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여풍' 점차 거세져 민주당 방어 나서나 역부족당내 파벌 이해관계 엇갈려 지방선거 앞두고 비노진영 이탈움직임 두드러져 친노- 구 민주계 충돌 가능성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26일 전남 광주 NGO 시민센터에서 열린 '새정치추진위원회' 창당 설명회에 참석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행보에 민주당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울러 안 의원이 한번씩 움직일 때마다 민주당 내부에서 적지 않은 술렁임이 감지되고 있다. 야권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안철수 쇼크로 분열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이런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이후 시종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만 매달려 쟁점화에 사활을 건 모습이다. 야권 내부에서 조차 "정치적 논쟁을 벌이느라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반성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에 대해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아직까지도 대선 때 발생한 분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열정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다시 싸움터로 나간 꼴이라는 소리다. 대선 이후 민주당의 행보와 관련, 일각에서 집안정리가 되지 않은 채 지방선거정국을 맞을 경우 내부 분열은 더 가속화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민주, 작은 安風에도 휘청

충청과 영남을 돌며 신당 알리기 작업을 벌여온 안 의원은 12월26일 호남의 핵심부 광주를 찾았다. 안 의원 측 신당 창당 준비 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는 이날 오전 광주 상무지구 NGO(비정부기구)센터에서 3번째 전국 순회 설명회를 가졌다. 안 의원의 호남 방문은 신당 창당을 공식화한 이후 처음이었다. 설명회에는 안 의원을 비롯해 김효석ㆍ박호군ㆍ윤장현ㆍ이계안 공동위원장과 더불어 장하성 교수도 동행했다.

광주는 민주당의 텃밭이지만 이날 안 의원을 보는 광주의 민심은 예사롭지 않았다. 최근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곳곳에서 드러나 민주당을 당혹케 했다. 안 의원 일행이 KTX 광주 송정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지자 40여명이 역에 나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고 설명회가 열린 상무지구 NGO센터 사무실은 지지자들로 가득 찼다.

심지어 호남의 지역언론들도 안 의원의 방문이 향후 야권 내 호남의 주도권 경쟁에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광주는 전통적으로 야당 표심을 가늠케 하는 민주당의 텃밭이다. 지난 대선을 떠올려 보면 2006년 대선때 고(故) 노무현 당시 후보와 지난 대선때 안철수 당시 후보 모두 광주에서 일어난 바람을 타고 대선판을 주도했다. '노풍(盧風)'과 '안풍(安風)'의 진원지가 바로 광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정치권 주변에서는 안철수 신당과 관련해 민주당과 신당이 '광주'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고지전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광주 민심을 잡아야 야권 내 주도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광주 민심이 새정추에 흔들리면서 민주당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새정추는 이를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이날 방문에서 "그동안 호남에서 '자동 선택'을 받은 민주당이 기존 정치구도에 매몰돼 민심 대변 역할에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하며 새정추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안 의원은 "호남은 그간 근ㆍ현대사의 고비마다 민의를 대변하고 민주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배출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과연 지난날의 역사성ㆍ정통성을 제대로 지켜나가고 있는지 많은 시민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계안 위원장도 "2등 기업이 가진 가장 좋은 점은 스스로 혁신하면 1등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나 새누리당이 잘못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이 스스로 혁신해서 제1당이 될 수 있을만큼 국민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렇지 못하다"고 민주당을 겨냥했다.

민주당은 발끈하면서도 안 의원이 민주당에 힘을 보태라고 촉구했다. 박혜자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튿날인 12월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광주에서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의 비전이나 정책을 갖고 신당에 대한 설명회를 했다면 박수 받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에 대해선 아무런 제안도 없이 말로만 새정치를 외치고 심지어는 민주당을 지역주의 세력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선 참으로 유감"이라고 말했다.

박 최고위원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해온 민주당은 결코 지역주의에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정당보다도 지역주의에 맞서 싸웠다"며 "19대 총선 때만해도 김부겸 전 의원이 대구에 출마해 선전했다. 부산에서는 비록 두석에 불과했지만 35%의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안 의원은 어제 발언 중 '상대방을 폄훼하는 것도 낡은 정치'라고 했는데, 자신의 민주당 폄훼발언이 새정치인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민주당 날선 신경전

추미애 민주당 의원도 안 의원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추 의원은 안 의원이 광주를 방문한 당일 오후 광주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대강당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물러서지 않는 진심' 북콘서트에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을 언급하며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라고 안 의원을 비판했다.

그는 "안철수 신당 세력이 떴다고 해서 민주당이 '분열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며 "민주당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고 민심을 얻지 못하는 한 제2, 제3의 안철수 세력이 나올 것이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이어 "야권이 (열린우리당 분당의 예처럼) 분열의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궈서는 안된다"며 "박근혜 정부의 독주, 독선에 대한 견제를 해야 하는데 양 정치세력이 '못난이 경쟁'을 해서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안 의원은 민주당의 이 같은 반응을 오히려 비판했다. 안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이 자신의 행보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바라는 새정치에 대한 열망을 야권 분열로 이야기하거나 함께 하시는 분들을 폄하하는 것은 기득권적 시각의 발로"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광주에서도 민주당을 직접 겨냥해 "호남인들의 지지를 변화와 개혁, 수권으로 보답하지 못하고 깊은 타성에 빠진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면서 "호남에서의 낡은 체제 청산이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안 의원은 "기존의 낡은 체제와 세력으로 결코 수권할 수 없다. 지난 두 번의 총선, 대선에서 분명히 입증됐다"면서 "지역주의에 안주하고 혁신을 거부하며 상대방 폄하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낡은 사고와 체제를 이곳 호남부터 과감히 걷어내 달라"고도 말했다.

아울러 이 자리에서 안 의원은 최근 신당 합류를 앞두고 광주ㆍ전남지역에서 민주당 탈당 기류가 확산하는 데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안 의원은 "저희와 사전에 논의된 바는 전혀 없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새 정치에 대해, 합리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믿는 분들은 모두 다 함께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분열 가속화 조짐

안 의원이 행보를 본격화 하고 있는 가운데 친노(친노무현) 그룹이 다시 움직이고 있어 민주당 분열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지난 대선 이후 잠시 주춤하던 친노그룹은 최근 다시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세(勢) 결집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당내 친노와 비노(비노무현) 진영 간 계파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안 의원의 행보가 구체화될수록 문 의원 중심의 친노발 당내 분란은 확산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민주당의 앞날은 한치 앞을 전망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대선 도전을 공식화하면서 친노진영 내에서도 패갈림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한 당직자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데, 당이 분해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 대선주자가 앞으로 몇 명이나 더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도 민주당을 흔들고 있다. 같은 달 20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 신당의 지지도는 32%로 나타났고 민주당은 10%였다. 안철수 신당 창당이 현실화될 경우 민주당 지지율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미 안철수 신당으로 돌아서거나 합류를 준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광주에선 민주당 소속 전현직 지방의원 7명이 지난 12월 18일 탈당해 안철수 신당 합류를 선언해 민주당에 충격을 안겼다.

야권 주변에서는 민주당이 당 내분의 불길을 진화하고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결단력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문제는 이 같은 결단을 하고 움직일 단일 리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여러 파벌이 형성됐고 그 파벌을 이끄는 '작은 지도자들'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가 기적적으로 동시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이상 당의 일치단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비노진영의 구세력이 다시 당의 주도권을 잡고 친노그룹을 완전히 복속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민주당 비노진영에서 이를 위해 친노진영과의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비노진영 핵심인사는 박지원 의원이다. 하지만 최근 박 의원에 대한 여권의 견제가 심해 박 의원이 민주당을 직접 이끄는 수장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분에 휩싸인다면 결국 상당수의 비노진영 인사들이 안철수 신당으로 합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은 여권 때문이 아니라 안철수 신당에 의해 해체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윤지환기자 musasi