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송년회마저 마무리는 술자리" 2013년 송년회 트렌드는 '절주' 기업도 직장인도 참여형 원해 문화생활 즐기는 체험행사 인기스포츠 활동이나 공연 기획도 활발 특별행사 준비에 '연말 스트레스'는 덤 "무조건 회식 싫어해도 문제" 지적도

특별한 송년회를 준비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직장인이 많다. 한 직장의 송년회에서 직원들이 텔레토비로 분장하고 상황극을 펼치고 있다.
성형외과 코디네이터인 장모(27ㆍ여)씨는 며칠째 근무 시간에도 호텔 예약사이트 인터넷 페이지를 들락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올해 팀 송년회를 '파자마 파티'로 계획한 탓이다. 팀의 막내인 장씨는 일단 이름 있는 강남의 호텔 중 10여명이 함께 갈 수 있는 장소를 찾고 풍선 이벤트를 신청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파자마 파티'인 만큼 인터넷에서 잠옷 10벌을 구매했는데, 선배들의 치수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번거로웠다.

장씨가 송년회 준비에 들인 시간은 보름 남짓. 장씨는 "처음엔 이색 파티를 계획하느라 들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선배들마다 취향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다른데 일일이 맞추느라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회사 앞 뷔페에서 송년회를 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술로 시작해 술로 끝을 맺었던 송년회 문화가 점점 특별해지고 있지만, 특별한 송년회를 준비하느라 머리를 싸매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 기업들이 흥청망청한 송년회 문화를 바로 잡겠다고 나서면서 여가활동이나 문화행사를 즐기는 이색 송년회를 기획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2013년 송년회 트렌드'는 '만취'에서 '절주'로 변모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윤리경영임원협의회 기업들을 상대로 송년회 계획을 설문한 바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0%는 건전한 송년회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사내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현재 캠페인을 실시하지 않는 기업들 중 상당수는 이미 건전한 회식 문화가 정착됐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캠페인을 실시하는 기업 중 80.6%는 '절주 및 간소한 송년회를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음주 송년회 대신 봉사활동을 권하고 있다는 대답은 8.3%, 문화공연 관람 혹은 스포츠 활동을 권유한다는 기업은 5.6%, 송년회를 생략하고 가족과 함께할 것을 권장한다는 기업은 5.6%로 조사됐다.

기업뿐 아니라 이색 송년회를 원하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 최근 삼성화재가 임직원 1,867명을 대상으로 '내가 바라는 부서 송년회'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문화공연 관람을 원하는 직장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영화ㆍ연극 관람 등 문화생활 즐기기'는 28.5%,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는 20.4%, '회사 주면 맛집에서 가벼운 점심식사'는 10.9%로 조사됐다. 기존의 '음주 송년회'는 7.6%, '스포츠 경기 관람'은 6.9%, '부서원 가족모임'은 6.2%로 나타났다. 특히 '음주 송년회'는 30대 남성 직장인 11.8%가 선호했고, 40대 여성 직장인은 4.9%만이 선택한 점이 흥미로웠다. 직장인들이 가장 꺼려하는 송년회는 '등산(2.1%)'이었다. 송년회를 아예 생략(2.5%)하자는 의견보다 호응이 적었다.

송년회 문화가 점점 달라지고 있다지만 직장인의 '연말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연기가 자욱한 고깃집에서 '부어라' '마셔라' 권하는 상사는 사라지고 있지만 고깃집을 벗어나도 상사는 상사다.

총무팀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박모(32)씨는 연말이 되면 간부들의 입맛을 꼼꼼히 체크한다. 평상시 즐겨 찾는 식당이 어디인지 알아보는 것은 물론, 좋아하는 운동이나 영화 장르도 확인하곤 한다. 박씨는 "송년회를 기획하면서 윗사람의 눈치가 안 보인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올해는 식사 전에 영화보기 행사를 추가했는데, 간부들마다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달라 어떤 영화를 골라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매번 똑같은 방식의 행사는 지겨우니 신경을 쓰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행사를 만들 순 없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색 송년회가 늘어나면서 준비에 임하는 직장인들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 신입사원 양모(26ㆍ여)씨는 송년회를 위해 걸그룹 크레용팝의 '빠빠빠' 안무를 외우고 있다. 양씨 회사에서는 술만 마시고 끝나는 송년회를 뜻 깊게 만들고자 신입사원들이 모여 일종의 '재롱잔치'를 기획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양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가고 있다. 낮에는 각종 성과와 실적을 정리하느라 배로 늘어난 업무에 시달리고, 밤에는 하루걸러 잡힌 각종 모임으로 '술자리 압박감'에 행사 준비 스트레스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양씨는 "중학생 시절 수학여행이 생각나 처음엔 즐거웠다. 하지만 업무가 끝난 후 동기들과 모여서 춤을 추고 나면 기가 쏙 빠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직장 상사라고 해서 특별한 송년회가 마냥 반가운 건 아니다. 대기업 부장 김모(45)씨는 올해 팀 송년회 준비를 지켜보는 게 영 마뜩치 않다고 고백했다. 송년회를 뜻 깊게 보내라는 회사 방침에 따라 팀원들끼리 유명 뮤지컬을 관람하기로 뜻을 모았다. 20여명이나 되는 팀원이 뮤지컬을 관람하자니 일단 비용이 부담이다. 주어진 송년회 예산은 200만원. 1인당 10만원짜리 뮤지컬 티켓을 인당 6만원에 구입하면서 120만원을 썼다. 80만원이 남았지만, 뮤지컬을 보고 2차로 간단한 식사와 맥주를 곁들이면 눈 깜짝할 새 없어질 돈이다.

김씨는 "뮤지컬을 보고 나서도 배는 고프지 않겠느냐"면서 "어차피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게 됐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김씨는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한 직원들을 격려해주는 자리가 송년회다. 어차피 2차, 3차로 이어질 자리라면 피곤하게 이것저것 계획하고 싶지 않다"면서 "술을 권하는 문화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송년회마저 회식처럼 여기며 이리저리 피하는 후배 사원들이 달갑게 느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