 견제가 집중되고 있다. 김한길 대표는 17일 “지금은 개인적인 정치적 목표를 내세울 때가 아니라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김 대표는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의원 각자가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해달라”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진의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는 최근 연말 송년모임을 기점으로 사실상 정치적 행보를 본격화 한 문재인 의원과 손학규 상임고문 등 당내 대선 주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도 문 의원과 손 고문 등의 정치 활동 재개로 인해 당 지도부가 위축된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당 지도부가 위축되는 것은 민주당이 위축되는 것이고 그것을 그분들이 의도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문 의원이나 손 고문이 움직일 경우 당 지도부의 세 약화는 필연적이기 때문에 김 대표 측에서는 적잖이 안테나를 곧추세우고 있다. 특히 김 대표 입장에서는 손 고문 보다는 실질적인 세력을 이끄는 문 의원의 행보가 더욱 부담이다. ‘선당후사’ 발언에 특정인을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문 의원 쪽을 더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손 고문 측도 문 의원을 조준하고 있다. 손 고문과 가까운 신학용 의원은 18일 문 의원의 대권 재도전 의사를 잇따라 밝힌 것과 관련,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며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떡 먹을 생각부터 하니 너무 안타깝다”고 직격했다.

그는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 활성화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벌써부터 대권을 향한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당이 결집해 정부 여당에 맞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도 모자라는데, 개인적 욕심 때문에 대오가 흐트러진다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이어 “(문 의원이) 자꾸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에 대해 안타깝다”며 “2~3년 뒤에 본격적으로 해도 될 이야기를 지금 해 당의 대오를 자꾸 흐트러뜨리는지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 고문은 아직 특정인이나 특정 계파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나설 때는 아니란 판단이다.

文과 친노, 일제히 기지개 시작

김한길 대표와 손학규 고문 측의 대립각 움직임에 문재인 의원이나 친노계 측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면 대응할 경우 당내 잡음이 커지게 되면서 내분 양상으로 치달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 단계에서 분열상을 보이면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전체가 고전할 가능성이 커지고, 책임론이 불거지게 되면 문 의원 쪽에도 별반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것이란 계산도 들어 있다.

그렇다고 가만 있을 친노도 아니다. 지방선거의 공천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비노 진영의 공세에 대한 적절한 반격 타이밍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유에서 친노 진영에서는 각종 모임을 통해 결속력 다지기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충돌에 앞서 전열 가다듬기 차원이란 해석이다.

문 의원은 저서 발간을 통해 지역에서 북콘서트를 열며 붐 조성을 시작한 데 이어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변호인’을 측근 의원들과 함께 상영하는 등 집단적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영화 관람에는 정의당 천호선 대표 등 참여정부 인사들도 함께 했다. 김 대표 입장에서는 이들 야권의 범 친노그룹의 조직적 움직임에 심기가 불편하다. 이 영화의 상영 계획을 묻는 질문에 김 대표는 “한가하게 영화 볼 시간이 없다”고 퉁명스럽게 답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친노 진영의 각종 세몰이 움직임이 영 탐탁지 않다는 뜻이다.

정치적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문 의원의 행보 재개 시점이 다소 빨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면서 야권의 한 복판으로 다가서고, 손 고문이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안 의원과의 교감을 넓히면서 외곽에서 분위기를 다지는 상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 이상 숨죽이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란 판단을 한 듯 하다. 더구나 같은 친노계인 안희정 충남지사까지 대선을 언급하고 나오는 시점이다. 친노의 정점은 자신이란 점을 부각하면서 흩어졌던 야권의 지지층을 다시 친노진영으로 끌어 모아야 한다는 현실적 계산에 따른 것이다.

아직 친노와 비노간 신경전이 수면 위로 본격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내년 초 국정원 대선 댓글 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가 종결되고 정치판이 완전히 선거 국면으로 넘어가게 되면 문 의원과 김 대표, 손 고문 간 민주당판 삼국지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안철수, 일단 창당에 진력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민주당내 내부 다툼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다. 모양새를 갖춘 신당 창당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야권 주자들간 신경전에 끼어들 틈이 없다.

안 의원은 일단 신당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새정추)’를 구성해 17일 대전에서 첫 지역 설명회를 가졌다. 이어 19일에는 안 의원의 고향인 부산에서 2차 순회 설명회를 열고 신당의 정치적 목표와 창당 방향 등에 설명했다.

대전을 첫 방문지로 삼은 것은 텃밭 정당이 없는 곳을 택해 중도와 중립적 노선에 초점을 맞춘 신당 출범의 정치적 의의를 표방하려 한 것이고, 두 번째 장소를 부산으로 정한 것은 안 의원이 고향에서 정치적 신고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엔 같은 지역 출신인 문 의원이 최근 대권 재도전 행보에 나서며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는 점도 염두에 둔 듯 하다. 두 차례 설명회는 지역 언론인과의 기자간담회와 지역 주요 인사들과의 간담회 순서로 진행됐으며 안 의원과 측근인 무소속 송호창 의원, 새정추의 박호군·윤장현·김효석·이계안 공동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새정추는 대전, 부산에 이어 26일 광주에서 3차 설명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이를 기점으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본격 승부가 예상되는 호남 지역의 신당 바람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이다.

신당 창당에 올인 하고 있는 안 의원은 일단 야권 주자들과의 직접적 접촉이나 신경전 등은 피하고 있지만 당장 신당 창당 과정에서 영입 인사들의 면면이 거론되면 민주당과의 날 선 대립이 불가피하다. 벌써 광주 지역의 지방 의회 의원들의 신당행이 이어지고 있다. 호남이 들썩이고 있는 것으로 지지부진한 민주당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경고이기도 하다.

신당이 본격 태동하는 단계에 이르러 민주당 전ㆍ현직 인사의 탈당 러시가 이뤄질 경우 양 세력간 싸움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안 의원과 문 의원, 손 고문, 김 대표 등이 서로를 향해 포화를 퍼붓는 이전투구 양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고, 일부 인사들간 전략적 제휴가 이뤄질 수도 있다.

문 의원과 안 의원을 양 극단에 놓고 비교적 중간 지대에 있는 손 고문과 김 대표가 어떤 정치적 스탠스를 취할지 주목된다. 염영남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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